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선택은 '친미·반중' 라이칭더…양안관계 격랑 속으로
집권민진당 경제실정론 불구 라이칭더 40% 이상 득표
'하나의 중국' 후퇴 못하는 中… 미중 갈등 더 심해질 듯
대만 반중 민주화운동의 상징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새 대만 총통으로 당선됐다. 8년 주기 정권교체의 대만 정치 관례를 깬 이번 선거 결과는 대만 국민들이 중국의 전쟁 위협에 맞서 자유를 선택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나의 중국 기조를 앞세워 대만을 고강도로 압박하고 있는 중국과의 양안문제 해결, 악화하고 있는 경제위기 타파 등 시급한 과제들이 라이칭더의 눈앞에 놓였다.
13일(현지시간) TVBS 등에 따르면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는 이날 치러진 총통선거에서 536만표(득표율 40.25%)를,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는 445만표(33.39%)를 얻었다. 개표가 완전 종료되기 전 허 후보가 패배를 인정하면서 선거가 사실상 끝났다. 제2야당 민중당 커원저 후보도 351만표(26.37%)를 얻으며 끝까지 선전했다.
라이칭더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만은 선거로 외부 세력의 개입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며 "권위주의에 맞서 민주주의 동맹국들과 계속 동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의 상대방이 국민당이나 민중당이 아니라 바로 중국이었다고 직격한 셈이다.
라이칭더는 현 총통인 차이잉원보다도 더 중국에 강하게 대립각을 세워온 대표적인 대만 독립주의자다. 1959년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두 살때 아버지가 사고로 죽으며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라면서도 주변에서 수재라는 평을 들었다. 국립대만대 의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석사를, 국립성공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실제 의사로 일하다가 1996년 정계에 들었다.
대만 국회의원 격인 입법의원을 내리 4선 했고 2010년 타이난시 시장을 지내며 실무 경험도 쌓았다. 2017년 국무총리(행정원장)가 사퇴하면서 후임으로 임명됐다. 지난해 1월 차이잉원 총통이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민진당 주석이 됐고 자연스럽게 민진당 총통 후보 지위도 확보했다.
라이칭더가 국제적으로 유명세를 탄건 지난해 부총통 시절 남미를 방문할때 미국을 깜짝 방문하면서다. 중국이 화들짝 놀라 대만 대선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라이칭더는 당시 "대만에 대한 권위주의의 위협이 아무리 크더라도 우리는 절대 두려워하거나 움츠러들지 않겠다"고 말했었다.
총통 당선으로 라이칭더는 대만 정치사에서도 의미있는 족적을 남기게 됐다. 우선 천수이벤 총통부터 이어져 온 국립대만대 법학부 출신 총통 기록은 24년만에 깨졌다.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1996년 총통 직선제 실시 이후 같은 당이 12년 연속 집권하는건 이번이 처음이다. 4년 임기 총통의 한 차례 연임만 허용해 온 대만 국민들이 정치적 관행을 깨면서까지 라이칭더를 선택한데는 이유가 있다.
라이칭더가 예상보다 큰 표차로 허우유이 후보를 꺾은데는 마지막까지 중도표를 흡수한 커윈저 후보의 선전이 직접적 배경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중 친미 기치를 앞세운 라이칭더가 40% 이상을 득표하며 총통이 되는 과정은 중국의 노골적 전쟁 압박에 대한 대만 국민들의 반감과 피로도를 잘 보여준다. 전쟁 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거다.
미-중 대리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번 대선에서 라이칭더가 당선되면서 미-중 간 갈등은 더 고조될 전망이다. 중국은 정치적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후퇴시킬 생각이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 초 신년사에서도 이 원칙을 강조하며 대만 통일 작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라이칭더 당선과 함께 대만과 중국 간 관계는 말 그대로 살얼음판이 될 수 있다.
중국은 이런 맥락에서 통일을 위해 얼마든지 무력을 사용할 수 있음을 시사해 왔다. 중국은 실제로 선거 당일까지도 군용기와 군함, 정찰용 풍선 등을 보내는 등 노골적 군사적 압박을 이어갔다. 중국의 대양진출을 막아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도 대만은 최후의 보루다. 선거에 개입하지 않는다면서도 대만에 무기 지원을 늘리는 등 민진당을 지원해왔다.
양안 문제에 전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지만 대만 내에서는 어려운 경제상황을 먼저 타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반도체동맹 '칩4'(한국·미국·일본·대만)에서 당장 대만의 역할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는 현재 미국과 일본, 독일 등에 생산라인을 짓고 있다. TSMC의 영향력이 커지면 경쟁국인 한국 반도체 기업들로서는 웃지 못할 상황이 된다.
라이칭더로서는 반도체 동맹 등 대외 이슈 외에도 중국의 압박 속 날로 악화하는 대만 민생을 풀어야 한다. 반중 독립 기류를 타고 당선되긴 했지만 집권 민진당의 경제 실정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심판론이 막판까지 상당했다. 같은 맥락에서 취업, 집값 등 현실적 문제를 중시하는 2030 세대의 표심이 제2야당인 민중당에 쏠린 점도 라이칭더가 곱씹을 대목이다.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김도균 기자 dkkim@mt.co.kr 배규민 기자 bk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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