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일기 쓰기 목표 세운 사람은 꼭 보세요

한겨레 2024. 1. 1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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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손소영의 짧은 글의 힘
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서점에 갔다가 ‘독서의 완성은 완독이 아닌 기록’이라는 문구를 보고 무척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언젠가부터 책을 몇 권 읽었다는 것에만 욕심을 내다가, 읽은 책 내용을 내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원래 이 책을 읽고자 했던 이유는 뭔지에 대해서는 잊게 됐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왜 그렇게 글을 쓰려고 해?” “모든 게 살아 있도록 하는 거야. 결국 죽게 될 것들을 보호하는 거지. 글로 남겨놓으면 영원할 테니까.”

잊는다는 게 축복일 때도 있지만 오래 남겨두고 싶은 것까지 잊히는 건 안타까울 때가 많죠.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억하기 위해서 글을 쓰는 일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글쓰기 수업을 시작하면서 항상 하는 말이 있는데요, “삶의 좋은 순간들을 글로 붙잡아두자”입니다. 우리의 생존본능 때문에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이 더 강하게 더 오래 남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글로 기록해놓지 않으면 우리가 막상 기억하고 싶은 행복한 순간들부터 하나씩 사라져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같은 일에 대해서도 조금씩 다르게 기억하기도 하니까요. 사람들에게 행복하냐는 질문을 던지면 전체적인 나의 상태를 체크해서 전반적인 만족도의 평균을 계산해서 답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가 행복하다고 느꼈을 때를 잘 떠올려보면 커다란 뭔가가 아니라 사소한 순간이었을 때가 많습니다. 산책하면서 본 아름다운 풍경,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들과의 대화, 좋아하는 사람과 먹은 맛있는 음식…. 사소하다고 평가되는 일상이기 때문에 강한 기억으로 자리잡기가 힘들겠죠. 그래서 기록으로서의 글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타인에게 내 하루를 들려준다면

제 강의 첫 시간에 ‘왜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냐’고 물었더니 “일기를 꾸준히 쓰기 위해서”라고 답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내 일상을 글로 남기는 게 더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제력도 없고 특별하고 강렬한 뭔가도 없으니까요. 매일 무슨 얘기를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고 난감하다는 게 일기 쓰기의 어려움인 듯합니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뭔가 특별한 걸 찾아내고 같은 일이라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다른 단어들로 표현해보면서 계속 글에 변화를 줘보면 어떨까요? 매일 일어나는 똑같은 일이라도 나의 감상과 생각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한다. 개별적 이미지에 이야기를 붙이고, 실제 우리가 경험하는 스쳐 지나가는 삶의 장면들을 포착해서 정지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들에 의해 삶을 철저하게 살아간다.”(조앤 디디언, ‘하얀 앨범’에서)

일기 형식에 변화를 줘보는 것도 매일 꾸준히 일기를 쓸 수 있는 돌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 나에게 쓰는 편지 형식이나 누군가에게 나의 하루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써볼 수도 있습니다. 의무적으로 채워야 할 분량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니까 그날그날 쓸 수 있는 만큼만 쓰면 됩니다. 어느 날은 단어 하나만 적혀 있을 수도 있고, 또 어떤 날은 한 페이지 가득 채워져 있는 날도 있을 겁니다. 그런 걸 통해서도 나를 돌아볼 수 있겠죠.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 배운다고 하는데요, 그런 점에서 꾸준히 일기 쓰는 습관만큼 좋은 건 없습니다. 오늘 일기를 쓰기 전에 어제 일기를 다시 펼쳐보고 점검하며 ‘짧은 글 쓰기의 룰’을 거듭 적용할 수 있습니다. 완성된 글을 다시 읽어보니, 어떤 부분에서 갑자기 문장이 길어졌거나 유독 글이 장황해졌다면 그 사건이나 상황, 그 사람에 대한 나의 감정이 격해졌다는 증거입니다. 감정적이 되면 글이 길어지기 마련이니까요. 반대로 짧은 글의 특징인 건조체·간결체로 글을 쓰면 감정이 절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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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필로 쓴 일기

혹시 손글씨로 일기를 기록했을 때 정자로 바르고 깔끔하게 적혀 있는 부분이 있다면, 오히려 내 깊은 곳의 무엇을 표출하지 못하고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땐 어지럽고 정돈되지 않은 글씨체로 다 뱉어낸 다음에 다시 쓰면 한번 걸러진 정제된 글이 됩니다. 처음에는 문법이나 형식·구성 같은 것에 대한 압박 없이 떠오르는 대로, 손 가는 대로 편하게 다 풀어 쓴 다음에 검토하면서 배웠던 원칙들을 적용해서 첨삭하면 된다고 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일기 쓰기의 또 다른 장점은 어제의 나와 비교하면서 동기부여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나, 꾸준히 노력하는 내 모습을 확인하면서 삶의 원동력을 얻게 되기도 하고요.

제가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가장 도움이 많이 됐던 건 메모하는 습관입니다. 뭘 보든, 뭘 하든, 불쑥 떠오른 생각과 느낀 감정들을 습관적으로 적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나만의 중요한 글쓰기 자료가 됩니다. 일기를 꾸준히 쓰고 내 삶을 의미 있게 기록하는 데에도 이 메모가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메모하는 버릇이 필요한 이유는, 막상 글을 쓰려고 마음먹고 앉았을 때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다가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뜬금없이 영감이 떠오르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아주 간략하게 키워드만 메모해둡니다. 이런 메모들이 하나둘씩 쌓여가는 걸 보면서 다시 오지 않을 뭔가를 놓쳐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조급함을 떨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읽었던 연구 결과가 떠오르는데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3가지를 쓰게 한 그룹이 10가지를 쓰게 한 그룹보다 더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3가지까지는 어떻게든 떠올릴 수 있었지만 10개나 생각해내려니 한계가 와서 오히려 ‘나는 지금 불행한가’라고 느끼게 된 걸 텐데요, 평소에 메모나 일기를 통해서 꾸준히 소소한 행복을 기록해왔다면 금세 10가지를 채우고도 더 떠오르는 풍족함에 뿌듯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항상 새해가 되면 작심삼일이 되더라도 꼭 목표나 계획을 세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꾸준함이 성공의 관건인데, 처음부터 너무 크고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는 내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목표를 정해서 작은 단위·기간으로 쪼개서 하나씩 이뤄나가는 게 좋다고 합니다. 작더라도 해냈다는 성취감이 쌓이면서 스스로 긍정적인 감각을 일깨워 자신감을 심어주고 선순환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공하는 경험의 축적이 결국 좋은 결과물로 연결되는데,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량과는 상관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하는 게 중요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글이라도 쓰다 만 글보다는 짧더라도 완성한 글이 더 의미가 있습니다.

방송작가
물리학을 전공한 언론학 석사. 여러 방송사에서 예능부터 다큐까지 다양한 장르의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짧은 글의 힘’, ‘웹 콘텐츠 제작’ 등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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