“논리 모순” “언론보도 옥죄기”···‘바이든-날리면’ 판결에 잇따른 비판 목소리

이홍근 기자 2024. 1. 1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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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MBC에 ‘정정보도 하라’
법조계 “앞뒤가 안 맞는 판결”
‘악용 소지 커 나쁜 선례’ 지적
2022년 9월22일자 MBC 화면 갈무리.

법원이 지난 12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 보도’와 관련해 MBC에 ‘정정보도를 하라’는 판결을 내린 데 대해 시민사회와 법조계에서 비판이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법원의 이번 판결이 법리적 비약이 많은 데다 권력기관이나 유력자들이 비판적 보도를 옥죄는 데 악용할 수 있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판결문을 살펴본 법조계 안팎의 전문가들은 재판부의 판단에 논리적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이날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재판부가 윤 대통령이 바이든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해놓고, 정정보도문엔 바이든이라 발언한 사실이 없다고 밝혀졌다고 보도하라고 했다”며 “앞뒤가 안 맞는다”고 지적했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윤 대통령이 ‘바이든은’과 ‘날리면’ 중 어떤 발언을 한 것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봄이 타당하다”면서 “발언 여부가 기술적 분석으로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피고는 윤 대통령이 발언을 하였다고 보도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이 기술적으로 분석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자막을 달았으므로, 허위보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외교부 측에서 써낸 정정보도문을 그대로 받아들여 MBC에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없음이 밝혀졌으므로 이를 바로잡는다”라는 정정보도문을 뉴스데스크 방송에서 낭독하라 명령했다. 앞에서는 ‘발언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선, 뒤이어 ‘바이든이라 말한 사실이 없다고 확인됐다’고 한 것이다. 김성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미디어언론위원장도 “앞뒤가 안 맞는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가 판결문에 적시한 정정보도문.

재판부가 문맥을 따지면서 문장 자체의 호응은 판단하지 않고, 박진 전 외교부 장관의 진술은 정황증거로 채택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외교부 측은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글로벌펀드에 1억 달러를 기여하겠다 했으나, 한국 국회가 여소야대 상황이라 우려를 표하는 과정에서 문제의 발언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야당이 기여에 대한 동의를 해주지 않을 경우엔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신뢰가 하락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할 수 있다”며 “윤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회를 상대로 이 사건 발언을 했다고 봄이 자연스럽다”고 했다. 기술적으로 윤 대통령이 뭐라 말했는지 알기 어려우니, 정황을 고려해 발언의 취지를 추정한 것이다.

문장 자체의 완결성에 대한 논란도 있었지만 재판부는 이를 판단 근거로 삼지는 않았다. 외교부 주장대로라면 윤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날리면 쪽팔려서 어떡하나”가 된다. 반면 MBC 자막대로라면 발언은 “(미국)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가 된다. 전자는 비문으로 어색하지만, 후자는 완결성을 갖춘 문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손 변호사는 “문맥을 따질 거면 박 장관의 말만 고려할 게 아니라 문장 자체도 봐야 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재판부가 판례를 잘못 적용해 논리가 모순되는 판결이 나왔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재판부가 인용한 대법원 판례는 MBC의 광우병 보도 판례로, 과학이 밝히지 못한 부분에 대해선 함부로 보도하지 말라는 취지의 판시인데, 이번 사건은 과학과 관련된 사건이 아니다”라면서 “안 맞는 판례를 붙이다 보니 사회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운 결론이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판결로 인해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가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신속성과 싸우는 언론이 정치인의 발언을 모두 검증하고 보도하라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언론은 수사기관이나 과학연구소와 달리 문제를 제기하는 기관인데, 판결은 사실상 음성 분석을 통해 검증한 발언만 보도해야 한다는 취지여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 변호사는 “이 판결을 정치인들이 악용하기 시작하면 언론 보도가 굉장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하물며 유전자 검사도 99.9% 일치라고 표현하지 않느냐. 어떤 의혹 제기든 100% 과학적 증명은 어렵다”라며 “비판이나 의혹 보도를 허위 보도라고 프레임을 씌울 수 있게끔 가능성을 열어준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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