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 망했네, 한잔하자”…학교매점서 와인 판 적도 있다고? [전형민의 와인프릭]
“교복 입은 애들이 11시 즈음부터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자정이 되자마자 보란듯이 들어오더라니까. 영화에서처럼 민증 쫙~ 보여주면서”
최근 한 모임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분께 들은 이야기 입니다. 올해 1월1일부터 법적으로 주류 구입이 가능해진 2005년생들이 기념식을 치르듯 주점을 들어왔다는 것인데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한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법정 최저 음주 연령(MLDA·Minimum Legal Drinking Age) 제도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새해 첫날마다 되풀이되는 풍경이죠. 대부분의 국가에서 MLDA는 18세로 고정돼 있습니다. 이보다 낮은 연령의 사람에게 주류를 판매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불법입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인데요. 리커샵 등에서 맥주나 와인 한 병을 사려고 해도 21세 이상이어야 합니다. 반대로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는 빠르면 16세부터 가능하죠.
사실 알고보면 MLDA의 개념은 대부분 국가에서 만들어진지 100년도 되지 않은 아주 현대적인 개념입니다. 과거에는 어린이도 와인을 마셨다는 거죠.
실제로 와인으로 세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프랑스는 불과 70년 전인 1950년대까지는 학교에서도 와인을 마셨다고(?) 합니다. 오늘 와인프릭은 서양사 속 와인과 미성년의 음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와인과 밀접한 사회는 고대 로마로 이어집니다. 고대 로마에서 와인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소비하는 식단의 필수품이었습니다. 유라시아 전역을 무대로 활동했던 로마 군단병들은 포스카라는 와인음료를 식수로 활용하기도 했고요.
특히 로마는 제대로된 학교랄 게 없었고, 부잣집이나 고위층의 경우 개인 교사를 둬서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당연하게 와인을 마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정화기술이 덜 발달한 당시에는 어떤 상태인지 부정확한 물을 마실 바에는 알코올이 함유된데다 각종 향신료까지 들어간 와인을 식수로 음용하는 게 차라리 나은 선택이었던 겁니다.
이처럼 와인은 사회적 또는 정신적 음료로서 고대 서양 세계의 중심이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예배에서 우유와 꿀 같은 다른 액체를 대체하기도 했습니다. 서양사를 관통하는 초기 기독교에서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 성찬례의 중심이기도 했습니다.
유대인이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건강에 좋고 사회적이라는 측면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남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예리하게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신약에는 만취한 노아의 사례와 같이 술취함에 대한 몇 가지 경고와 적당한 음주에 대한 훈계가 포함됐습니다.
특히 물이 오염되어 마시기에 안전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와인은 적당한 알코올 함량으로 소독 효과를 가지면서 모든 계층의 일상적인 주식이 됐습니다. 당연히 아이들도 와인을 마시는 것이 흔한 일이었습니다. 다만 이때부터는 과음의 피해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희석된 형태로 제공됐죠.
예술, 문화, 과학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진 시기인 르네상스는 와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무역로가 확장되면서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와인을 접하게 됐고, 이는 더욱 세련된 와인 문화로 이어졌습니다.
이 시기 와인 제조 기술은 상당히 발전합니다. 떼루아(terroir)라는 개념, 즉 포도가 자라는 땅과 환경의 특성에 따라 와인이 달라진다는 인식이 본격화됐고, 덕분에 지역별 와인과 독특한 떼루아들이 강조됐죠.
무엇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어린이들이 존중받고 소중히 여겨졌습니다. 교육과 예술에 대한 강조가 점점 더 중요해지면서 입니다. 더불어 어린이에게 포도주를 주는 것은 과거보다는 좀 더 엄격하게 조절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성년의 와인 소비는 여전히 적당히 통용됐습니다.
14세 미만에게 와인을 파는 것은 막았지만, 1981년까지는 고등학교 내 와인 음용을 막지는 않았습니다. 불과 40년 전까지도 집에서 부모님으로부터 와인을 급여받아 학교로 가져온 경우, 점심 시간 등에 식사와 함께 음용하는 것은 허용된 셈입니다. 심지어 프랑스는 현재까지도 어린이의 와인 구매에 제약이 없습니다.
현대에 들어 미성년 특히 어린이에 대한 와인 음용이 금지된 것은 깨끗한 식수를 사용할 수 있게 되고 차와 커피 등이 와인의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입니다. 의학의 발달로 어린이와 청소년의 알코올 소비가 생물학적 발달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10대’라는 개념이 19세기 이후에야 등장한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유럽에서는 14세가 성인과 미성년을 가르는 척도로 여겨졌습니다. 개인의 인생 단계에서 청소년기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청소년기를 미성년으로 보고 보호해야할 단계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영 연방은 전세계의 25%에 해당하는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제도는 곧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현재 대부분의 나라 MLDA 제도의 모태가 됐습니다.
재밌는 점은 전통적으로 와인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구대륙(유럽과 주변 지역) 와인 생산국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MLDA 제도의 연령이 낮다는 겁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와인 주요 생산국의 MLDA 연령은 16~17세 입니다.
여전히 MLDA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일부 국가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은 아르메니아, 지부티, 캄보디아, 부르키나파소(13세) 등이죠. 우리나라 관광객이 자주 찾는 마카오 역시 명시적인 MLDA 제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공식적으로 제한이 있을 뿐 입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와인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현대에 널리 연구되고 있습니다. 적당한 와인 소비는 성인의 특정 건강상 이점과 관련이 있는 반면, 알코올이 신체와 정신 발달에 미치는 영향 역시 우려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합니다.
많은 문화권에서는 특정 연령 미만의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것을 눈살을 찌푸리거나 불법으로 여기지만, 여전히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아주 적은 양이더라도 가족 식사 등에서 미성년에게 와인을 소개하는 것이 일반적이기도 하죠.
여러 가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보입니다. 와인과 미성년의 관계는 고대 생활 필수품에서 현대의 기호식품으로 수세기에 걸쳐 계속 발전해왔고 앞으로도 발전해나가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어쩌면 미래에는 음주 가능 연령이 더 높아지거나, 과거처럼 폐지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미래 와인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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