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1인분에 200g은 옛말”... 100·150g 주는 고깃집 ‘식당도 슈링크플레이션’

최효정 기자 2024. 1. 1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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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에 외식업체도 중량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동참
100·150g이 1인분… 줄어든 고기 양
빈약한 딸기 케이크에 성심당 딸기시루는 오픈런
저렴한 수입산 대체하거나 반찬 값 따로 받기도

서울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모(34)씨는 평소 자주가던 동네 삼겹살 집을 찾았다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2인분에 세 줄이 나오던 고기 양이 비슷한 크기의 두 줄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가게에 항의하자 올해부터 1인분 양이 200g에서 150g으로 조정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고물가에 외식 업체들마저 가격은 유지한 채 양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을 시행하고 있어 소비자들 불만이 커지고 있다. 단순히 양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그간 공짜로 주던 반찬이나 소스를 유료화하거나 재료를 저렴한 수입산으로 대체하는 등 가격 인상 대신 다양한 꼼수로 소비자 부담이 늘고 있어서다.

식당들은 식자재 가격은 계속 폭등하는데 음식 가격을 올리면 손님 발 길이 끊기니 궁여지책으로 양을 줄이거나 더 싼 재료를 쓸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서울 중구 명동거리 식당가 앞으로 관광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삼겹살 1인분에 200g은 옛말… “누구 코에 붙이나”

14일 조선비즈가 서울 종로구에 있는 식당 20곳의 삼겹살 1인분 중량을 비교해본 결과 160g이 11개, 150g이 7개, 200g이 2개이었다. 200g을 판매하는 두 곳은 모두 1인분 가격이 2만1000원으로 2만원을 넘겼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지역 삼겹살 200g의 평균 가격은 1만9211원으로 2021년(1만6866원)보다 14% 올랐다. 삼겹살 200g 가격이 2만원에 육박하자 식당들이 중량을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1인분에 150~160g이 가장 흔하고 적게는 120~130g을 판매하는 곳도 있다. 일종의 슈링크플레이션이 외식업체에서도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줄어들다’라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가격을 그대로 둔 채 중량을 줄이는 꼼수를 의미한다.

2020년~2023년 삼겹살 가격 추이./한국소비자원 제공

소비자들은 줄어든 삼겹살 중량에 불만이다. 양을 줄이면서 1인분으로 명시하는 것이 꼼수라는 것이다. 직장인 박성인(36)씨는 “대식가가 아님에도 성인 두 명이 고기 3인분을 시켜도 배가 차지 않는다”면서 “소고기가 아닌데도 한끼에 7만~8만원이 나온다”고 말했다.

식당에서는 돼지고기 가격이 지속 상승하고 있지만 판매가는 더이상 올릴 수 없어 중량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임모(54)씨는 “200g으로 유지하려면 2만원을 넘게 받아야 하는데 손님들의 저항 심리가 너무 커서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우 등 소고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수원의 유명한 한우갈비집의 한우생갈비 1인분(250g) 가격은 작년 말 9만7000원에서 10만2000원으로 올랐다. 1인분에 10만원을 넘긴 것이다. 가격을 올리지 않은 곳은 한우 1인분 중량을 2~30g씩 슬그머니 줄인 곳이 많다. 부산 해운대 한 식당은 120g 단위로 판매하던 한우 1++ 새우살 부위를 작년 12월부터 100g으로 줄였다.

딸기 케이크도 대표적 품목중 하나다. 딸기 가격이 전년에 비해 크게 상승하며 ‘금딸기’가 된 가운데 케이크 가격은 올랐지만 딸기 양은 적어지거나 크기가 현격히 작아졌다. 마포구 한 유명 베이커리의 딸기 케이크는 지난해까지 위에 총 4개씩 4줄로 16개가 장식으로 올라왔는데, 올해부턴 3개씩 4줄인 12개로 4개 줄었다.

박명수의 활명수 딸기 케이크 리뷰편 캡처./유튜브 캡처

딸기 소매가격은 지난 7일 기준 100g당 2604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 가량 올랐다. 평년(1838원) 대비로는 41.67% 뛰었다. 딸기를 듬뿍 넣은 딸기 케이크를 찾기 어려워지자 대전 성심당의 딸기시루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딸기가 잔뜩 들어있는 이 케이크를 사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이 몰리며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 7~8시간 대기줄이 늘어섰다.

◇중국 김치·수입 냉동닭 인기… 기본 소스도 1000원 받아

단순히 중량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재료를 더 저렴한 것으로 대체하는 스킴플레이션(skimp+Inflation)도 성행하고 있다. 외식업체들이 원가절감에 나서면서 한때 위생논란이 있었던 중국산 김치도 다시 인기다. 국내산 닭고기는 수입산 냉동닭으로, 식용유 또한 비싼 콩기름에서 팜유로 바꾸는 식이다.

지난해 1~11월 누적 기준으로 김치 수입량은 26만3185t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9.5% 늘어난 수치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김치 수입량은 역대 최고치였던 2019년(30만6060t)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누적 기준으로 냉동닭(절단육·설육) 수입량은 20만6299t에 이르렀다. 2021년까지만 해도 연간 14만t 안팎을 수입했던 것이 2022년 18만1530t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1~11월 기준으로 이미 20만t을 훌쩍 뛰어 넘었다. 수입산 냉동닭 수입 단가는 1㎏당 2000~3000원으로 국내산 닭고기 대비 절반 수준에 그친다.

식용유도 가장 저렴한 팜유 수입량이 늘었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있지만 가격이 콩기름 등보다 훨씬 싸 외식업체들이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팜유 수입량은 지난해 1~11월 62만6925t에 이르러 2019년(64만1965t)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무료로 제공하던 소스나 반찬 추가금을 받는 곳도 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배달전문 월남쌈 가게는 무료로 제공하던 땅콩소스를 올해부터는 2000원을 내야 받을 수 있도록 옵션을 변경했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기처럼 소비자물가지수나 생산자물가지수에 잡히지 않는 방식으로 물가를 올리는 ‘스텔스플레이션’ 사례다.

고물가가 이이지면서 이같은 꼼수 사례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스텔스플레이션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고물가 장기화로 인해 소비자 피로감이 커지자 기업 등이 스텔스플레이션 같은 새로운 방식의 비용 청구 전략을 펼칠 것이란 분석이다.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팀장은 “식품은 봉지나 포장이라도 있지만, 외식업체 슈링크플레이션은 소비자들이 더더욱 확인할 방법이 없어 소비자들이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구조”라면서 “이런 행태가 지금 많은 업계에서 팽배한데 너무 심하게 흘러가지 않도록 지자체 등에서 지도나 감시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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