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무전공 입학 확대, 혼란 없을까 [김유나의 풀어쓰는 교육 키워드]

김유나 2024. 1. 1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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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무전공 입학
교육 정책에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 정확히 어떤 뜻인지 알고 계신가요? ‘김유나의 풀어쓰는 교육 키워드’는 최근 교육 기사에 자주 쓰이는 단어의 의미와 관련 논란에 대해 교육부 출입기자가 설명하는 연재 기사입니다.

“대학 입학 정원의 30% 정도는 전공 벽을 허물고 입학시킨 후 전공 선택권을 주도록 하려고 한다.”

지난해 10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꺼낸 이야기입니다. 당시 이 부총리는 “대학도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 전공과 영역 간의 벽은 교수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기 때문”이라며 “전체 대학에 가이드라인을 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부총리가 말한 것은 ‘무(無)전공 입학’입니다. 전공을 선택하지 않고 입학하는 것으로, 입학 후 다양한 전공을 들은 뒤 2·3학년 때 학과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일부 대학에서 ‘자유전공학부’ 등의 이름으로 학생을 뽑고 있긴 하지만 비율을 30%까지 늘리는 것은 파격적인 시도입니다.
2024학년도 수험생 학부모들이 ‘종로학원 2024대입 수시정시 합격 예상 점수 공개 및 수험생 지원전략 설명회’에서 배치표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이 부총리의 선언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 주요 대학들은 당장 올해 고3이 되는 학생이 치를 2025학년도 대입부터 무전공 입학 정원을 늘리거나 신설한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습니다. 서울대는 현재 123명인 자유전공학부 정원을 400명 정도로 확대하는 안을 검토 중입니다. 의치대·간호대·사범대 등 국가자격증과 관련돼 자유전공학부에서 선택이 불가능한 학과를 제외한 정원(2600명)의 15%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한양대는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하고 250명을 선발하는 안을 고려하는 등 서울 주요대 대부분이 논의에 들어갔습니다.

학교 입장에서 무전공 입학은 구미가 당기는 전형은 아닙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나서는 이유는 교육부가 수십억 원의 인센티브를 내걸 전망이기 때문입니다. 교육부는 이달 중 대학혁신지원사업 개편 계획을 확정할 예정인데, 연구진 안에는 수도권대와 주요 국립대가 무전공 입학을 늘려야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이 담겨 있습니다. 무전공 입학은 ①구분 없이 모집 뒤 대학 내 모든 전공(보건의료 등 일부 제외) 중 선택 ②계열·학부 등 광역단위로 모집 뒤 광역단위 안에서 선택하는 방식이 있는데, 수도권대·국립대는 ① 또는 ①+② 혼합 방식으로 일정 비율 선발해야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시안에 따르면 ①을 택한 대학은 2025학년도에 정원 내 모집의 5% 이상, 2026학년도에 10% 이상을, ①+②를 택한 대학은 2025학년도 20∼25% 이상, 2026학년도 25∼30% 이상을 이 방식으로 선발해야 합니다. 받을 수 있는 돈은 수도권대 76억원, 국립대 155억원 정도로 추정됩니다. 대학 입장에선 ‘돈줄’을 쥔 교육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부총리는 대학 혁신은 자율성에서 나온다며 줄곧 ‘톱다운’ 방식은 안 된다고 이야기했지만, 무전공 입학은 정부 주도로 끌고 가는 인상이 강합니다. 

평소 융합교육을 강조하는 이 부총리에게 무전공 입학은 또 하나의 혁신일 것입니다. 취지대로 잘 운영된다면, 진로를 찾을 틈도 없이 입시경쟁에 내몰렸다가 점수에 맞춰 학과를 선택하는 경우는 줄 수 있겠죠. 전공 탐색 시기에 평소 몰랐던 자신의 적성을 발견할 수도 있고,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들은 경험은 인생의 큰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연합뉴스
그러나 갑작스러운 확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큽니다. 대학가에선 과거 학부제가 많았으나 2000년대 들어 축소됐고,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 도입으로 남는 법학과 정원을 자유전공학부로 돌렸다가 폐지한 대학도 적지 않습니다. 인기학과에 학생이 몰리면서 비인기학과는 외면받고, 인기학과 진학을 위해 1·2학년 때 ‘적성 탐색’이 아니라 ‘성적이 잘 나오는’ 과목 공부에만 매진하는 등 부작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택하는 전공은 결국 1·2학년 성적순이어서 ‘고등학교 4학년’이란 말도 나옵니다.

융합의 취지는 좋습니다. 다만 배치표에 학과별 점수가 줄 세워지는 현실에서, 자유롭게 듣고 싶은 수업을 듣고 끌리는 학과를 선택하도록 한다는 것은 너무 아름다운 환상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무전공 입학이 정말 대학생들에게 온전한 진로 탐색 기회를 줄 수 있을까요? 

입시업계에서는 서울 주요 대학의 학과 정원이 수백명씩 변동되는 만큼 대입 지형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당장 8개월 뒤 수시 원서 접수를 해야 하는 예비 고3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부총리는 대입 정책은 “수험생에게 혼란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지난해 수능을 치른 수험생은 ‘킬러문항’ 논란으로 한 차례 혼란을 겪은 바 있습니다. 올해에는 수험생에게 혼란을 덜 주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되기를 바랍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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