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꼭 쥔 채 죽은 딸..” 전쟁 100일 가자지구는 ‘극한의 삶’
"지난 100일간 벌어진 막대한 죽음과 파괴, 피란민 발생, 굶주림, 상실과 슬픔이 우리 모두의 인간성을 더럽히고 있다."
AFP 통신에 따르면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의 필립 라자리니 집행위원장은 13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찾아 이렇게 규탄했다. 라자리니 위원장의 방문은 가자 전쟁 개전 100일을 하루 앞두고 이뤄졌다. 이날 그는 가자지구의 어린이 모두가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었고 질병이 확산하고 있는 데다 이스라엘이 구호물자 반입을 제한한 탓에 "기근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고도 경고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가자 전쟁이 100일째를 맞이한 가운데 전쟁터가 된 가자지구 주민들의 삶은 극한으로 몰리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폭격과 총격전을 피해 주민들은 곳곳을 떠돌며 목마름과 굶주림, 질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노약자부터 차례로 목숨을 잃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마스는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을 기습해 약 1140 명을 살해하고 250명을 납치해 인질로 잡아 가뒀다. 사망자는 대부분 저항 능력이 없는 민간인이었다. 전쟁을 선언한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같은달 말 지상군을 투입했다. 이후 3개월간 이어진 전쟁으로 가자지구는 쑥대밭이 됐다.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보건당국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2만3843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고 대다수가 여성과 미성년자다. 이들은 사망자 중 하마스 무장대원의 숫자는 공개하지 않았다.
마틴 그리피스 유엔 인도주의·긴급구호 사무차장은 최대 격전지였던 가자지구 북부의 경우 여전히 길가에 시신이 방치돼 있고 굶주린 주민들이 구호물자가 실린 트럭을 약탈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1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보고했다. 그는 가자지구의 기근 위험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면서 이스라엘이 인도적 구호 물자 반입을 지연시키거나 승인을 거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엔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이달 1일 이후 진행될 예정이었던 21건의 구호물자 반입 계획 중 3건에 대해서만 허가를 내줬다. 이집트 국경과 맞닿은 가자지구 남부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물자가 들어갔지만, 외부 세계의 구호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190만 명 피란민을 돕는 데는 턱없이 부족한 분량이라고 한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힘겨루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가자지구에 갇힌 일반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고통이 형용하기 힘든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남부 라파의 알나자르 병원에서 딸의 사진을 손에 쥔 주민 바셈 아라프는 "손에 빵을 꼭 쥔 채 굶어 죽었다. 빵을 빼내려 했지만 꽉 쥐고 있더라"면서 "그들이 가자지구에서 표적으로 삼은 저항세력이란 게 이런 어린이들이냐"고 분노를 토했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민간인이 숨졌다는 소식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집에 있다가 최근 폭격을 맞았다는 주민 니마 알아크라스는 "비명을 질렀으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누군가 나를 끄집어내 손수레에 실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스라엘군은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려 노력하지만 하마스의 ‘인간방패’ 전술 탓에 어쩔 수 없이 희생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가자지구 곳곳에 붙들려 있는 인질들의 조속한 석방을 위해 휴전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스라엘 내에서도 커지고 있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이러한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는 실정이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승리할 때까지 하마스와의 전쟁을 계속할 것"이라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 역시 가자 전쟁은 "우리가 여기서 안전히 살 권리를 위한 것"이라면서 작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뉴욕타임스(NYT)는 카타르에서는 하마스가 억류 중인 이스라엘인 인질들에게 의약품을 전달하는 대가로 가자지구 민간인들을 위한 구호물자 반입을 늘리는 방안이 협상되고 있다고 전했다.
박동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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