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맛 줄세워 봤습니다”…닭·오리·돼지·소·말, 천하제일 별미는 [푸디人]

안병준 기자(anbuju@mk.co.kr) 2024. 1. 14.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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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디인-10] 말고기(feat. 日 구마모토 말고기)

드디어 개 식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문화는 시간이 흐르면 바뀌기 마련이다. 음식도 문화의 일종인 만큼 찾는 사람이 줄어들면 자연스레 그 명맥이 끊기게 된다. 최근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어 앞으로 인간이 음식으로 식탁 위에 올릴 수 있는 고기 종류는 줄어들면 줄어들었지, 늘어나지는 않을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점점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지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말고기를 소개해볼까 한다.

1980년대부터 제주에서는 말고기가 향토음식으로 알려지고, 제주특별자치도에서도 말산업 육성차원에서 말고기 생산을 위해 인증제도 도입, 전문 비육마 생산목장 설치, 말고기 냉장유통 시스템 구축 등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육지에서 말고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게 현실이다. 아마 평생 한번 먹어볼까말까할 정도다. 제주도도 여러 번 들락날락 했지만 말고기를 먹을 기회는 안타깝게도 없었다.

그러다가 일본 내 말고기 소비량의 50%를 차지하는 일본 구마모토현에 방문해 말고기를 처음 영접했다.

구마모토현 주요 상점가 거리에는 ‘馬’가 간판에 쓰여 있는 음식점들이 눈에 종종 들어온다. 구마모토 3박4일 일정 동안 의도치 않게 말고기가 4끼나 나왔는데 말고기가 진짜 흔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여행객에게 땡처리를 하려한 것인지는 의심쩍긴 하다.

첫 말고기 식사는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구마모토현이 말고기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부러 말고기 전문점이 아닌 포장마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말고기는 돈을 제대로 주고 먹어야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많이 먹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맛만 보기로 한 것이다.

먼저 얇게 저민듯 나온 말 육회를 입속에 넣었다. 기름이 거의 없는 차돌박이 같은 형태의 말 육회는 너무 얇아서 그런지 아무런 고기 향과 맛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고기 자체는 질기지 않고 입에 녹는 듯 부드러웠다.

말고기 육회
다음은 말고기 샤부샤부였다. 마블링이 소고기처럼 예쁘게 피어있었고, 육회보다 두껍게 나오니 훨씬 고기다웠다. 육수가 끓자 말고기 1점을 서둘러 담갔다. 소고기 샤부샤부처럼 살짝 익혀 먹으니 쫀득한 식감과 고소한 맛이 기대 이상이었다. 전문적인 비육 과정을 거친 말고기는 소고기와 비교해 손색이 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담백하다는 얘기가 거짓은 아니었다.
샤부샤부용 말고기
마지막으로 말고기 교자가 나왔다. 만두와 교자, 딤섬이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데 말고기 교자는 이상하게 고기 비린내 같은 게 나서 쉽사리 입맛이 당기지 않았다. 그래도 4조각 중 3조각을 꾸역꾸역 먹어치웠다.
말고기 교자
내 인생 첫 말고기를 평가한다면 10점 만점에 8점 정도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말고기 교자를 먹지 않았다면 9점까지도 올라갔을 것이다. 특히 샤부샤부용 말고기는 소고기라고 식당에서 속이면 “일본 소고기가 맛있네”라고 먹었을 것 같다.

두 번째 말고기 식사는 의도치 않게 너무 순식간에 지나갔다. 구마모토와 가까운 쿠로가와 온천에 있는 한 료칸에서 저녁을 먹는데 말 육회가 나왔다. 첫 육회보다는 다소 두꺼운 편이었지만 크기는 작았다. 맛이나 풍미도 첫 육회처럼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았고, 스끼야끼로 먹은 소, 돼지, 닭에 비해 말고기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신세였다.

쿠로가와 온천에 있는 료칸에서 나온 저녁식사 메뉴 중 말고기 육회.
세번째 식사도 의도치 않았으나 오히려 다른 고기들과 비교해 말고기를 먹을 수 있어 진정한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일명 고기계단이라는 메뉴를 시켰는데 거기에는 닭, 오리, 돼지, 말, 우설, 구마모토의 브랜드 소고기인 아까규(赤牛), 로스트비프 등 총 7가지가 계단위에 올라와 있었다.

말고기 구이는 잡내가 없고 소고기만큼 기름진 느낌도 있어 아주 익숙하면서도 맛있었다. 육회보다는 구이로 먹어야 제대로 맛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굳이 7가지를 순위로 따지자면 익숙한 닭, 오리, 돼지가 하위권을 차지했다. 아까규와 로스트비프는 큰 감흥이 없어 중위권이었고 가장 별미는 말고기와 우설이었다.

1인분에 2400엔, 우리 돈으로 약 2만2000원 정도이니 한번쯤은 먹고 인스타에 올릴만한 아이템이지 않나 싶다.

총 7가지 고기가 나오는 고기계단. 제일 왼쪽부터 계단을 따라 닭, 오리, 돼지, 말, 우설, 구마모토의 브랜드 소고기인 아까규(赤牛). 제일 아래에 있는 것은 로스트비프.
네번째 말고기 요리는 구마모토의 대표 관광지 구마모토 성 앞에 있는 사쿠라노 코우지에서 만난 말고기 초밥과 고로케였다.

말고기 초밥은 참치살을 올려놓은 듯한 비주얼인데 맛은 참치살보다 덜 기름졌다. 육향이 느껴지지 않아 말고기인지 아닌지 구분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고로케는 말고기에서 약간 꿉꿉한 냄새가 나서 ‘싼 것이 비지떡’이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구마모토 성 앞에 있는 사쿠라노 코우지에서 만난 말고기 초밥. 고로케는 동영상 참조
日 말고기도 소·돼지에 비하면 별미 수준
말고기는 저칼로리 고단백 식품으로 예로부터 건강식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혈관질환 예방과 개선에 효과적인 오메가 3, 7의 함유량이 오리, 닭고기보다 2~3배 많고 단백질과 철분 함량이 풍부한 웰빙 식육으로 평가된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말고기가 신경통, 관절염, 빈혈에 효험이 있고 척추질환에도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말고기 산업이 우리보다 발달한 일본에서는 비용문제로 인해 직접 비육하기 보다는 수입을 늘리고 있다.

한국농촌연구원에 따르면, 일본의 말고기 자급률(생산량/소비량)은 1990년과 2000년대에 지속적으로 증가하다가 2013년 55%로 정점을 찍은 후 최근에는 감소하고 있다. 일본은 국내 생산과 수입을 통해 말고기의 소비를 충당하고 있는데, 도축두수 기준으로 일본 말고기 생산 대표지역으로는 구마모토현, 후쿠시마현, 아오모리현, 후쿠오카현 등이 꼽힌다.

일본의 말 도축 수는 2008년 1만5003마리에서 감소세를 보이다가 2018년(9761마리)로 바닥을 찍고2019년 1만297마리로 1만마리대를 회복했다. 다만 2020년 기준으로 돼지(1672만4007마리)와 소(104만3610마리)에 비하면 말(1만291마리)은 그야말로 별미 수준이다.

일본 말고기 도축 현황
제주도 말고기 대중화 성공할까?
제주 초원에서 말들이 풀을 뜯어먹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공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말고기의 70% 이상을 제주산이 차지하고 있다. 연도별 말고기 도축 두수를 보면 2020년 1143마리, 2021년 1151마리로 변동이 거의 없다가 2022년 1501마리로 증가했다. 3년 간 총 3795마리 중 2989마리(78.7%)가 제주에서 도축됐다.

제주도에는 말고기 음식점이 40여곳이 있으나 육지에서는 식당을 찾기 어려워 말고기 대중화는 아직 요원하다.

작년 10월에는 제주도가 말고기를 제주 대표 음식으로 육성하기 위해 생산, 가공, 유통, 홍보, 소비 분야 전문가 10명 내외로 마육산업 전담팀을 구성하고 말고기 소비 대중화를 위한 전략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경주용 퇴역마가 말고기로 유통되는 것을 차단해야 하고, 고품질 마육의 유통을 위해 비육마의 적정비육기간 설정, 소고기처럼 등급 판정을 받는 말의 비율 향상 등 말고기 대중화를 위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고기에 대한 대국민 인식 전환이 없는 한 말고기는 개고기처럼 역사 속의 음식으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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