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끼리 동성애 탐닉한다는 ‘이 동물’…암컷과도 교미하는 이유 있다는데 [생색(生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4. 1. 1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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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19] #20대 남성 둘이 길거리에서 여성 한 명을 유혹했다. 키 크고 잘생긴 남자 둘이 뽐내는 매력에 여성은 ‘선’을 넘고 말았다. 집단 성관계를 가진 것이다. 한 달이 지났을까. ‘그날’인데도 신호가 오지 않았다. 임신이었다. 아버지는 알 수 없었지만, 둘 중 하나임은 분명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사실을 알렸다. 그들 모두 “너무 잘된 일”이라면서 책임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여자는 이 말을 믿고 아기를 지우지 않았다. 그리고 9달 뒤, 아이가 태어났다. 남성 둘 다 수시로 병원을 찾았다. 아기의 건강을 확인했고, 여성을 안심시켰다. 유리창 너머 아이를 쳐다보는 모습은 ‘아버지’ 그 자체였다.

산후조리원에서 퇴원하는 날, 두 사람이 차를 타고 대기하고 있었다. “아이를 안아보겠다”고 요청하더니, 그 길로 사라져 버렸다. 나중에 알게 됐다. 그 두 사람이 게이커플이라는 사실을. 아기를 낳기 위해서 여성을 이용했음을.

그리스신화 속 태양의 신 아폴로(오른쪽)와 그의 연인 히아킨토스. 장 브록의 ‘히아킨토스의 죽음’ 1805년 작품.
황당한 이야기에 놀라셨지요. ‘집단 성관계’, ‘임신’, ‘게이커플’, ‘유아 유괴’까지. 인간 세계에서는 도통 일어나기 힘든 일일 테니까요. 맞습니다. 이건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잠시 눈을 돌려 자연을 둘러보면 이곳에선 왕왕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리따운 동물을 대표하는 ‘흑조’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치정극’으로 초대합니다.
호수 위 흑조. [사진 출처=JJ Harrison]
흑조 수컷 두 마리가 암컷 한마리와 난교한다
윤기가 도는 흑조 두 마리가 호수 위를 배회합니다. 두 녀석은 저 멀리 떨어진 암컷 한 마리를 뚫어지게 응시하지요. 짝짓기 상대로 낙점 지었기 때문입니다. 수컷 두 마리가 동시에 암컷에게 다가갑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삼각관계의 시작처럼 보입니다. 수컷 두 마리가 암컷 한 마리를 두고 싸우는 일은 비일비재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이 녀석들의 교미는 어찌된 일인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갑니다. 두 수컷이 싸우는 대신 같이 교미하기로 결정하면서입니다. 시쳇말로 ‘난교’, 영어로는 ‘쓰리X’. 세 놈의 화끈한 교미 소리가 호숫가에 울려 퍼집니다.

“아빠, 엄마는 어디 갔어요?” “응 미국에 갔어.” 새끼를 지키는 흑조. [사진 출처=Looking Glass]
마흔날이 지났을까요. 암컷이 알을 낳았습니다.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알을 품은 암컷 옆에는 여전히 두 수컷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요.

그런데 알이 부화하자 이 녀석들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암컷에게 다가가더니 둥지에서 내쫓아버리는 것이었지요. 암컷은 저항도 하지 못하고 쓸쓸히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새끼를 데려가려고 했으나, 두 수컷은 필사적으로 막아섭니다. 둥지도, 아이도, 사랑도 다 빼앗긴 비운의 암컷. ‘낙동강의 흑조’ 신세였습니다.

“수컷 저놈들이 게이였다니...” 영화 ‘블랙스완’의 나탈리 포트먼. [사진 출처=영화사 그램]
새끼를 갖기 위한 흑조 동성 커플의 숨은 전략
수컷 두 놈의 전략은 계획적이었습니다. ‘두 놈’은 동성 커플이었지요. 사랑하던 두 놈은 자신들의 새끼를 낳고 싶었고 알을 낳기 위해서 암컷 한 마리를 끌어들인 것이었습니다.

흑조 세계에서 동성애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닙니다. 커플 중 25%가 수컷끼리의 동성연애로 추정됩니다. (암컷의 동성애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흑조 동성 커플은 알이 놓인 둥지를 빼앗는 방식으로 새끼를 훔쳐 키우기도 합니다. 인간세계의 유아 유괴처럼요.

“아빠, 저는 왜 아빠만 둘이에요?” [사진 출처=Sid Mosdell from New Zealand]
인간의 세계도 그렇지만 동성 커플이라고 막장 가족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이들은 누구보다 행복하게 새끼를 키워서입니다.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먹이를 잡는 법도 꼼꼼히 가르칩니다. 새끼가 둥지를 떠날 때까지 두 사람은 부모 아니 부부(父父) 역할에 충실하지요. 일부일처로 이름난 흑조는 동성연애일지라도 ‘일부일부’의 원칙을 잘 지켜나갑니다.
번식 생존율 높아서라지만...
이들이 동성연애에 탐닉하는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설은 존재합니다. 새끼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힘센 동성 커플이 둥지를 더 잘 지킬 수 있기에 그만큼 새끼의 생존율도 높아진다는 분석이지요.

자연스레 번식의 효율도 높아집니다. 연구진에 따르면 암컷-수컷을 부모로 둔 새끼 흑조가 독립할 때까지 생존율은 30%지만, 수컷-수컷 커플의 경우 80%까지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둥지를 살피고 있는 흑조. [사진 출처=Calistemon]
둥지를 지켜내기에 수컷이 한 마리 있는 것보다, 두 마리 있는 게 아무래도 더 생존에는 유리하겠지요. 하지만 이 이론이 완벽한 건 아닙니다. 수컷 동성 커플이 새끼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건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일 텐데, 왜 유독 흑조만 많은지는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직 과학이 증명해야 할 것이 많이 남은 셈이지요.
동성 교미하는 동물 자연계에 1500종이나 된다
동성 커플의 이야기는 오직 흑조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예일대학교 줄리아 몽크 교수가 쓴 ‘동물의 동성 성적 행동과 그 진화에 대한 가설’에 따르면, 동물 1500여종이 동성애적 행동을 한다고 보고합니다.(아직 ‘생색’이 다뤄야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는 의미입니다.)
블랙스완을 묘사한 1792년 그림. 영국 런던자연사박물관 소장품.
과거 생물학은 가르쳐 왔습니다. “번식이 아닌, 사랑과 쾌락을 위한 섹스는 인간만의 전유물”이라고요. 하지만 자연은 흑조와 1500종을 통해 반증합니다. 동물에도 섹스는 사랑과 쾌락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요.

그렇지 않다면 번식과는 관계없는 동성 커플이 존재할 리 없었을 테지요. “동성애 반대”를 외치면서 “동성애는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란 논리. 이제는 더 다듬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은 수 많은 동성애로, 수 많은 사랑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블랙스완’에서 나탈리 포트먼. [사진 출처=영화사 그램]
<세줄 요약>

ㅇ흑조는 동성 커플로 유명한 동물이다. 4분의 1이 ‘게이’ 커플이다.

ㅇ이들은 암컷과 집단 성관계를 통해 알을 낳고, 암컷을 내쫓는다.

ㅇ자연계에는 동성 교미가 의외로 많다.

<참고 문헌>

ㅇ제프 맥팔레인 외, 새들의 동성애적 행동, 행동생태학,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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