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참극 100일…첫 폭격에 부모, 두번째는 다리 잃은 아이들

한겨레21 2024. 1. 13.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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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가자의 참극]폭격 100일째, 가자 주민 2만3천여 명 전례 없는 민간인 희생 규모… “한 세대가 통째로 위태로워”
2024년 1월10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서 주민들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무너진 건물 주변에 모여 있다. REUTERS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를 때려대기 시작한 것은 2023년 10월7일이다. 2024년 1월15일이면 전쟁 100일째를 맞는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북부에서 군사작전을 사실상 마감하고 중부에 이어 남부로 병력과 화기를 집중하고 있다. 북부에 집중포화를 퍼붓던 개전 초기부터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남부로 피란을 가라고 독려했다. 가자지구 인구 10명 중 9명이 남부에서 피란생활을 하고 있다. 얼마나 더 많은 목숨이 스러질 것인가?

“사는 게 싫고 슬퍼졌다”는 열한 살

“가자지구에서 하루 평균 10명 이상의 어린이가 한쪽 또는 양쪽 다리를 잃고 있다. 개전 이후 가자지구에서 한쪽 또는 양쪽 다리 절단 수술을 한 어린이가 1천 명을 넘어섰다.” 인권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가자지구 전쟁 발발 석 달째를 맞은 2024년 1월7일 보도자료를 내어 이렇게 밝혔다. 이 단체의 제이슨 리 팔레스타인 담당 국장은 “가자지구 어린이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의 정도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 모든 고통을 쉽게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뼈아프다. 어린이가 고통받고, 살해되고, 팔다리를 잃고 있다. 심각한 인권유린 행위다. 책임자는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2023년 10월 어느 날,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아 주거지역으로 폭탄이 날아들었다. 집에 있던 열한 살 누르의 왼쪽 다리가 폭탄에 통째로 찢겨나갔다. 다친 오른쪽 다리는 금속판과 나사 4개로 고정했다. 누르는 2024년 1월4일 <로이터> 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너무 아프다. 아무래도 다리를 절단해야 할 거 같다. (…) 예전엔 잘 뛰어놀았다. 다리를 잃고 사는 게 싫고 슬퍼졌다. 의족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 살 아흐메드는 가자지구 북동부 베이트하눈에 살았다. 전쟁 전까지만 해도 그곳에 5만2천여 명이 거주했지만, 지금은 모든 건물이 폭격으로 파괴된 상태다. 아흐메드는 두 차례 폭격을 당했다. 첫 번째 폭격으로 부모를 잃었다. 두 번째 폭격으로 양쪽 다리를 잃었다. 아흐메드의 외삼촌 아부 암샤는 2023년 11월16일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에 “조카가 자꾸 ‘엄마 아빠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또 밖에 나가서 걷고 싶다고도 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도 다리를 잃은 것도 알지 못한다. 달라진 상황에 적응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마취도 못한 상태에서 수술

팔레스타인계 영국인 성형외과 전문의 가산 아부시타는 2023년 10월9일 ‘국경없는의사회’ 동료들과 함께 가자지구에 도착했다. 이후 43일 동안 가자시티의 알시파병원과 알아흘리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집도했다. 폭격은 이어졌고 구호물품 공급은 끊겼다. 진통제와 마취제도 떨어졌다. 그래도 목숨을 살리려면 수술은 해야 했다. 마취도 하지 않은 상태로 수술을 집도하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그는 11월27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루 10건에서 12건 정도 수술했는데, 개전 나흘 또는 닷새째부터 환자 절반 이상이 어린이로 채워졌다. 어린이는 성인이 돼 성장이 멈출 때까지 10번에서 15번 정도 후속 수술을 해줘야 한다. (…) 하룻밤 새 어린이 6명의 절단 수술을 한 적도 있다.”

Palestinians wounded in Israeli strikes lie on beds as displaced people shelter at Shu2024년 1월3일 가자지구 중부에 자리한 알아크사 병원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다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침대에 누워 있다. REUTERS

세계식량계획(WFP)은 현장 조사를 해 개전 이후 조리용 연료를 비롯한 생필품 가격이 435% 폭등했다고 전했다. 그나마 제한적으로 반입되는 구호물품은 이집트와 국경을 맞댄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를 중심으로 배분된다. 나머지 지역에 있는 주민들은 굶주릴 수밖에 없다.

세이브더칠드런은 개전 이후 가자지구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100만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고 추산했다. 이 가운데 5살 이하 어린이 33만5천여 명은 심각한 영양실조 위험에 노출된 상태다. 유아기 영양실조는 발육 부진 등에 따른 악영향이 성인이 된 뒤까지 이어진다. 한 세대가 통째로 위태롭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운이 좋아 양식을 파는 곳을 찾더라도 값이 너무 비싸서 주민 대부분은 살 돈이 없다. 인도적 구호물품 반입은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가자지구 전역이 기근 상황에 다가서고 있다. (…) 수십만 명이 간이천막에서 생활하고 있다. 화장실과 욕실도 없고 어린이와 여성에게 필요한 위생용품도 턱없이 부족하다. 하수시설도 전무해 비가 오면 곧바로 침수된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가자지구 주민들이 기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아이들에게도 미래가 없다.”

“하마스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라파 주재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공보관 히샴 무한나는 1월7일 영국 공영방송 <채널4>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자지구에서 안전한 곳은 아예 없다. 무너진 건물 잔해와 파괴된 차량이 도처에 널려 있다. 좁은 공간에 사람이 워낙 많이 몰려 있는 탓에 300m를 지나가는 데 2~3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구호품 전달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다.”

그는 “가자지구의 현 상황을 ‘인종학살’로 보느냐”는 질문에 “적십자사는 구호단체이기 때문에 인종학살이다 아니다 규정할 위치에 있지 않다. 다만 우리가 가자지구에서 목격한 것은 1967년 적십자사가 점령된 팔레스타인 땅에서 활동을 개시한 이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전쟁 석 달째를 맞아 가자지구 주민이 하마스를 비난하느냐 아니면 여전히 지지하느냐”는 물음엔 “가자지구 주민들의 최우선 과제는 살아남는 것이다. 하마스를 지지하느냐 비난하느냐에 대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죽음의 행렬을 멈추고, 폭격을 멈추고, 살아남은 가족과 함께 하루하루 생존하는 게 중요할 뿐”이라고 답했다.

“가자지구 북부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치세력) 하마스의 군사 지휘체계를 완전히 해체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1월6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 하마스 무장요원들은 가자지구 북부에서 지휘관 없이 산발적 저항만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가리 대변인은 “중부지역의 난민 캠프는 ‘테러범’으로 가득하고, (남부 최대 도시) 칸유니스에는 정교한 지하터널이 있다. 중부와 남부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작전을 수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완벽한 승리’를 강조했다. 그는 성명을 내어 “하마스를 제거하고, 인질을 구해내고, 가자지구가 다시는 이스라엘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전쟁을 수행하라고 군에 지시했다. 모든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전쟁을 멈춰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의 압박에도 하가리 대변인이 전날 기자회견에서 “2024년은 전투의 해가 될 것”이라고 했던 말이 허튼소리는 아니었던 게다.

2023년 12월15일 가자지구 북부 지역에서 이스라엘군 병사들이 지상군 작전을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가자지구 북부와 국경을 맞댄 레바논 쪽에서도 전쟁의 그림자가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1월2일 무인기를 동원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외곽에서 하마스 정치국 2인자로 알려진 살리흐 아루리 암살작전에 나선 데 이어 레바논 무장 정치세력 헤즈볼라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 1월8일 레바논 남부 마즈달살므에서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헤즈볼라의 정예부대인 ‘라드완’의 지휘관 위삼 타윌이 숨졌다. 이튿날인 1월9일 이스라엘 군당국은 레바논 남부에서 헤즈볼라 산하 무인기(드론) 부대 지휘관으로 알려진 알리 호세인 부르지가 탄 차량을 폭격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헤즈볼라 쪽도 1월6일 이스라엘 북부 메론 공군기지를 향해 로켓 62발을 발사하는 등 공세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하마스, 가자 북부 지휘체계 해체 중남부에 집중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자료를 보면, 개전 이후 1월10일 정오까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숨진 가자지구 주민은 2만3357명에 이른다. 부상자도 5만9410명이나 된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1월4일 중동 순방길에 나섰다. 개전 이래 벌써 네 번째 순방이다. 그리스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등과 만난 그는 기자회견을 열어 “확전과 분쟁 확산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전쟁이 번지는 건 막겠다면서, 전쟁을 멈출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마이클 클라크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교수는 <채널4>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짚었다.

“이스라엘군은 애초 내세운 군사 전략적 목표에 근접했다. 가자지구 북부를 장악했고 그 일대 하마스의 지휘체제를 해체했다. 가자지구에서 하마스가 통제했던 지역의 65%를 이스라엘군이 장악했다. 하지만 어려운 건 지금부터다. 남은 35% 지역에 하마스 무장병력의 3분의 2를 포함한 가자지구 인구의 90%가 몰려 있다. (…) 그간 이스라엘군은 재래식 군사작전을 벌여왔다. 이스라엘군이 잘할 수 있는 분야다. 하지만 남부지역에선 대게릴라 작전 혹은 대테러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 이스라엘군에는 낯선 분야다. 사상자가 훨씬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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