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 경영권 분쟁 최종 패소…60년 ‘오너 경영’ 마침표 [민경진의 판례 읽기]

2024. 1. 1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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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계약대로 한앤코에 지분 52.63% 양도하라”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 사진=한국경제신문



남양유업 경영권 매각을 둘러싼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과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한앤컴퍼니의 법정 싸움에서 한앤컴퍼니가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은 홍 회장 측이 문제 삼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의 ‘쌍방자문’에 대해 홍 회장 측이 동의했으므로 문제 될 게 없다는 원심 결론이 정당하다고 봤다.

이번 판결로 60년에 걸친 남양유업의 ‘오너 경영’은 막을 내리게 됐다. 새 주인이 된 한앤컴퍼니는 경영 효율화에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불가리스 사태’서 촉발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2024년 1월 4일 한앤컴퍼니가 홍 회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주식양도소송 상고심 선고 기일을 열고 원고 승소로 판단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대법원은 “‘홍 회장이 김앤장 소속 변호사들의 쌍방자문에 대해 사전 또는 사후에 동의했다’는 등의 이유로 민법 제124조 및 변호사법 제31조 제1항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한 원심 판결을 수긍할 수 있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이에 따라 홍 회장 일가는 자신들이 보유한 남양유업 주식 37만8938주(합계 지분율 52.63%)를 한앤컴퍼니에 넘기게 됐다. 이로써 한앤컴퍼니는 남양유업의 최대 주주로서 경영권을 쥐게 됐다.

남양유업과 한앤컴퍼니의 경영권 다툼은 약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 회장은 2021년 초 ‘자사 제품인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억제에 효과가 있다’는 남양유업의 허위 발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를 선언했다. 그해 5월에는 홍 회장과 그 일가가 보유한 남양유업 지분 52.63%를 3107억원에 한앤컴퍼니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남양유업은 그해 7월 30일로 예정된 경영권 매각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를 9월 14일로 돌연 연기했다. 사퇴를 약속한 홍 회장도 3개월이 지나도록 물러나지 않았다. 그러고선 경영권 매각 업무와 관련한 법률대리인을 법무법인 LKB앤파트너스로 바꿨다. 이에 금융투자업계에선 “홍 회장과 남양유업이 매각에 진정성이 없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한앤컴퍼니는 8월 23일 홍 회장 등을 상대로 이 사건 소송을 제기했다. 홍 회장 측은 9월 1일 한앤컴퍼니에 주식매매계약 해제를 통지했다.

홍 회장 측은 재판 과정에서 “한앤컴퍼니 측이 홍 회장 등에 대한 임원진 예우와 백미당 사업권 보장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가 양측을 쌍방대리한 것도 불법”이라며 “이 사건 주식 매매계약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2022년 9월 한앤컴퍼니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피고 측 김앤장 소속 변호사 등에게 이 사건 주식 매매계약에 관한 대리권이 있었다거나 실제로 대리행위를 했다고 보기에 부족하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린 적이 없다”며 “계약대로 주식을 양도하라”고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해당 변호사는 피고 측의 ‘사자’(使者·의사표시를 전하는 사람)로서 특정 법률 효과의 발생을 원하는 피고의 의사를 원고에게 전달·표현하거나 이를 보조하는 행위를 했을 뿐”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이 사건에 ‘대리인은 본인의 허락이 없으면 본인을 위해 자기와 법률행위를 하거나 동일한 법률행위에 관해 당사자 쌍방을 대리하지 못한다’는 민법 제124조를 적용할 수 없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또 “이 사건 주식거래 자문은 변호사의 수임을 제한하는 변호사법 제31조 제1항에서 금지한 ‘법률사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원고가 피고들 가족의 처우 보장에 관해 확약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2023년 2월 1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고 피고 측 항소를 기각했다. 홍 회장 측은 상고장을 제출했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자사 유제품 불가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발표로 빚어진 논란과 관련해 2021년 5월 4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남양유업 본사 대강당에서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며 눈물 흘리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본인 동의받은 쌍방자문은 정당”

상고심에서도 ‘쌍방자문’의 정당성이 쟁점이 됐다. 대법원은 ‘대리’와 ‘사자’의 구별 기준에 대해 “행위자가 지칭한 자격·지위·역할에 관한 표시 내용, 행위자의 구체적 역할, 행위자에게 일정한 범위의 권한이나 재량이 부여됐는지 여부, 그 역할을 수행함에 필요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자격의 필요 여부, 행위자에게 지급할 보수나 비용의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피고 측 변호사 등이 이 사건 주식매매계약 체결 관련 대리인이 아닌 ‘사자’에 불과하다는 원심의 판단 부분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앤장 소속 변호사들이 한 자문이 변호사법상 당사자 쌍방으로부터 수임을 금지한 ‘법률사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본 원심 판단 부분도 수긍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본인의 허락’을 전제로 한 ‘쌍방대리’는 예외적으로 효력이 인정될 수 있다고 본 원심의 결론만큼은 정당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이 사건 주식 매매계약의 목적물이 구체적으로 확정된 상황에서 피고가 가장 중요한 계약 내용이자 주된 급부에 해당하는 주당 매매대금에 대한 협상·결정을 직접 하면서 계약 주선자를 통해 쌍방자문에 대해 사전 또는 사후에 동의했다”며 “그런 이유로 민법 제124조 및 변호사법 제31조 제1항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한 원심의 판단은 수긍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돋보기]
 

 경영 정상화 박차…법적 분쟁 남아

한앤컴퍼니는 대법원 선고 직후 “긴 분쟁이 종결되고 이제 홍 회장이 주식매매계약을 이행하는 절차만 남았다”며 “남양유업의 임직원과 함께 경영개선 계획을 세우고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새로운 남양유업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투자업계에선 한앤컴퍼니가 PEF 특유의 밸류업 전략을 동원해 회사 정상화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한앤컴퍼니가 홍 회장 일가의 보유 지분을 3107억원에 인수한 뒤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 전 임시주총을 통해 새 이사진을 출범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남양유업은 그간 대리점 물품 강매 사건, 경쟁사 비방 댓글 논란 등이 소비자 불매운동으로 번지면서 기업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

남양유업은 불매운동 전까지만 해도 매출 1조3000억원, 영업이익이 600억원에 이르는 우량 기업이었다. 하지만 2020년 이후 매해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2022년에는 매출 9646억원, 영업손실 868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경쟁사인 매일유업은 매출 1조6856억원, 영업이익 606억원을 냈다.

남양유업 경영권 다툼은 한앤컴퍼니의 승리로 끝났지만 다른 법적 분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주식양도 소송과 별개로 홍 회장은 한앤컴퍼니를 상대로 회사 매각 계약이 무산된 책임을 지라며 310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한앤컴퍼니도 2022년 홍 회장을 상대로 500억원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홍 회장은 대유위니아그룹과도 소송을 진행 중이다. 홍 회장은 한앤컴퍼니에 계약 해지를 통보한 뒤 대유위니아그룹에 회사 경영권을 매각하기로 했다. 이에 대유위니아그룹은 계약금으로 남양유업에 320억원을 줬지만, 이를 돌려받지 못하자 반환 소송을 냈다. 이 소송 1심은 홍 회장이 승소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대유위니아그룹의 일부 승소로 판결이 엇갈렸다.

남양유업 지분 약 3%를 보유한 행동주의 펀드인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남양유업 이사회에 대해 홍 회장의 퇴직금과 보수 지급을 정지하라는 유지 청구를 한 상태다.

대법원 선고 소식을 접한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한앤컴퍼니는 지배주주만이 아닌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앤컴퍼니가 홍 회장의 지분 양수도 가격과 같은 주당 82만원에 소수지분도 공개매수해달라”고 덧붙였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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