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선택은 ‘반중’ 총통…전쟁 두려움보다 중국 거부감 더 컸다
대만 총통 선거가 ‘민주주의 수호’를 강조한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2019년 홍콩 사태 이후 높아진 중국에 대한 거부감이 양안 대화 단절 등으로 생긴 전쟁 위기감보다 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야권의 분열과 창당 5년째인 민중당의 선전도 ‘8년 집권당’의 정권 연장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반중 정서 결정적 계기는 2019년 홍콩 사태
민진당은 이번 총통 선거의 슬로건으로 ‘민주 대 독재의 대결’을 내걸었다. 현재의 대만을 ‘민주’로, 대만을 위협하는 중국을 ‘독재’로 설정하고, 선거에서 자신들이 이겨야 대만의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진당은 대만 독립을 강령으로 하고, 미국 등 민주 세력과 협력해 중국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1 야당으로 8년 만의 정권 탈환을 추진한 중국국민당(국민당)은 ‘평화냐 전쟁이냐’를 슬로건으로 내놨다. 자신들이 정권을 맡아 민진당 집권 8년 동안 높아진 전쟁 분위기를 평화 분위기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당은 중국과의 대화와 교류·협력의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주장한 민진당의 승리로 중국에 대한 거부감이 대만 사회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2022년 3연임을 확정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무력사용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고 하는 등 대만에 대한 통일 의지를 점점 노골화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대만은 멀어지는 형국이다.
대만 사회에 반중 정서가 확산된 결정적 계기는 2019년 홍콩 사태였다. 중국 경찰이 홍콩 시민을 폭력 진압하는 영상이 여러 달 보도된 뒤 중국에 대한 거부감이 폭발했고, 10~20%에 이르던 통일 찬성 여론은 10%대로 하락했다. 지지율이 바닥이던 차이잉원 총통은 홍콩 사태 이후 2020년 1월 총통 선거에서 ‘오늘의 홍콩이 내일의 대만’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57%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장영희 충남대 평화안보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2019년 홍콩 사태의 영향으로, 대만 총통 선거에 친중국 세력은 존재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6%p차 신승이 말하는 것
중국의 군사 위협에 대한 위기감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전쟁·평화 프레임을 내건 국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33.49%의 지지율로, 1위 민진당(40.05%)과의 격차가 6%p가량에 그쳤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중국은 대만에 대한 군사 압박을 강화하며, 중국과의 대화·협력을 주장하는 국민당을 지원했다. 민진당이 집권하면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돌았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국민당에 대한 강력한 지지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중국에 대한 거부감을 높이는 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만 통일을 최대 목표로 내건 중국으로서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현재의 대만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됐다.
정치공학적으로는 두 야당의 후보 단일화 실패가 민진당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허우 후보와 커 후보는 지난해 11월 야당 단일화를 시도했지만,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단일화에 실패했다.
대만은 2000년부터 집권당이 8년 이상 집권하지 못하는 흐름이 있었고, 민진당 집권 8년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도 적지 않았다. 지난 2020년 총통 선거에서 차이잉원 총통은 57%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했지만 이번 선거에서 라이칭더 후보의 득표율은 40%에 그쳤다. 반면 두 야당은 이번 선거에서 총 60%의 지지를 받았다. 야권의 후보 단일화나 협력이 이뤄졌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제3의 후보로 나선 민중당 커원저 후보가 26%의 지지를 받은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96년 총통 직선제 도입 이후 30년 가까이 유지되어 온 국민당·민진당의 양당 구조가 창당 5년 된 민중당에 의해 사실상 깨진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대만 국민의 실망이 상당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민중당의 주된 지지층이 20·30대 청년층이어서, 젊은층 지지도가 적지 않은 민진당의 지지층도 상당 부분 흡수했을 것으로 보인다.
타이베이/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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