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회장이 ‘백지 수표’ 주던데요”…‘전설’의 한국인 사업가 근황 [신기자 톡톡]

신수현 기자(soo1@mk.co.kr) 2024. 1. 14.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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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자 톡톡 – 4]
게임 업계 ‘살아있는 전설’ 김정률 싸이칸홀딩스 회장
‘라그나로크’ 개발사 ‘그라비티’ 창업…美 나스닥 상장
2005년 손정의 회장에 4천억원대 매각 ‘성공 신화’
김정률 싸이칸홀딩스 회장이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싸이칸홀딩스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신수현 기자>
“2005년 어느 봄날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님의 동생(현 손태장 미슬토 회장)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백지 수표를 꺼내더군요. 형(손정의 회장)이 제가 창업해서 운영 중인 게임회사 ‘그라비티’를 인수해오라며 백지 수표를 줬대요. 제가 원하는 금액을 줄 테니 그라비티를 소프트뱅크 그룹에 매각하라며 계속 설득하더군요. 그라비티가 개발한 온라인 게임 ‘라그나로크’가 세계 약 40개국에 수출할 정도로 엄청나게 흥행하면서 손정의 회장이 그라비티를 꼭 인수하라고 지시했대요.”

게임 업계 살아있는 전설, 우리나라 게임 산업을 키운 1세대 주역. 김정률 싸이칸홀딩스 회장에게 붙는 수식어이다.

김정률 싸이칸홀딩스 회장은 2000년 게임 개발 회사 ‘그라비티’를 설립했다. 2005년 2월 그라비티를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후 같은 해 하반기 소프트뱅크 그룹에 한화 약 4000억원에 매각해 게임 업계 성공 신화를 썼다. 현재의 화폐가치로 단순 환산해도 1조원은 넘는 금액이다.

그는 1994년 한국게임제작협회를 만들었으며, 협회를 주축으로 1995년부터 2004년까지 게임쇼 ‘대한민국게임대전’을 개최해 우리나라 게임 산업을 육성하는데 앞장섰다. 대한민국게임대전은 2005년부터 매년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국제 게임 전시회 ‘지스타’의 전신이다.

약 20년 전 한화로 약 4000억원을 거머쥔 그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김정률 싸이칸홀딩스 회장을 만나 그가 걸어온 길과 근황 등을 들어봤다.

-과거 얘기부터 해보려고 한다. 1983년 무역회사를 세우고 첫 사업을 시작했다고.

▷어렸을 때부터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다. 가난했기 때문에 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1970년대 중반, 당시 23살인가 24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젊은 나이에 패기, 열정만으로 기술을 배우겠다며 무작정 일본에 갔다. 일본 치요다공업기술전문대학에 입학해서 기술을 배웠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어 학비를 냈다.

일본에 있을 때 게임기기 등을 설치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게임기기 등을 처음 접했다. 자연스럽게 게임 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1982년 게임기판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사업을 한국에서 했다. 첫 사업이었다. 이듬해 무역회사를 설립하고 게임기판을 수출했다. 1989년 테마파크 ‘롯데월드’가 개장할 때 롯데월드에 게임기계(오락기) 등을 설치해주는 일도 했다.

1996년 무렵 온라인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온라인 게임을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온라인 게임 개발에 착수해 개발하다가 2000년 4월 게임 개발회사 그라비티를 설립했다.

-그라비티가 2005년 2월 나스닥에 상장됐다. 상장 전 얼마만큼 대단한 기업이었나.

▷온라인 게임 ‘라그나로크’가 대만, 일본, 태국, 중국, 미국, 인도네시아, 브라질, 인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약 40개국에 진출한 상태였다. 사업을 하면서 동남아시아 등 해외 출장 기회가 잦았는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동남아에는 온라인 게임이 활성화가 안 돼 있었다. 동남아 온라인 게임 시장 개척에 도전해서 성공했다.

-나스닥 상장 준비 과정에서 겪으셨던 기억에 남는 일화는.

▷미국 증시 상장을 통해 세계 여러 국가의 자본을 끌어와서 그라비티를 세계적인 게임 회사로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다. 해외 증시 상장이기 때문에 조용히 준비했다. 회계법인 등 상장 관계자들과 주로 밤에 만나서 회의했다. 소문나지 않게 조용히 상장을 준비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라비티 매각 과정도 듣고 싶다.

▷2005년 어느 봄날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의 동생(현 손태장 미슬토 회장)이 저를 만나겠다며 한국에 왔다. 단 둘이 얘기하자고 해서 둘이 마주보고 앉았다. 손태장 회장이 백지수표를 꺼내면서 형이 회사를 인수해오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라비티를 상장한지 얼마 안 됐을 때였고, 회사를 매각할 생각도 전혀 없었다. 손태장 회장의 설득에 마음이 흔들렸다. 손정의 회장을 만나보기로 결심하고 일본에 갔다. 그해 봄 손정의 회장을 처음 만났다. 손정의 회장과 만났다는 것 자체가 세상에 알려지면 그라비티 주가가 폭등할 수 있고, 주가 폭등은 매각 무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극비리에 만났다.

손정의 회장은 자신이 지금까지 겪었던 수많은 고생담 등 여러 개인적인 얘기를 들려줬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그라비티를 나스닥에 상장하기까지 겪었던 여러 어려움 등 제 얘기도 손 회장한테 해줬다. 한국에서 요즘 유행하는 것들 등 여러 분야의 한국 얘기도 손 회장한테 말해줬는데, 손 회장이 흥미로워했다.

손정의 회장이 원하는 매각가를 얘기하라고 해서 주저하지 않고 1조원을 불렀다.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수조원대에 달할 것이다. 손 회장이 매우 놀라면서 깎아달라고 했다. 저는 회사를 팔 의향이 없었기 때문에 낮출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손 회장을 여러 번 만났다. 아침에 만나서 저녁까지 둘이서만 대화한 적도 있다. 손 회장 직원이 아닌 한국인 중에 저보다 손 회장과 여러 번 독대한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손 회장과 자주 만나다가 결국 그라비티를 매각하게 됐다.

-매각 대금이 입금됐을 때 어떤 심경이었나.

▷고학력자도, 정보기술(IT) 전문가도, 명문대 졸업생도 아닌 제가 고생, 고생해서 현 위치까지 왔다는 사실에 울컥했다.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사람들이 제 눈물을 볼까봐 뒤돌아서 엎드려 있었다. 그동안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한편으로는 허전하고 회사를 이렇게 매각하려니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식 같은 회사였으니까.

-회장님이 느꼈던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은 어떤 사람.

▷한마디로 천재다. 어떤 사안에 대해 질질 끌면서 길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두뇌가 명석하고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안목도 뛰어나 의사 결정 속도가 빠른 편이다. 성격은 매우 급하다. 어떤 기업에 투자하거나 기업 경영권을 인수해야겠다고 결심하면 무섭게 몰아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그래서 손 회장은 ‘인수합병(M&A)의 야쿠자’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사업에 전념하느라 선본지 20일 만에 결혼했다고.

▷맞다. 언제나 일이 우선이었다. 일에 청춘을 바친 것 같다.

-그라비티 경영 과정에서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과 극복 방법.

▷46세였던 2000년 그라비티를 설립했다. 게임회사 개발자 중에는 2030세대의 청년들이 많다. 젊은 직원들과 의사소통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젊은 직원들의 고충을 귀담아 듣고 해결해주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핵심 개발자들이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회사 근처에 집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직원들, 특히 유능한 개발자들과 자주 식사하면서 어울리려고 힘썼다.

-우리나라 게임 업계를 키워온 1세대 주역으로서 우리나라의 게임 산업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게임 개발 업체들이 게임을 중국에 수출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 중국이 워낙 거대한 시장이라서 중국에서 성공만 해도 큰돈을 벌 수 있었다. 과거에는 중국 게임 개발 회사들이 선보이는 게임보다 우리나라 게임 개발 회사들이 개발한 게임 수준이 월등히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중국 기업들의 게임 개발 수준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우리나라 게임 개발 회사들이 지금까지는 잘해왔다. 앞으로 어떤 전략을 세우고 어떻게 해외 시장을 개척할지 등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한국인들은 똑똑하니까 차별화된 게임 콘텐츠를 개발하면 해외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 일을 하나.

▷싸이칸홀딩스를 설립해 회장을 맡고 있다. 싸이칸홀딩스는 지주사로, 지주사 산하에 일본에 설립한 게임 개발 회사, 테마 파크 등 부동산 개발 회사, 골프장 운영 회사 등이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전부 알고 있다는 가정 하에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우리나라 인구가 점점 줄고 있기 때문에 첨단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로봇 개발 사업을 해볼 것 같다.

-다시 태어나도 창업할 것인지.

▷부잣집 자녀로 태어난다면 세계 곳곳을 여행 다니면서 여행기나 쓰면서 즐겁게 살고 싶다. 그동안 너무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아왔다.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혈압이 높아졌고 얼굴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을 받은 적도 적지 않다. 하지만 가난하게 태어난다면 창업가의 길을 걸을 것 같다.

-오래 전에 경제적인 자유를 이뤘는데, 왜 아직도 열심히 사는지.

▷이미 벌여놓은 여러 사업 때문에 그만둘 수 없다. 직원들이 많기 때문에 쉬고 싶다고 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제가 일하는 것을 즐기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또 이루고 싶은 게 있는지.

▷여행하고 싶다. 해외 출장을 자주 갔고, 지금도 자주 가지만 여행을 거의 못해봤다.

-끝으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3가지만 꼽으면.

▷신용, 도전정신, 열정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은 신용이다. 신용은 곧 자기 자신의 브랜드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

둘째 도전정신이다. 새로운 것, 남들이 가지 않은 분야, 남들이 위험하다고 꺼리는 분야에 과감히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도전해야 기회를 잡거나 만들 수 있다.

셋째 열정이다. 해보겠다는 의지, 강한 신념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명문대 졸업했다고 성공하는 시대가 아니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졸업해도 열정이 없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그리고 부지런해야 한다. 게으르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

* 신기자 톡톡은 화제의 인물, 특정 분야에 성공한 사람, 독특한 인생을 살고 있거나 살아온 분, 특수 직종 종사자 등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는 연재 코너입니다. 아래 기자페이지의 ‘+구독’을 누르시면 놓치지 않고 기사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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