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사비 발목 잡는 재정당국···세월호 추모공원, 결국 10주기에 한삽도 못뜬다

이창준 기자 2024. 1. 1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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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공사비 483억→503억원 증가에
KDI 통해 사업 비용 적정성 재검토 요청
행정절차 이유로 1년 반 착공 시점 지연
예타 면제 사업으로 비용 검토 필수 아냐
유족들 “정부, 일부러 사업 연기” 의심도
세월호 참사 9주기를 일주일 앞둔 9일 4·16 참사 유족 등 참석자들이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앞에서 헌화하고 있다. 목포|성동훈 기자

세월호 참사 10주기 완공을 목표로 추진됐던 희생자 추모공원 건립 사업이 결국 10주기까지 첫삽도 못뜨게 됐다. 재정당국이 막바지 단계에서 공사 비용을 문제삼으면서 착공이 1년 이상 늦어지게 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경향신문 2023년 11월14일자 1~2면)

정부는 절차에 따랐을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유족들은 정부의 의도적인 ‘시간끌기’가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당초 추모공원은 2022년 완공될 것으로 기대됐다. 향후 일사천리 진행되더라도 2026년에야 완공이 가능하지만 지금까지 행태로 볼 때 아직은 자신하기 어렵다.

1년 반동안 유족들 발만 구르게 한 ‘11억원’

14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4·16 생명안전공원’ 조성사업은 지난 5일 김윤상 기획재정부 2차관 주재로 열린 올해 첫 재정사업평가위원회(평가위)에서 통과 의결돼 부처간 사업 조율 단계에 들어갔다. 이 사업은 안산 단원구 화랑유원지에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기는 추모공원을 짓는 것을 목표로 추진되는 사업이다. 안산시와 해수부가 주무 부처다.

해당 사업은 5일 평가위에서 공사비가 종전보다 11억원 깎인 492억원으로 의결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6개월에 걸쳐 수행한 검토 결과에 따른 감액이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물가 상승 탓 공사비가 483억원에서 503억원으로 증가하자 기재부는 비용이 적정한지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지난해 5월 KDI에 사업 비용 적정성 재검토를 요청했다.

기재부는 주무 부처가 구체적인 실시 설계안을 어떻게 수정해오는지에 따라 총 사업비가 다시 늘어날 수도 있다며 아직 공사비 삭감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가재정법상 국고가 투입되는 건축 사업의 비용이 200억원을 넘길 경우 사업 주체는 자체 마련한 설계안에 따른 총 사업 비용을 기재부와 협의해 최종 결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해수부와 안산시는 평가위 의결안에 맞게 설계안을 수정하겠다는 입장이라 사실상 감액은 확정됐다. 이후 기재부와 협의 과정에서 사업비가 늘어날 가능성은 낮다.

문제는 일련의 검토 과정을 거치면서 착공 시점이 1년 반 가까이 지연됐다는 점이다. 경향신문이 확보한 이 사업의 KDI 적정성 재검토 결과 보고서를 보면 추모공원의 착공 시점은 오는 10월로 예정돼있다. 공사비 삭감에 따라 설계도 등을 수정하는 기간 5개월이 추가됐다. 기재부가 6개월의 비용 적정성 검토를 맡기지 않았더라면 지난해 5~6월쯤 바로 공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

KDI의 비용 검토 기간, 검토 이후 평가위가 개최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 또 검토 결과에 따른 설계 수정 기간 등 총 1년 반 가량의 시간이 ‘행정 절차’를 이유로 미뤄졌다. 유족들은 오는 4월 참사 10주기에 맞춰 공사가 첫삽을 뜨는 모습이라도 보길 바랐다. 이마저도 사업이 진행 과정마다 수차례 지연되자 유족들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마지노 선’이었다. 정부의 최초 계획은 2021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10주기 이전에는 완공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마지노선도 ‘공사비 11억원’ 때문에 무너지게 됐다.

“정부, 대놓고 반대 못하니 ‘행정 트집’ 잡는 것 아닌가”

이 같은 행정 절차가 꼭 필요했던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기재부가 KDI에 적정성 재검토를 요청한 결정적 이유는 사업비가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기준인 500억원을 넘었다는 것이었다. 국가재정법상 국고가 투입되는 건축 사업 비용이 500억원을 넘기면 예타를 받아야 한다. 사업비가 처음 500억원 미만이면 예타를 받지 않지만, 추진 도중에 500억원을 넘길 경우에는 타당성 재조사(타재)를 받아야 한다.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9주기 기억식’에서 4.16합창단과 시민합창단 304명이 기억합창을 하고 있다. / 문재원 기자

그러나 이 사업은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진행되는 ‘예타 및 타재 면제 사업’이었다. 500억원 기준과 무관하게 비용 검토를 받지 않아도 현행법상 문제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재부는 국고 투입 사업의 비용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자의적 판단에 따라 적정성 재검토를 받도록 했다. 타재가 아닌 적정성 재검토를 실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업 비용 적정성 검토는 기재부의 재량 판단에 따라 받도록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기재부의 총사업비관리지침 제49조를 보면, 기재부가 사업비 중도 인상에 따라 특정 사업의 타재나 적정성 재검토를 판단할 경우 물가 상승분은 비용 인상률에서 제외토록 규정돼있다. 즉 기재부는 지침과 달리 물가 상승으로 인한 사업비 증가를 문제삼아 비용을 무리하게 검토한 것이다.

유족들이 정부가 ‘일부러’ 사업을 미루고 있다고 의심하는 근거도 이 때문이다. 적정성 검토는 기재부 재량 판단 사안이기 때문에 기재부가 설계 변경안을 두고 또 비용을 문제삼아 적정성 재검토를 결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업비가 492억원으로 삭감됐지만 최근 인건비와 자재비 물가인상을 감안해 보면 착공시점에는 사업비가 다시 500억원을 넘어설 수 있다.

정부자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추모부서장(고 신호성군 어머니)은 “정부가 대놓고 반대하는 것보다는 행정적인 절차로 자꾸 트집으면서 시간 끌기에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며 “유족들 사이에서는 공원 자체가 건립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고 말했다.

정부는 의도적 시간끌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 적정성 재검토는 공사비가 처음 500억원을 넘기는 바람에 타재에 준하는 절차를 거치려다보니 물가 상승분까지 반영한 총 비용을 볼 수밖에 없었다”며 “빠른 시일 내 절차대로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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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khan.co.kr/economy/economy-general/article/202311131729001

이창준 기자 jch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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