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술집 짱돌 투척 사건’…한 손엔 도끼, 한 손엔 성경 ‘왜’ [김기정의 와인클럽]
하지만 아내는 전남편의 예능 멘트를 다큐로 받아들인 모양입니다.
1901년 4월 미국 미주리주 켄자스 시티. 다운타운 12번가에 위치한 술집 앞을 찬송가를 부르는 여성들이 둘러쌉니다. 한 여성이 손도끼로 술집의 술병과 탁자를 닥치는 대로 부숩니다.
그녀의 이름은 캐리 네이션. ‘한 손에는 도끼,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다니며 술집의 기물을 파괴했습니다. 그녀의 폭력적인 ‘금주운동’은 사회적 파장이 커 미국 ‘금주법’이 도입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칩니다.
미국의 여성운동가로 급진적 금주운동을 벌였던 캐리 네이션의 스토리를 시작으로 이번 주 김기정의 와인클럽은 ‘미국 금주법과 고귀한 실험’을 다뤄봅니다.
캐리 네이션은 19살에 젊은 의사 찰스 글로이드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찰스 글로이드는 잘생긴 얼굴에 모든 것이 완벽했지만 ‘술’이 문제였습니다.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술에 의존하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사실 1852년 이전에는 ‘알코올 중독’이란 단어 자체가 없었습니다. 스웨덴 의사 망누스 후스가 술의 부작용을 발표하면서 ‘알코올 중독’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했는데 의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왜냐하면 당시만 해도 ‘술’은 의료용으로 대접받을 때였으니까요.
‘술꾼’ 사위를 들일 수 없다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캐리 네이션은 21살에 결혼했지만 남편의 술버릇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임신 중에도 남편은 동네 술집을 전전했고 결국 결혼한 지 2년도 채 안 된 1869년 남편은 사망합니다. 23살 미망인과 갓난아기를 두고. 원인은 과도한 음주로 인한 폐렴이었습니다.
여성의 지위향상, 사회진출, 참정권 운동을 하던 페미니스트들이 ‘금주운동’에 나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술을 마신 남편이 처자식을 폭행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또 술집에서 생활비를 다 써버려 가사탕진한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금주운동에 참여한 케리 네이션이 처음부터 도끼를 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찬송가를 부르거나 출근하는 바텐더에게 “좋은 아침입니다. 남성들의 영혼 파괴자님!”이라고 인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술’로 인한 가정폭력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음주는 나쁜 것’이란 인식이 퍼지긴 했지만 캔자스주의 금주법은 통과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금주운동 결과에 불만족한 케리 네이션은 1900년 6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방향을 알려주소서...”
캐리 네이션의 폭력적 금주운동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를 풍자한 ‘캔자스 살롱 파괴자’라는 무성영화도 나올 정도였습니다. 영화 ‘쿵푸허슬’의 도끼파 두목 같은 모습을 한 캐리 네이션의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어서 후에 그녀는 손도끼 할머니(Hatchet Granny)라 불리게 됩니다.
금주법 시행으로 캘리포니아의 와인 산업도 타격을 받습니다. 와인 생산자 일부는 포도밭을 갈아엎고 과수원을 만듭니다. 또 다른 일부는 합법적으로 와인을 파는 창의적인 방법을 개발하는데 그중 하나가 ‘그레이프 브릭(Grape Brick)입니다.
그레이프 브릭은 건조된 농축 포도주스 덩어리였는데 벽돌처럼 생겼습니다. 소비자가 그레이프 브릭을 사서 이를 물에 녹여 발효시키면 ’와인‘이 되는 겁니다. 하지만 급주법 시대니 이 방법을 대놓고 알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안을 찾았는데 바로 ‘와인이 되지 않는 법’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경고: 덩어리를 물에 녹인 후, 그 액체를 20일 이상 찬장에 두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와인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실제 그레이프 브릭으로 만든 와인의 맛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와인 맛과는 전혀 달랐던 모양입니다.
식초와 감옥에서 만든 와인의 중간 정도일 것 같다는 평가도 있네요. 미국 감옥에선 음주가 허용 안 되니 포도주스와 케첩을 지퍼백에 섞어 넣은 뒤 라디에이터 위에 올려놓고 양조시켜 와인을 몰래 만들어 마신다고 합니다.
‘돈’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사람들이 몰리는 데 그 중 한명이 미네소타에서 온 체사레 몬다비였습니다. 나파밸리의 유명 와인메이커 로버트 몬다비의 아버지입니다. 체사레 몬다비는 캘리포니아의 포도를 미네소타에 파는 일을 했는데 금주령이 없어지자 스탠포드대학을 졸업한 아들 로버트 몬다비와 함께 상업용 와인생산에 나섭니다.
일각에서는 이 시기를 캘리포니아 와인의 ’흑역사‘로 부르기도 합니다. 품질보다는 대량생산에만 초점을 맞춘 시기였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선 대량생산이 가능한 ‘알리칸테 부쉐‘라는 포도품종을 많이 심었는데 이 포도로 만든 와인에 설탕과 물을 조금 섞으면 다른 포도품종의 2배에 달하는 양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1976년 ‘파리의 심판’으로 명성을 되찾을 때까지 캘리포니아 와인은 침체기를 겪습니다.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그냥 평범한 호텔 계단과 벽면인데요. 자세히 보면 문과 손잡이가 있습니다. 여기가 그 유명한 ’찰스 H‘ 바(Bar)의 출입구입니다. 간판도 없고 출입구도 위장돼 있어 찾기 힘듭니다.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와라‘ 이런 식이죠. 이런 공간을 스피크이지(Speakeasy)라고 합니다.
미국 금주법 시대 만들어진 비밀스러운 무허가 주점을 컨셉으로 하고 있습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도 금주법 시대인 1920년대입니다. 주인공은 개츠비는 밀주업으로 큰돈을 버는데요. 옛 연인 데이지를 만나기 위해 자신의 저택에서 화려한 파티를 열고 술을 마시며 즐깁니다. 영화를 보면 금주법 시대 어떻게 개츠비가 집에서 술 파티를 열 수 있었는지 궁금증이 들기도 합니다.
금주법 시대라고 해서 술을 마시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었습니다. 생산, 유통, 판매는 법으로 막았지만 자기 집에서 금주법 이전에 사놓은 술을 마시는 건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부유층은 밀주를 마시며 예전에 사놓은 술이라고 둘러댈 수 있었습니다. 기밀 해제된 미연방수사국(FBI) 보고서에 따르면 1922년 금주법 당시 대통령이었던 워런 하딩도 백악관에서 철도노조 지도자들과 마주할 때 위스키에 취해있었다고 합니다.
금주법의 결과는 아이러니했습니다. 금주법이 시행된 1920년부터 1933년까지 13년 동안 그 어느때 보다도 술 소비가 많았다고 합니다. 금주법으로 인해 술을 더 빨리 마셔야 했던 이유도 있을 겁니다.
밀주 유통과 판매를 도우면서 범죄조직인 마피아의 세력이 커지는 부작용도 낳았습니다.
1930년대 뉴욕타임스의 편집장이던 다니엘 오크렌트는 “금주법은 모든 면에서 실패였지만 실패는 긍정적이었다. 우리는 실패로부터 배운다. ‘다시는 시도하지 말자’라는 것을 배운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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