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린 엄마가 교토에 가고 싶다고 했다, 엄마의 엄마를 찾으러
교토에서 온 편지
사별하고 딸 셋 키운 조리노동자
외할머니가 보낸 마지막 편지 등
엄마의 짐에서 비밀 알게 된 딸들
발신지 ‘교토 정신병원’ 향한 여행
할머니가 일본에서 왔다는 걸 알게 된 건 20대 중반이 되어서다. 당시 할머니는 치매로 사람들을 잘 기억하지 못했고, 걷지 못하는 상태로 늘 침대에 누워 계셨다. 그런 할머니를 먹이고 닦고 돌보는 것은 장남의 아내인 내 어머니의 일이었다. 할머니는 종종 간단한 일본어로 의사 표현을 하시곤 했는데, 나는 그게 그저 “어렸을 때 일본에서 공부를 한 탓”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듣고 자랐기 때문이다.
일본인 정체성 숨겨야 했던 나의 할머니
장남의 딸인 내가 21세기가 되어서야 할머니의 출신을 알게 된 건, 그 사실이 20세기 내내 한국 사회에서 쉬쉬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을 터다. 한해에 열한번의 제사를 지내면서 조상을 기리는, 가족의 역사가 그토록 중요한 집안에서 할머니의 이야기는 꽁꽁 숨겨져 있었다. 말해지지 않고 들리지 않았으므로, 제대로 기억되지도 않았다.
일본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뒤 달리 의지할 곳 없었던 똑똑한 청년 에이코(英子)는 가능성의 땅인 식민지 조선으로 건너와 부산 어딘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 경리로 일하다 잘생긴 조선 남자를 만났고, 조선에 정착하게 된다. 내 아버지의 출생 연도가 1946년이므로 에이코가 ‘최말순’으로 살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 언젠가였으리라 싶다.
할머니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그의 일본어는 나에게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것은 빼앗긴 말, 가려진 역사, 그 ‘낮은 목소리’의 다른 표현이었다. 할아버지의 유창한 일본어와 할머니의 가려진 일본어는 서로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내 안에서 일본어가 제국의 언어라기보다는 잊힌 사연을 담은 말로 자리 잡은 건 이런 연유에서였다. 그래서 일본으로 갔다. 할머니의 모국어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과거 한 에세이에서도 썼던 것처럼 “공식적으로는 어학연수, 비공식적으로는 ‘뿌리를 찾아서’쯤 되는 일본행”이었다.
사실, ‘뿌리’라는 말에는 좀 웃기는 면이 있었다. 애초에 국가나 가족으로부터 부여받은 정체성을 부정하고 근본 없이 흘러 다니길 꿈꾸었던 내가 굳이 할머니에게서 ‘뿌리’를 찾고 싶었던 건 왜였을까? 아마도 거대 서사 안에서 사라진 작은 이야기들을 나의 근원으로 삼고 싶다는 페미니스트적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허세였을지도 모른다. 그저 폼이나 잡았던 것에 불과했으므로, 나는 결국 할머니의 역사를 기록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당신의 과거를 이미 잃어버렸고, 나는 다른 가족에게 할머니에 대해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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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가진 ‘살게 하는 힘’
그런 나와 달리 김민주 감독은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교토에서 온 편지’에서 그 작업을 끝까지 해낸다. 영화를 보다 엉엉 소리를 내며 울고 말았던 건, 그런 그가 부럽고, 또 고마워서였다.
‘교토에서 온 편지’는 혜영(한선화)이 아버지 기일을 맞아 부산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그곳에는 장녀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집을 떠날 엄두도 못 내는 언니 혜진(한채아)과 언젠가는 혜영처럼 서울에 올라가 꿈을 이루리라 다짐하는 동생 혜주(송지현), 그리고 어머니 화자(차미경)가 함께 살고 있다. 일찍이 남편과 사별하고 딸 셋을 키운 화자는 도시락을 만들어 지역 어르신들에게 배달하는 일을 하는 조리실 노동자다. 집에서 늘 먹이고 돌보는 일을 하는 화자는 밖에서도 여전히 먹이고 돌보는 일을 한다.
혜영은 작가가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향했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불안을 안고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동료들은 의기소침하게 그러고 있지 말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라고 말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자꾸 깜빡깜빡하던 화자가 치매 초기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서울에 간들 뾰족한 수가 없는 현실도 현실이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구성원으로서의 몫을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혜영을 사로잡는다. 그는 일단 부산에 머물며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한다.
물론 혜영의 마음도 기꺼운 건 아니다. 잔뜩 꼬인 자신의 인생처럼 엄마 집은 온갖 낡은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다. 혜영은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화자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흩어지는 기억을 붙들기 위해 엄마와 엉덩이를 맞대고 앉아 옛날 앨범과 물건들을 꺼내보기 시작하면서 혜영은 화자의 삶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화자가 고이 간직해온 ‘교토에서 온 편지’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도 그 과정을 통해서다.
화자는 일본인 어머니와 조선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선 남자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어머니는 집에서 쫓겨났고, 아버지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화자, 아니 하나코(花子)만 데리고 한국으로 밀항한다. 그렇게 자리 잡은 곳이 바로 부산 영도였다. 하나코는 일본에서 온 여자아이를 향한 손가락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워나간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만은 지우지 못했다. 어머니와 주고받던 편지가 끊기고 나서도 편지와 함께 도착했던 작고 고운 선물들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 이유다. 하나코가 여기저기에 물건을 쟁여놓는 건 이제는 잃어버린 그리운 것들을 지키는 그만의 방법이었던 셈이다.
자신의 병을 대면하면서 화자는 딸들에게 말한다. “엄마, 교토에 가고 싶다.” 그리하여 네 모녀는 외할머니가 마지막으로 편지를 보냈던 주소지로 향한다. 그곳은 교토의 한 정신병원이었다.
영화가 선보이는 일상의 디테일은 희한하다 싶을 정도로 나의 일상과 닮아 있지만, 김민주 감독이 그 디테일을 다루는 태도는 나로서는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세심하고 정성스럽다. 그건 단순히 이미지의 해상도를 증폭시켜 각종 ‘사소한 것’들로 볼거리를 충당하고 말초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쇄말주의자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제사 절차를 어겼다는 걸 깨닫고 내뱉는 “아이고, 죄송합니다∼”라는 애정 어린 한마디, 조리실에서 함께 일하는 친구가 입안에 넣어주는 계란말이, 팥을 지나치게 으깨지 않아야 식감을 살릴 수 있다는 어머니의 팥죽 레시피…. 그렇게 시간 속에 쌓인 디테일이 한 사람의 기억이 되고, 인생이 된다. 그 기억이 가진 ‘살게 하는 힘’을 이해하는 사람이라야 이 영화가 만들어내는 삶의 질감을 감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감각은 기어코 우리를 놀라운 감정적 전회로 이끈다. 이 감독의 다음 영화를 앙망한다.
영화평론가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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