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친중 갈림길’서 라이칭더 택한 대만 민심…민진당 정권 재창출에도 ‘절반의 승리’
‘미·중 대리전’ 성격을 띠며 세계적 관심 속에 치러진 지난 13일 대만 총통 선거에서 중국이 ‘완고한 대만 독립·분열 주의자’로 규정한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賴淸德) 후보가 당선됐다. 2019년 홍콩 사태 이후 높아진 중국에 대한 거부감이 양안 갈등으로 인한 전쟁 위기감보다 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친중이냐 반중이냐’ 하는 전통적 이념 대결에 염증을 느낀 젊은층의 표가 실용적 중도 노선을 표방한 제3정당으로 분산되면서 야권이 분열한 것도 민진당에 반사이익으로 작용했다.
다만 민진당이 총통 선거와 함께 치러진 입법위원(국회의원 격) 선거에서 친중 성향 제1야당인 중국국민당(국민당)에 다수당 자리를 내줌에 따라 국정 동력은 약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라이칭더 “민주주의의 승리”…외신 “중국에 맞설 후보 선택”
14일 대만 중앙선거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제16대 총통·부총통 선거에서 민진당 라이칭더·샤오메이친(蕭美琴) 후보는 558만6019표(40.05%)를 득표해 국민당 허우유이(侯友宜)·자오샤오캉(趙少康) 후보(467만1021표·33.49%)를 91만4998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8년 주기 정권 교체의 징크스를 깨고 집권 연장에 성공한 것이다. 대만 총통은 4년 중임제다. 현직 프리미엄을 바탕으로 라이 당선인이 4년 후 재선에 성공한다면 최장 16년 연속 집권도 가능하다.
이번 선거에서 친미·반중 성향 민진당과 친중 성향 국민당 사이를 파고들며 중도층을 공략한 제2야당 대만민중당(민중당) 커원저(柯文哲)·우신잉(吳欣盈) 후보는 예상보다 높은 26.46%(369만466표)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총통 선거 투표율은 71.86%로 잠정 집계됐다.
라이 당선인은 당선 확정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2024년 세계 ‘대선의 해’에 전 세계가 가장 주목하는 첫 번째 선거에서 대만이 민주진영의 첫 번째 승리를 가져왔다”면서 “대만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사이에서 민주주의의 편에 설 것을 선택했으며, 국제 민주주의 동맹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 진영과 중국을 한 축으로 하는 권위주의 진영의 대결에서 친중 국민당을 누르고 민진당이 세 번 연속 집권에 성공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앞서 중국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대만에 군사적·경제적으로 노골적인 압력을 가해왔다. 대만산 품목에 대한 관세 혜택을 중단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으며,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 군용기와 군함이 대만 주변 공역과 해역에서 수시로 포착됐다. 중국 정찰풍선도 이달 들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대만 상공에서 관측됐다. 이에 민진당이 집권하면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돌았다. 그러나 그럴수록 대만의 민심은 중국과 멀어지는 형국이다.
투표 전날 타이베이에서 열린 민진당 유세 현장에서 만난 20대 여성 지지자는 “민주 대만의 선택을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면서 “대만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한·미·일 등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하며 우리의 선택지는 라이칭더 뿐”이라고 말했다. 타오위안에 사는 유권자 리모씨(53)도 “우리는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한데 국민당은 친중 색채가 강하다”면서 “우리는 국가의 큰 방향을 결정하는 선거에서 대만이 어떻게 갈지를 선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외신들도 비슷한 관점에서 대만 총통 선거를 바라보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대만 독립을 강조해 온 민진당이 친중 국민당을 제쳤다”면서 “대만인에게 이번 선거의 핵심은 강대한 중무장 독재국 중국과 긴장 고조에 맞설 적합한 후보가 누구인지에 대한 선택이었다”고 보도했다. CNN도 “이번 선거 결과는 대만이 중국의 위협을 감수하더라도 민주 국가들과 관계를 심화해야 한다는 민진당의 견해를 유권자들이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평가했다.
민진당, 야권 분열 반사 이익…국민당에 다수당 자리 내줘, 복합적 민심 작용
하지만 결과를 뜯어보면 이번 선거를 민진당의 온전한 승리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라이 후보는 국민당 허우 후보에 90여만표 차이로 승리를 거뒀다. 민진당 소속인 차이잉원(蔡英文) 현 총통이 앞선 두 번의 선거에서 각각 308만여표와 264만여표 차이로 국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것과 비교된다. 제2 야당인 민중당의 커 후보가 369만466표를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야권 분열의 반사이익을 본 측면이 강하다. 결과적으로 3자 대결 구도가 아니었다면 민진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민진당이 총통 선거와 함께 치러진 입법위원 선거에서 국민당에 패배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민진당은 전체 113석 중 51석을 확보해 52석을 얻은 국민당에게 다수당 지위를 내줬다. 민중당은 8석을 차지했다. 이전 두 번의 선거와 달리 입법회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고 국민당에 다수당 지위를 내어줌에 따라 민진당의 국정 동력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민진당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게 된 민중당과 적극적인 연대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린쯔리(林子立) 대만 동해대 정치학과 교수는 “민진당이 총통 선거에서 이겼지만 입법회 다수당이 되지 못한 것은 민진당의 완전 집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안감이 컸다는 의미”라고 대만 중앙통신사에 말했다. 린 교수는 이어 “국민당의 패인은 92공식(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한 양안간 합의)에 갇혀 있고, 전 세계가 디리스킹화(탈위험화) 할 때 단일 시장인 중국과의 무역 재개에 주력한 것이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번 선거 결과를 단순히 ‘친미냐 친중이냐’, ‘민주주의냐 권위주의냐’의 선택으로 볼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진호 대만중앙연구원 방문교수(단국대 정치학과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대만인들의 이념적 성향은 과거보다 약해진 측면이 있고 이번 선거에는 이념과 경제 문제 등이 모두 얽혀 있었다”며 “미국이 좋아서 민진당을 선택했다기 보다는 대만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해 지금은 미국과의 관계를 우선시 할 필요가 있다고 본 유권자가 더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린 교수도 “민진당은 저임금과 고용 환경 악화, 높은 집값 등으로 젊은 표심이 커 후보에 흘러간 상황을 인식해야 하며 향후 분배 문제 등이 라이 당선인에게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타이베이이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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