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졌다”... ‘반중· 친미’ 라이칭더, 차기 대만 총통 됐다

조영빈 2024. 1. 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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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대만 총통 선거 라이칭더 40% 득표로 당선
민진, 12년 연속 집권… ‘8년 주기’ 교체 기록 깨져
중국, ‘대만 봉쇄 훈련’ 뛰어넘는 군사 위협 가능성
선거는 끝났지만 대만해협 불안정성은 커질 전망
대만 집권여당인 민주진보당의 라이칭더 총통 당선인이 13일 대만 타이베이시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타이베이=AP 뉴시스

대만 제16대 총통 선거에서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됐다. 이번 선거는 당초 미국과 중국 간 대리전 구도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대만인들의 선택이 '친(親)미국·반(反)중국' 성향의 민진당에 기울면서, 이번 미중 간 대리전은 미국의 승리로 귀결된 셈이 됐다. 중국이 거세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대만해협의 미중 간 대치 수위도 급상승할 전망이다.

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3일 치러진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의 라이 총통·샤오메이친 부총통 후보는 558만6,000표(득표율 40.05%)를 얻어 승자가 됐다. 친중 성향 제1야당인 국민당의 허우유이 총통·자오사오캉 부총통 후보는 467만1,000표(33.49%)를, 중도 성향 제2야당인 민중당의 커원저 총통·우신잉 부총통 후보는 369만표(26.46%)를 각각 득표했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라이 후보는 대체로 3~5%포인트 차로 허우 후보에 앞서 있었다. 라이 후보의 이런 우세 흐름이 선거 당일까지 이어진 셈이다.

대만에서 시민의 손으로 총통이 직접 선출되는 것은 1996년 이래로 이번이 8번째다. 대만인들은 2000년부터 민진당과 국민당 정권을 8년 주기로 교체해 왔는데, 라이 후보 당선으로 이 같은 8년 교체 기록도 깨지게 됐다. 민진당은 라이 후보 당선으로 12년 연속 집권하게 됐다. 같은 당 차이잉원 총통으로부터 '대만 1인자' 배턴을 넘겨받게 되는 라이 당선인은 5월 20일 공식 취임한다.


라이칭더 "세계 민주 진영, 올해 첫 승리 거뒀다"

13일 대만 타이베이 민진당 선거본부 인근 거리에서 한 청년이 라이칭더 후보의 총통 당선이 확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타이베이=조영빈 특파원

라이 당선인은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만국립의대에 합격, 의사로 일해왔다. 1994년 정치권에 입문, 한국의 국회의원인 입법위원 4선 경력에 타이난 시장도 지냈다. 2017년에는 차이잉원 정권 두 번째 행정원장(국무총리)도 역임했다.

라이 당선인은 선거 승리 확정 직후 수도 타이베이에서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 참석해 "세계 각국에서 대선이 치러지는 올해, 대만이 민주 진영의 첫 번째 승리를 만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외부 세력(중국)의 개입을 막는 데 성공했다"며 "대만은 앞으로도 민주주의 국가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우 후보는 이날 저녁 8시 타이베이 당사 앞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서 "그동안 감사했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선거 전 지지율(약 21%)을 훌쩍 뛰어넘는 득표율을 기록한 커 후보는 패배를 받아들이면서도 "대만이 청색(민진당 상징색)·녹색(국민당 상징색)의 세상이 아님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죽음의 길" 공언한 중국, 군사 위협 강도 끌어올릴 듯

대만에서 제16대 총통 선거가 치러진 13일 타이베이 인근 민진당 선거본부에 운집한 시민들이 민진당의 라이칭더 총통 후보의 당선 확정 소식에 환호하고 있다. 타이베이=조영빈 특파원

선거는 끝났지만 대만해협 불안정성은 커질 전망이다. 라이 후보는 차이 현 총통보다 중국에 더욱 강경한 입장을 가진 인물로 평가된다. '하나의 중국' 원칙에 회의적 태도를 고수했고, 미국과의 군사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중국은 "뿌리(중국)를 잊은 배신자"라며 라이 후보를 맹렬하게 비난해 왔다.

당장 대만해협을 겨냥한 중국군의 '군사적 위협'이 더욱 본격화할 공산이 크다. 미국·대만 협력 강화가 기정사실인 터라, 그 여파를 상쇄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그간 라이 후보가 당선되면 양안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경고해 왔다. 중국 외교부는 선거 전날에도 독립주의 노선의 민진당 정부를 향해 "대만 독립은 죽음의 길일 뿐"이라고 밝혔다.

2022년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하자, 미국·대만 간 공식 접촉을 반대해 온 중국은 대만 섬을 봉쇄하는 군사 작전을 전개했다. 오는 5월 라이 후보의 총통 취임을 앞두고는 중국이 이를 뛰어넘는 수준의 무력 시위를 벌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이러한 관측이 현실화하면, 그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대응도 뒤따를 수밖에 없다.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 군사 대립이 심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군의 전차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설치된 대만 진먼다오의 장애물.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도시가 중국의 샤먼(하문)시다. AFP 연합뉴스

대만에 대한 중국의 추가 경제 제재도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미 중국은 지난해 12월 대만산 화학제품 12개 품목에 대한 관세 감면을 중단했다. 선거 나흘 전인 9일에는 "대만산 농수산물, 기계류, 자동차 부품, 섬유 등에 대해서도 관세 감면을 중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라이 후보 당선 시 단행할 대규모 제재를 예고한 것이다.

두 달 전 조성된 미중 간 대화 분위기가 차갑게 식어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1월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고위급 군사채널 재개에 합의하는 등 '대화 지속'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실제 중국은 정상회담 뒤 '미중 간 긴장 이완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로 '중국 대 대만·미국'의 긴장 및 대립 수위가 높아질 게 거의 확실시되는 만큼, 미중 정상회담 효과도 반감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다만 미중 양국이 고위급 대화의 끈을 완전히 놓지는 않고 있다. 또 코로나19 이후 경제 회복이 시급한 중국이 함부로 군사 도발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고, 중국의 군사력이 대만을 침공하기에는 부족한 부분도 있는 만큼 대만 본토를 향한 중국의 군사 위협은 단기간 내 현실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타이베이= 조영빈 특파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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