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커튼콜] 혹시 지금 마음이 답답하다면? '스쿨 오브 락'으로 "뻥 뚫어봐!"
열정 가득한 '록의 향연'
“이 뮤지컬 속 아이들이 실제로 연주를 하는 건지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네! 실제로 연주를 합니다”
뮤지컬 ‘스쿨오브락(School of Rock)’의 공연이 시작되기 전 관람 매너를 알려주는 방송의 말미에 나오는 설명입니다. 사실 기자는 이 방송을 듣고 ‘실제로 연주를 하는 건지 굳이 왜 묻는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궁금증은 뮤지컬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해소됐어요. 관객석 여기저기서 ‘지금 이 연주를 정말 저 아이들이 하고 있다고?’라는 웅성거림이 들려왔으니까요.
뮤지컬 ‘스쿨 오브 락’의 내용은 사실 클리셰(cliche) 범벅입니다. (솔직히 다른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작품도 다 그렇죠.) 친구 부부의 집에 얹혀 사는 실패한 루저 로커 듀이 핀, 월세를 못 내 허덕이던 그는 어느 날 친구 앞으로 온 편지를 발견합니다. 호레이스 그린 사립학교의 대리 교사 자리를 제안하는 편지였는데요. 돈이 급했던 듀이는 친구인 척 하며 그 학교 대리 교사 일을 시작합니다.
당연히 교사 자격증도 없는 듀이가 일을 잘 할 리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맡은 반 어린이들이 음악적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그는 그토록 나가고 싶었던 ‘배틀 오브 밴드(밴드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아이비리그에 갈 수 있다’며 밴드 연습을 시키기 시작합니다. 여기까지의 스토리는 사실 영화로도 나왔으니 너무나 유명하죠. 당연하듯 밴드 대회에 출전하는 날까지 여러 번의 고난을 넘어야 하고, 그러면서 아이들과 주인공 듀이가 성장해 나가는 내용입니다. 이 진부한 스토리를 조금도 진부하지 않게 만드는 공연의 핵심은 바로 '코너 글룰리와 어린이 배우들’입니다.
잭 블랙이 완벽하게 해낸 듀이 역할을 코너가 어떻게 할지, 궁금한 분들 많을 것입니다. 사실 코너 역시 가장 존경하는 배우로 영화 ‘스쿨 오브 락’의 주연 배우였던 잭 블랙을 언급했죠. 그는 “잭 블랙은 내가 연기를 시작하게 만든 이유”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를 사는 MZ세대에게는 코너 글룰리는 그저 코너 글룰리일 것입니다. 더 이상 ‘잭 블랙’ 다음이 아닐 거예요. 코너는 축지법이라도 쓰듯 무대 전체를 씁니다. ‘이게 3월까지 가능한 에너지야?’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공연 내내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릅니다.
어린이들이 노래하고 율동하는 모습이 무척 귀여울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귀엽다는 표현은 이 프로페셔널한 배우들에게 맞지 않습니다. 어린이 배우들은 성인배우만큼 멋지거든요, ‘쿨’ 그 자체입니다. 그렇다고 작품이 어린이들의 실력을 한 번에 ‘우당탕탕’ 보여준다면 그만큼 촌스러운 일도 없을 겁니다. 어린이들의 성장 과정을 끌어올리는 데는 듀이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듀이는 차근차근 아이들의 재능을 발굴해 냅니다. ‘뚱뚱하고 못생긴 악기’인 첼로를 연주하던 아이에게는 베이스를 맡깁니다. “첼로를 눕혀서 연주한다고 생각하라”는 말도 안되는 주문과 함께요. 친구가 없어 한 마디도 못 하고 있던 아이에게서 어마어마한 ‘소울’을 발견하기도 하죠. 명문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는 이 아이들은 모두 부모님들에게 억압 받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무조건 아이비리그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죠. 정말 ‘록 스피릿’이 필요한 상황 아닌가요. 듀이는 아이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저항심에 불을 지릅니다. 그리고 ‘권력자에 맞서라(Stick it to the man)’라고 외치게 하죠.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스쿨 오브 락의 핵심은 어린이 배우들이죠. 이번 스쿨오브락 월드투어에는 총 17명의 어린이 배우(Children cast)가 출연합니다. 제작진과 성인 배우들은 이 배우들을 ‘아이들(Kids)’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지난 11일 공연장인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도 성인 배우들과 제작진은 ‘키즈’라는 표현을 극도로 아꼈는데요. 어린이 배우들을 프로이자 동료로 대우해주는 모습이었습니다.
보통 어린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뮤지컬에서도 어린이 역할은 성인이 분장을 통해 소화합니다. 실제 어린이가 무대에 서는 일은 극히 드물고, 제한된 역할만 맡곤 하죠.(성인 배우 역할의 어린시절) 하지만 이 뮤지컬은 사실 어린이 배우가 주인공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린이 배우가 핵심입니다. 저 역시 이렇게 모든 어린이 역할을 다 실제로 어린이가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요. 실제로 평균 연령 11.5세의 어린이들이 기타, 드럼, 일렉기타, 키보드 등을 직접 연주합니다. 이 극을 이끌어가는 핵심 역할이죠.
그러면 이제 이 어린이 배우들이 얼마나 연주를 잘 하는지가 관건입니다. 아이들은 한 명이 1~4개의 역할을 맡기도 합니다. 성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죠.
하지만 듀이가 학교에서 클래식만 배우던 아이들에게 일렉트릭 기타와 키보드를 펼쳐두고 연주를 시키는 장면이 시작된 이후부터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관객석에서는 ‘우와···’ ‘와···’하는 탄성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말잇못(말을 잇지 못하다)’이라고나 할까요. 처음 드럼을 맡은 프레디 역할의 배우, 사무엘 빅모어가 드럼 스틱을 쥐고 드럼을 아주 ‘살짝’ 연주하는데요. 클리셰 가득한 앞부분이 전생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질 정도로 진짜 공연이 시작된 느낌입니다. 다음은 기타. 기타를 맡은 어린이 배우의 연주 실력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말하는 건 어쩌면 스포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간단하게 설명해 볼게요. 기타 역할을 맡은 배우 ‘헨리 웹’은 5세 때 기타 연주를 시작했다고 해요. 록그룹 본 조비이 필 에긋와 건즈 앤 로지스의 리처드 포르터스가 심사한 ‘기타 솔로 경연’에서 3위를 차지했고 9세 때 스쿨오브락 영국 투어에서 1년간 기타리스트 잭 역할을 맡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12세라고 하니 인생의 대부분을 기타를 치며 산 셈입니다. 그밖에 ‘브리튼즈 갓 탤런트 2023’ 준결승까지 나간 핸리 처칠, 영국 국립청소년 합창단 출신 이자 레미제라블 에포닌 아역을 맡은 한야 장 등 대부분 어린이들의 커리어와 필모그래피가 어른 이상으로 반짝반짝 빛납니다. 말 그대로 ‘빅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죠.
공연을 앞두고 공연장 인근 카페에서 우연히 어린이 배우들이 식사를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무대 위에서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프로 배우들이었는데, 사실 먼 나라에 와서 낯선 풍경을 접하며 재잘거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이들이었어요. 이번 공연은 ‘월드투어’입니다. 국내에서 3월까지 공연을 한 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공연해야 합니다. 어른도 힘든 이 장기 투어를 어린이들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요?
엔터테인먼트에 종사하는 어린이들을 관리하는 영국법은 무척 까다롭다고 해요. 협력연출을 맡은 크리스토퍼 키는 “아이들은 모두 영국 출신이기 때문에 영국의 법에 따라 연습시간, 공부 시간 등을 준수해야 한다”며 “아침 일찍 일어나 수업을 듣고 돌봄 전문가의 도움에 따라 다양한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어른들만큼이나 바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라고 해서 연습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성인 스태프들은 어린이 배우들이 춤과 노래, 무대에 대한 열정이 너무나 강렬하다며 입을 모아 칭찬했어요. 연습을 멈추지 않아서 질질 끌고 나와야 할 때도 있다면서요. 실제로 식사를 마치고 카페 한 켠에서 춤 연습을 하는 배우들도 있었습니다. 주연 배우 코너 글룰리는 “함께 하는 어린이배우로부터 많은 에너지를 받는다, 그들은 내가 무대 위에서 뛰고 소리 지르게 하는 원천”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열정 가득한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는 답답한 마음을 뻥 뚫리게 합니다. 집에 오는 내내 ‘스틱 잇 투더 맨(권력자에게 맞서라)’라는 노래가 귀에서 맴돌았어요. 혹시 회사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분들이라면 저는 ‘스쿨 오브 락'을 보길 권합니다. 콘서트장을 방불케하는 관객들의 열기에 한 번 빠져보면 어떨까요?
혹시 이번 주말 공연을 보기로 계획한 관객이라면 딱 한 가지 준비해야 할 게 있습니다. 바로 ‘흥분’입니다. 기자간담회에서 코너 글룰리는 ‘스쿨 오브 락’을 보는 꿀팁을 물어보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했어요.
“모두들 일어나서! 소리 질러!”
비싼 돈을 내고 공연장에 갔는데 앞 사람 키가 너무 커 두 시간 넘게 고개만 기웃거리다 온 적 있나요? 배우의 노래와 연기뿐 아니라 숨소리까지 여운이 남아 같은 돈을 내고 본 공연을 또 본 적은요? 그리고 이런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 혼자만 간직하느라 답답한 적은 없나요? 세상의 모든 공연 덕후의 마음을 대신 전하기 위해 기자가 나섰습니다. 무대 위 출연진에게 박수가 쏟아지는 그 어떤 곳이라도, ‘어쩌다 커튼콜’과 함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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