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상하는 토네이도…워크아웃 파괴력 어디까지 [매일 돈이 보이는 습관 M+]

노영우 전문기자(rhoyw@mk.co.kr) 2024. 1. 1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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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으로 우리경제가 또 한번의 시험대에 올랐다. 2024년 벽두부터 불어 닥칠 워크아웃의 바람이 ‘찻잔속의 태풍’에 그칠지 아니면 우리경제를 위기로 몰아갈 뇌관이 될지 주목된다. 정부, 기업, 채권단, 근로자, 경영진 등 경제주체들의 역량이 최대한 발휘돼야 할 시점이다.

우리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 들어간 직후인 1998년, 모든 신문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워크아웃(work out)’이란 말이 나왔다.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워크아웃은 ‘몸매유지를 위해 하는 운동’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동네 헬스클럽에서나 쓰일 단어가 신문에 도배되면서 우리경제는 격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수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었고 경제성장률은 곤두박질쳤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에는 100조원이 넘는 국민세금이 들어갔다. 이 돈을 내기위해 우리나라 국민들은 집에 있는 금붙이까지 팔아야 했다. 기업 오너들을 속속 검찰의 포토라인으로 끌고 간 것도 워크아웃이란 단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그만큼 워크아웃이 우리경제에 미친 충격이 컸다. 그렇게 한동안 잊힌줄 알았던 워크아웃이란 단어가 2024년 벽두부터 언론의 전면을 차지했다. 태영건설이라는 국내 16위(시공능력평가순위 기준) 건설사를 통해서다. 워크아웃의 파괴력을 간접 경험한 입장에서 걱정이 앞선다. 숱한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 경기의 출발선에 선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불안감을 떨쳐야 우리나라 경제와 시장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

워크아웃이란 우리말로 ‘기업개선작업’이라고 불리며 기업 구조조정의 한 방식이다. 구조조정은 기업의 옥석을 가려 살릴 곳은 살리고 퇴출시킬 곳은 퇴출시키는 작업이다. 원칙은 상당히 쉽고 명확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않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업은 ‘잘 쌓아놓은 성’ 같은 존재다. 성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성을 다시 쌓는 데에는 수많은 세월이 걸린다. 기업도 한번 부도 처리되면 부활은 거의 불가능하다. 기업이 망하면 수많은 근로자들은 직장을 잃고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들은 돈을 떼이게 된다. 기업 오너들이 빈털터리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만큼 기업의 퇴출은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다. 이 때문에 일시적인 어려움만 해결해주면 살아갈 수 있는 기업들은 주변의 도움을 받아 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경제 전체적으로, 또는 업종 내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살 수 있는 기업을 골라내고 이들을 실제로 살려내는 작업이 구조조정의 핵심이다.

워크아웃 진행절차
채권단이 기업 옥석가려 지원
외환위기 직후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한 여러 아이디어중 우리 정부가 채택한 것은 ‘영국 런던의 구조조정 방식(London approach)’이다. 1980년대 경제위기가 닥치자 영국은 기업 구조조정의 임무를 채권은행에 맡겼다. 기업에 돈을 빌려준 은행들이 기업 사정을 가장 잘 알 터이니 그들이 판단해 살릴 기업과 죽일 기업을 정하라는 얘기다. 채권은행들이 살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면 채권 회수에 들어가고 이 채권을 갚지 못하는 기업은 부도 처리된다. 다만 채권은행들이 일시적으로 돈을 회수하지 않고 필요한 자금을 지원해주면 살아날 수 있는 기업으로 판단한다면 은행이 나서서 기업을 도와주도록 했다. 이 방식을 ‘워크아웃’이라고 불렀다. 채권은행들이 제각각 흩어져 있어 의견 취합이 안 될 때에는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나서도록 했다. 영란은행이 은행들의 중심 역할을 하고 은행들이 모여 기업의 옥석을 가린 후 살릴 기업은 자금지원과 채권회수 유예 등을 통해 회생을 도모하는 것이다. 제도만 놓고 보면 흠잡을 곳이 별로 없다. 돈을 빌려준 채권은행이 기업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으니 이 정보를 활용해 옥석을 제대로 가릴 수 있다. 또 기업이 회생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자금이니 자금을 담당하는 은행이 주도하는 것도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워크아웃이 실제 진행된 과정을 살펴보면 제도의 취지와 많이 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 7월 고합그룹을 시작으로 워크아웃이 본격 시행됐다. 당시는 외환위기의 후폭풍으로 한국 경제 전체가 휘청거릴 때였다. IMF라는 쓰나미에 모든 기업들이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 정부가 방치했다가는 수많은 기업은 망하고 우리경제는 폭삭 주저앉을 위기였다. 이 때 정부가 ‘워크아웃’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 은행들은 기업 부실이 쌓여가면서 기업과 동반부실화 되는 과정에 있었다. 워크아웃을 주도할 의사도 능력도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 정부기관인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가 워크아웃을 사실상 주도했다. 형식적으로는 채권단 자율협약의 형태를 띠었고 ‘기업구조조정위원회’라는 민간단체가 채권단과 함께 워크아웃을 진행하도록 했지만 뒤에는 항상 정부가 있었다. 이후 재계서열 6위부터 64위까지의 기업을 대상으로 워크아웃 신청을 받았고 2000년까지 총 83개 기업에 대해 워크아웃이 진행됐다. 정부가 기업의 옥석을 가리고 채권단을 압박해 자금을 지원하도록 했다. 그러다 기업이 망하고 은행이 부실화되면 국민세금인 공적자금을 투입해 은행을 살렸다. 이런 방식이 한국식 워크아웃 제도였다.

한국식 워크아웃은 정부가 주도한 ‘관치’
한국식 워크아웃은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이 특징을 살펴보면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작업이 기업은 물론 우리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할 수 있다. 먼저 워크아웃은 한번 시작되면 봇물 터지듯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 구조조정은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작업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채권단에 사실상 항복 선언을 하는 것이다. 채권단도 회생이 불확실한 기업에 돈을 넣어야하기 때문에 꺼려지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갈 데까지 간 기업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한 기업이 워크아웃을 신청했다는 것은 그 기업뿐만 아니라 해당 업종이 위험하다는 얘기도 된다. IMF때는 업종 불문하고 ‘대한민국호’ 전체가 위태로웠다. 그러다보니 기업 규모와 업종 등을 불문하고 수많은 기업들이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2023년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했다는 것은 한국호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건설 업종에서는 워크아웃에 준하는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기업들이 더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태영건설 협력사의 숫자가 581개에 달하고 이들이 금융권에서 받은 대출 규모도 7조원 정도인 것으로 파악된다. 모회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가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이뤄지지 않으면 협력사로 불똥이 튄다. 또 태영건설이 보증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규모도 3조7000억 원에 달한다. PF가 건설업계의 뇌관이 되고 있어 태영건설 파장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주목된다.
태영건설 차입금 현황
워크아웃은 성공하기까지 숱한 난제들이 있다. 이 난제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시장은 왜곡되고 우리 경제는 이로 인한 악영항을 받는다. 기업이 어려워지면 대주주 채권자 경영진 근로자 등 이해관계자들이 먼저 자기 것부터 챙기려고 한다. 그러다보면 기업보다 특정 집단을 위한 워크아웃이 될 가능성이 높고 ‘구조조정은 산으로 가는’ 현상이 발생한다.

기업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면 채권단이 모여 협의회를 만든다. 다음으로 워크아웃 방안이 표결에 부쳐져 채권액 기준으로 75%의 동의를 받아야 워크아웃이 진행된다. 태영 건설 채권단은 일단 워크아웃을 진행한다는 데는 동의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 격언은 워크아웃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앞으로 숱한 난관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채권단이 워크아웃에 동의하면 3-4개월간 채권행사를 유예하고 기업에 대한 실사를 하게된다. 실사결과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높다고 판단되면 기업개선계획을 확정한다. 이 계획을 확정할 때도 채권단의 75%가 동의해야 한다.

향후 과정에서도 채권단의 이해관계가 제각각이어서 동의를 받는 과정이 만만찮다. 외환위기 당시 워크아웃 투표를 할 때도 대형 시중은행들은 채권액도 많고 정부 눈치도 보느라 워크아웃에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은행이나 보험 증권 저축은행 등은 하루라도 빨리 자신들의 채권을 회수하고 싶어 했다. 채권은행 간의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 기업과 대형 시중은행들이 골병드는 경우도 많았다. 이럴 땐 정부가 나서 머뭇거리거나 자기 이해만 챙기는 금융회사들을 강하게 압박해 문제를 풀어가곤 했다.

구조조정은 이해당사자들의 손실 분담 과정
태영건설의 3분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의 금융회사 차입금은 단기 6608억 원, 장기 1조4942억 원 등 총 2조1550억 원이다. 채권액을 금융회사별로 따져보면 산업은행이 9.3%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KB국민은행(7.4%), 기업은행(4.6%), 우리은행(3.3%), 신한은행(3%), 하나은행 (2.9%) 등이다. 은행권 전체의 채권액 비율은 32%로 집계된다. 은행이 단결해 워크아웃을 진행하려고 해도 동의를 위한 정족수(75%)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채권액 기준 70%에 달하는 2금융권을 포함해 다양한 채권자들의 이해관계를 취합해야만 워크아웃 작업을 계속 할 수 있다. 외환위기 때에는 대기업들의 대형은행 채권 비율이 높아 정부와 몇몇 은행이 주도하면 문제를 풀어갈 수 있었지만, 갈수록 이해관계자가 다양해져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운 구조다. 과거 쌍용건설의 경우 1999년 3월 워크아웃이 시작된 후 재무구조 개선으로 2004년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하지만 이후 인수합병(M&A)이 실패하면서 기업환경이 악화되어 2013년3월 다시 워크아웃이 시작됐다. 하지만 이때는 채권단과의 마찰로 결국 2013년12월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다. 이처럼 워크아웃 시작 이후에도 수많은 장애물을 극복해야 정상화를 이룰 수 있을 만큼 기업 구조조정은 지난한 과정이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기업의 대주주와 경영진은 부실기업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기보다는 최대한 자기의 재산을 지키려고 한다. 워크아웃 때마다 대주주들이 자금을 빼돌린 정황이 발견되고 이로 인해 법적인 책임을 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근로자들은 임금삭감·인원감축 등에 반대하면서 쟁의행위가 발생하기도 한다. 구조조정은 다름 아닌 기업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손실 분담 과정이기도 하다. 각 주체들이 공정한 손실 분담에 합의해야만 구조조정이 성공할 수 있다.

‘찻잔속의 태풍’에 그칠지, 경제 전체의 뇌관이 될지
정부의 리더십도 관건이다. 1998년 외환위기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정부는 두 팔 걷고 구조조정에 나섰다. 구조조정을 지휘했던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구조조정의 전도사’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와 금감위 관료들은 수시로 주요 채권단과 회의를 하면서 때론 설득하고 때론 협박까지 하면서 구조조정을 진행해왔다. 무리한 관치금융으로 법과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 관료 주도로 행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일들은 대통령이 전권을 맡길 만큼 정부 관료들에게 힘을 실어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24년에는 상황이 예전 같지 않다. 과거처럼 책임지려는 관료도 보이지 않고 민간 은행들이 과거처럼 정부의 말을 잘 듣지도 않는다. ‘자유와 시장경제’를 모토로 표방하고 있는 정부가 필요한 ‘관치’를 제때 할 수 있는지도 관건이다. 만약 정부가 총대를 메지 않고 채권단에 떠넘기고, 채권단은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 한다면 구조조정은 돈과 힘만 낭비하고 아무 성과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

태영건설이라는 회사를 계기로 2024년 우리나라 경제에 워크아웃 바람이 불고 있다. 정부와 채권단, 기업들이 합심해 문제를 풀어간다면 ‘찻잔속의 태풍’에 그칠 수 있다. 하지만 향후 워크아웃이 표류하고 부실기업들의 구조조정이 표류한다면 ‘기업발 경제위기’로까지 번질 수 있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은 한 건설사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우리경제 전체의 뇌관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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