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승현 "고려의 숨은 영웅 양규를 국민에게 알려 보람 느낀다"

2024. 1. 13. 23:1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고려의 숨은 영웅이었던 양규 장군을 세상 밖으로 꺼내 국민들에게 알려준 보람을 느낀다. 배우로서 숙제를 해낸 것 같아 뿌듯하다. 양규 장군의 격퇴와 분전 부분이 교과서에도 실리고, '고려거란전쟁'이 학교에서 부교재로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KBS2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서북면 도순검사(都巡檢使) 양규 장군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지승현(43)은 7일 16회 방송에서 고려의 포로를 구하다 거란군에게 화살을 고슴도치처럼 맞아 장렬하게 산화했다.

지승현은 이번에 큰 역할을 해냈다. 국사 교과서의 '고려시대 거란의 침입' 파트에 서희, 양규, 강감찬의 이름이 나온다. 하지만 서희는 '외교'로, 강감찬은 '귀주대첩'으로 기억되고 있는 반면 양규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고려거란전쟁'을 통해 양규가 ‘흥화진 전투’를 비롯해 ‘곽주성 탈환’과 ‘게릴라 전투’에서 한치의 물러섬 없는 고려 장수의 투지를 보여주었음을 시청자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지승현은 전쟁에서 보여줄 수 있는 양규 장군의 역량과 기백을 명연기로 승화시키며 마치 '양규 장군이 지승현으로 다시 태어났다'라는 평가를 얻었다. 이로써 그는 데뷔 18년만에 2023 K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인기상과 장편 드라마 우수상을 받았다.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지승현(43)은 "양규 장군을 몰랐다. 저뿐만 아니라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아 잘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기하고 나니 이렇게 칭찬해 주셔서 감사하다"면서 "우리 역사속 서희, 양규, 강감찬, 조선의 이순신 장군은 하나같이 위대한 분이시다"고 소감을 말했다.

지승현에게 양규의 활약성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양규에게 흥화진은 거란과 처음 조우한 성이다. 거란의 40만 대군을 3천명의 병사로 7일간 버티며 막아내 거란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흥화진의 늑대'라는 별명이 그렇게 해서 나왔다. 또한, 단 1700명의 군사로 거란군의 보급 거점으로 활용되던 곽주성을 탈환하며, 적의 보급로와 연락책을 차단해버렸다. 마지막 전투인 애전전투는 양규가 도망가는 적을 놔두지 않고, 목숨을 바친 전쟁이다. 양규는 김숙흥 장군과 함께 고려의 포로 3만명을 구했다. 적에게는 고려와 전쟁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을 심어주었고, 포로였다가 구출된 사람들은 귀주대첩을 준비할 때 인적 자원이 될 수 있게 했다. 이런 점만 봐도 양규의 존재감은 넘친다.”

지승현은 "목숨을 바쳐 고려 포로를 구하는 양규의 희생정신과 애민정신에 크게 공감했다. 이렇게까지 엄청난 일을 하신 분이 왜 안알려졌을까"라면서 "양규 장군이 죽고 매년 아내에게 쌀 100석씩 평생 지급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렇게 양규 장군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이 대하사극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승현은 양규 장군을 표현하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JTBC '나의 나라'에 출연하면서 갑옷을 입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보다 훨씬 전쟁신이 많았고, 더 디테일했다.

"촬영 두 달 전부터 말타기와 활쏘기를 연습하며 준비했다. 활과 각궁 활을 제작해달라고 부탁해서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연습했다. 국궁 동호인에게 활 쏘는 방식을 배우기도 했다."

지승현은 "갑옷을 입고 있으면 칼을 한번 맞아도 죽지 않는다. 칼로 갑옷을 내리쳐 철사가 하나하나 떨어져 나오고, 그런 후 단검으로 찔러 죽인다. 전투와 전장에서의 죽음에 대한 고증이 엄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쟁신이 많아 김한솔 PD와 함께 한 시간이 많았다. 흥화진 전투를 미리 동영상으로 다 담아놓은 감독님의 철저한 준비로 필요한 컷만 찍을 수 있었다"고 했다.

양규(지승현) 장군과 부장인 김숙흥(주연우)이 마지막 전투에서 전사하며 수레에 시신이 실려들어 오는 날 촬영장에는 미리 눈을 준비했다. 그런데 실제로 눈이 펑펑 내렸다. 자연도 양규의 뜻깊은 죽음을 아는 듯 했다. 촬영장에서는 양규가 죽고 지승현이 태어났다고 했다. 화살이 온몸에 박히는 날은 지승현의 생일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지승형의 마지막 촬영은 의미가 있었다.

지승현은 '고려거란전쟁'의 양규 캐릭터를 빌드업 하는 과정에서 많은 자료를 참고했다. 그중 영화 '실미도'에서 배우 안성기가 했던 말이 양규 캐릭터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정치가는 정치를 잘하고 군인은 군인의 몫을 해내고, 각자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면 나라는 저절로 잘 되는 것 아니냐"는 대사였다.

지승현은 실제 학군사관후보생(ROTC) 64기로 전방에 위치한 28사단(태풍부대)에서 장교 생활을 마치고 전역했다. 그의 동기는 중령으로 진급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영화 10도에서 마지만 전투 신 촬영을 했다. 춥기만 해도 힘든데, 진짜 전쟁을 하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었다.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했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지승현은 막연하게 연기를 하고싶어했다. 토요명화,주말의 명화를 즐겨보며 꿈을 키운 영화 키드였다. 영문과로 진학한 것도 할리우드에 가겠다는 막연한 계획이 작용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캐스팅은 쉽지 않았고 단역 생활이 18년이나 이어졌다. 지승현의 목소리는 약간 울리면서도 발음이 정확하게 들리는 중저음 보이스다. 목소리가 듣기좋다고 하자 오히려 20대때는 목소리 때문에 캐스팅이 힘들었다고 했다.

"20대에는 주인공의 친구로 나가야 하는데 목소리가 형이라 못나간다고 하더라. 나이가 들면서 목소리 좋다는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양규를 연기할 때는 톤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지승현의 연기 인생은 가장 바람직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무명 시절이 길었지만 점점 연기를 통해 대중에게 얼굴이 알려지고, 이제 유명한 배우가 됐다.

"초기 작품인 '바람'(2009)이 한번에 확 잘 됐다면 어린 나이에 허파에 바람이 들어갔을 것이다. 지나고 보면 힘들기도 했지만 성장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지승현은 장르와 역할을 가리지 않고, 새로운 배역에 도전하기를 즐긴다. 한가지만 하는 걸 원치 않는다. 관성으로 하는 연기를 피하고싶어서다. 최근에는 공교롭게도 사극을 연속해서 두 편이나 찍었으니 이제 현대물을 하고싶다고 했다.

지승현은 "'글레디에이터'에서 검투사를 연기한 러셀 크로우가 '뷰티풀 마인드'에서는 자폐 증상을 지닌 수학 천재를 연기하는데, 같은 배우라고 믿을 수 없었다. 그런 연기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지승현은 MBC 사극 '연인'에서 찌질한 역할인 종사관 구원모로 욕을 먹었지만 '고려거란전쟁'의 양규 역을 통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시청자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는 "미워해서 미안했는데, 여기서 는 너무 사랑한다" "다시 등장시켜라" "점 하나 찍고 돌아와 얌규로 나와라" 등의 재밌는 글들을 올리며 지승현의 퇴장을 아쉬워하고 있다.

지승현은 마지막으로 "이제 시청자 입장이 됐다. 앞으로 '고려거란전쟁'은 현종이 더욱 성장하면서 탈아시아급 스케일로 커질 것이며, 최수종 형님이 연기하는 강감찬의 귀주대첩도 기대해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wp@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