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투 삼달리’ 지창욱-신혜선, “침묵을 깨고 사랑을 피워라!”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김재동 객원기자] 그러니까 결국 시인은 틀렸던 거다. 아니 “사랑은 피워도, 침묵 속에서 피워라”는 시구가 틀렸던 거다. 아니 시인에겐 맞았겠지만 JTBC 토일드라마 ‘웰컴투 삼달리’의 주인공 조용필(지창욱 분)과 조삼달(신혜선 분)에겐 맞지 않았던 거다.
두 사람의 신파는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서로를 속인 이타적 불신에서 비롯됐다. 조용필이 저만 아프고 말겠다고 작심한 것은 8년 전 어멍 부미자(정유미 분)씨의 제삿날이었다.
고미자(김미경 분) 삼촌이 차려온 엄마 제사 음식이 아버지 조상태(유오성 분)씨 손에 동댕이쳐졌을 때 미자 삼촌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래서 알게 됐다. 미자 삼촌의 심장이 고장난 것을. 용필에게 미자 삼촌은 또 한 명의 어멍이었고 사랑하는 삼달의 어멍이었다. 그 미자 삼촌의 위태로운 심장을 아버지 조상태씨의 날 선 혀와 증오서린 눈길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삼달에게 이별을 통고했었다.
그런가하면 삼달은 “하나 남은 아들마저 뺏어가려느냐!”는 조상태씨의 울분에 찬 호소 앞에 무기력했었다. 용필에게 하나 남은 가족 아방을 잃게 할 수는 없어서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해 각각의 사랑을 침묵 속에 봉인해 버렸었다.
하지만 8년이란 세월은 한 사람을 잊기 위해선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결국엔 평생마저 짧은 시간일 것임을 두 사람은 알아차렸다. 수 만 개의 신경세포가 서로만을 향해있다. 300g 남짓한 심장이 서로를 향해서만 고동친다. 서로에게 서로는 이미 이성이나 의지가 개입할 여지 없는 불수의(不隨意) 영역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왜냐하면 조용필(조삼달)이니까, 그렇지만 조삼달(조용필)이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필(조삼달)인데.. 두 사람의 대뇌변연계 어디쯤에도 조용필이란 이름의, 조삼달이란 이름의 섹터가 마련돼 있을 것이다.
이 둘을 가로막는 조상태의 상태는 정상적이지 않다. 정신의학에서 애도는 특정 대상의 상실에서 비롯된 심리적 불균형을 회복하는 일을 말한다. 결국 망자에 대한 예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과정인 것이다. 즉 조상태가 보낸 20년의 애도기간은 자신만을 위한 20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세월을 조상태는 고미자를 원망하면서 보냈다. 그 긴 세월, 옆에 고미자란 장작이 있었기 때문에 부미자를 향한 조상태의 애도는 계속될 수 있었다.
하지만 부미자라면 조상태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스스로를 죽여온 세월을 기꺼워할까? 먼저 깨달은 건 조용필이었다. 아버지의 고여있는 시간에 물꼬를 터야 한다. 그래야 아버지도 살리고 고미자 삼촌도 살리고 자신과 삼달의 사랑도 살릴 수 있다.
여기에 고미자도 동참했다. 내가 지은 죄로 내 딸과 친구의 소중한 아들을 비련 속으로 끌어들일 순 없다는 작심. “용필 아방이 화 평생 안 풀려도 나가 다 받을겨. 나만 미워합서. 부미자가 용필이 마음 아픈 거 알면 속상하지 않을까?”
부미자란 이름은 조상태의 발작버튼이었다. “니 입에서 어떻게 그 이름이 나와!”하며 분노하는 조상태를 향해 고미자도 물러서지 않는다. “너만 아프고, 너만 부미자 보냈시냐? 나도 너만치 아프다. 너만치 나도 내 친구 보고싶다게!” 20년을 묻어둔 설움이었다. 서리서리 풀려나오는 그 깊고 깊은 속울음에 조상태도 발광을 멈춘다. 나만 아팠던 세월이 아녔다는 각성이 후두부를 내리치기라도 한 듯.
그 시각 대조기인 줄도 모르고 사계물에 촬영나왔던 삼달은 어시스턴트가 보내준 옛 전시 자료중에서 조용필의 흔적을 발견한다. 예전 용필이 낭송해주었던 ‘사랑은 피워도, 침묵 속에서 피워라’는 시구하며 불발된 사진작가 15년 기념전 방명록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름도 조용필이었다. 그랬다. 이 남자는 한시도 나를 떠났던 적이 없었다.
그리고 불러주는 목소리. 그 남자 용필이 한껏 걱정된 표정으로 물이 차오르는 잠수교를 건너오고 있다. 그는 여기에도 있었다. 다시 또 나를 찾아내고 말았다. 자신의 손을 잡아끄는 용필을 삼달은 뒤에서 부둥켜 안는다. 갑작스럽게 드는 확신.어떻게 이런 남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이 남자를 사랑하는 걸 포기할 수 없다. 내 심장이 그를 안고 이렇게 빠르게 두근거리는데 이 감정 외에 무언가를 덧붙일 수 있겠는가?
그와 함께 눈을 뜨고 싶다. 그와 함께 밥을 먹고 싶다. 그의 무릎을 베고 그가 읽어주는 시구를 들으며 잠이 들고 싶다. 세상이랑도 상관없고 다른 누구와도 상관없이 그렇게 둘만 있고 싶다.
바야흐로 침묵을 깨고 사랑을 피우려는 용필-삼달 커플에게도 누구나 하는 일상이 찾아들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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