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민주당 분열·위기 부른 이재명의 ‘선사후당’
최혜정 | 논설위원
총선을 석달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비주류 인사들의 이탈이 현실화됐다. 지난 연말 이상민 의원의 탈당에 이어 최근 ‘원칙과 상식’ 소속 김종민·이원욱·조응천 의원, 5선 의원 출신이자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까지 당을 등졌다. 저마다의 속내는 다르겠지만 공식적으로 밝힌 사유는 공통적이다.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체제 이후 “폭력적이고 저급한 언동이 횡행하는 1인 정당, 방탄 정당”(이낙연), “방탄·패권·팬덤 정당”(원칙과 상식)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자신이 비판하던 국민의힘 품에 안긴 이상민 의원의 행보도, 새로운 정치 세력을 자임한 인사들도 모두 자신들이 내건 명분과 가치가 합당한지는 국민의 판단을 받게 될 것이다. 다만 ‘원인 제공자’로 지목된 이재명 대표가 당의 균열이 가시화되는데도 무대응으로 일관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불의의 피습을 고려하더라도 두달 가까이 이어진 ‘원칙과 상식’ 소속 의원들의 당 혁신 요구는 외면했고, 이낙연 전 대표와는 서로의 ‘명분 쌓기용’ 한차례 면담이 전부였다. 당 안팎에서 이어진 통합 호소에는 침묵으로 답했다. 제1야당의 분열 국면에서 가장 도드라진 것은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 부재와 이에 따른 민주당의 위기다.
새해 들어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공통적 모습은 정권 안정론을 압도하는 정권 심판론, 그리고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민주당 지지율이다. 지난 12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총선에서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답은 51%로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답(35%)을 크게 앞섰다. 반면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율은 각각 36%, 34%로 큰 차이가 없었다. 전날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에서도 ‘정부·여당 견제론’(50%)이 절반에 이르렀으나 민주당 지지율은 33%에 그쳤다. 정권 심판론에는 동의하지만 민주당은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층이 두텁게 존재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본격화된 제3지대 움직임이 국민의힘보다 민주당에 더 타격을 줄 것이라는 조사도 나오고 있다. 와이티엔(YTN)·엠브레인퍼블릭의 조사를 보면, 국민의힘에 투표하겠다는 유권자 가운데 이준석 신당(7%)·이낙연 신당(2%)을 택하겠다는 답은 9%였지만, 민주당 성향의 유권자 중 이준석(8%)·이낙연(9%) 신당으로 이동하겠다는 응답은 17%에 이르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민주당의 기존 지지층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의 ‘내우외환’은 이재명 대표를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 대표 취임 이후 민주당은 대표 사법리스크로 ‘방탄 정당’ 수렁에 빠졌고, 이 대표는 강성 지지층에 기대어 ‘이재명 사당화’ 논란을 자초했다. 특히 지난해 9월 체포동의안 부결 호소로 명확해진 이 대표의 ‘선사후당’ 모습은 이번 비주류 탈당 사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총선 앞 당의 분열을 막기 위해 김부겸·정세균 등 전직 총리를 비롯한 당 안팎의 많은 인사들이 이 대표에게 통합 노력과 ‘기득권 포기’ 등을 호소했으나 묵살됐다. 당대표로서 당의 분열을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기 어렵다.
지난 대선 이후 이 대표는 윤석열 정권의 탄압을 호소하며 이에 대응하는 데 당력을 동원했고, 정권의 무능함과 무도함을 부각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4월 총선 역시 정권 심판론으로 돌파하겠다는 태세다. 하지만 ‘야당 탄압’ ‘정권 심판’ 말고는 국민에게 ‘왜 민주당이어야 하는가’는 설명하지 못한다. 민주당이 국가적 과제인 저출생, 지방소멸, 기후위기, 연금개혁 등을 놓고 정부·여당과 정책 대결을 벌이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연동형 비례제 등 정치개혁 의제를 국민의힘과 짬짜미해 퇴행시키려 한다는 의심만 샀을 뿐이다. 원칙도 명분도 저버린 채 정치적 유불리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이 대표는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국민이 하는 것”이라고 여러 차례 얘기해왔다. 이번 총선에선 윤석열 정부 중간평가와 함께 ‘이재명의 민주당’에 대한 국민적 판단도 함께 내려질 것이다. 제1야당 지도자로서 책임은 방기한 채 당내 기득권에 안주하는 모습으로는 미래를 도모하기 어렵다.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과감한 혁신과 비전 제시, 당을 위해 희생하는 ‘헌신의 리더십’만이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일 것이다.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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