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 1년새 4만명 급감···기증자, 의사상자로 정부가 지정해야”
국내 최초로 장기기증 관련 학위 취득도
기증자, 2017년 573명→2022년 405명
"옵트 아웃 제도 등 사회적 장치 마련해야"
“수혜자로서 기증자님의 맑은 영혼과 동행하면서 주어진 생애를 ‘사람다운 삶’으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아들을 둘러싼 벽을 넘어설 수 있도록 희망과 새로운 삶을 주신 기증자님과 가족분들께 거듭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지난해 하늘의 별이 된 한 장기 기증자에게 신장을 이식받은 수여자 김 모 씨의 아버지가 남긴 편지에는 절절한 감사의 말이 가득했다. 2013년 불의의 신부전증으로 10여 년간 신장 혈액투석을 받아오던 김 씨는 수여자의 신장으로 다시 일어섰다. 지난해 매일 평균 1.5명이 장기를 기증받고 새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달 12일 부산 부산진구 서면에 위치한 20평 남짓한 한 작은 사무실. 장기 기증을 상징하는 픽토그램이 그려진 넥타이를 한 남성이 장기 기증 홍보 문구 작성에 몰두하고 있었다. 많은 이들에게 ‘두 번째 삶’을 주기 위해 전국 곳곳을 누비는 국내 최고의 장기 기증 분야 권위자 강치영(61) 한국장기기증협회장이다.
강 회장은 "장기 기증은 한 사람이 최대 6명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는 가장 고귀하고 숭고한 나눔의 행위”라며 “의료보험관리공단이 투석을 받는 환자들에게 1회 10만 원 이상 지원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적게는 4000억 원에서 많게는 2조 원까지 의료비 지출도 절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91년 강 회장이 재단법인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발기인을 시작으로 장기 기증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을 때만 해도 장기 기증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강 회장은 “당시는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유교적 신념이 사회에 자리 잡고 있었다”며 “따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무작정 장기 기증을 장려하는 문구가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가서 활동을 시작했다”고 되돌아봤다.
그로부터 33년이 지났다. 그동안 그는 한국장기기증협회를 설립하고 각종 국제 심포지엄, 세미나 등을 개최했다.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해 2011년에는 국내 최초로 장기 기증 관련 학위도 취득했다. 그의 노력에 15만 명이 장기 기증 서약서 작성으로 화답했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2000년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며 당초 협회가 맡고 있던 수여자와 공여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정부가 하게 됐다. 협회는 홍보에 집중하기로 했지만 특별한 지원을 받지 못해 금전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협회에서 무급으로 일하는 강 회장은 강연, 대리운전 등 부업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요즘 강 회장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장기 기증이 최근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고 있는 점이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에 따르면 뇌사자 장기 기증자는 2017년 573명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은 후 2022년에는 405명까지 감소했다. 이식 건수 또한 같은 기간 2344건에서 608건으로 줄었다. 기증 희망자도 2021년 15만 8940명이었지만 지난해 11만 7584명으로 급감했다. 강 회장은 “코로나19로 의료기관 접근성이 떨어지고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도 많아지면서 장기 기증에 대한 심리적인 위축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 회장은 장기 기증자를 ‘의사상자’로 예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사상자는 타인의 생명을 위해 헌신하다 부상을 입거나 사망한 사람을 말하는데 5~9명의 생명을 구해주는 장기 기증자 역시 조건에 부합한다”며 “장기 기증자를 예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예산이 편성되고 행정이 따라온다. 그래야 국민의 인식도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스웨덴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옵트 아웃(opt-out)’ 제도 도입의 필요성도 피력했다. 옵트 아웃은 장기 기증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힌 사람을 제외한 사람들을 잠재적 기증자로 보는 개념이다.
강 회장은 글로벌 시대에 발맞춰 부산을 ‘환태평양 장기이식 허브 도시’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는 우리나라의 장기이식 기술력이 중국의 장기 공여 인력, 일본의 인프라, 미국의 시스템을 만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면서 일을 계속하는 저에게 ‘바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에 힘이 닿는 데까지 계속할 것입니다.”
부산=채민석 기자 vegemi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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