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째 고생은 똑같고, 시세만 3배가 됐다…직장엄빠의 아킬레스건 [워킹맘의 생존육아]

이새봄 기자(lee.saebom@mk.co.kr) 2024. 1. 1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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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픽사베이
이민정 씨(37·가명)는 7개월 된 아들이 하나 있다. 늦은 나이에 얻은 첫 아이다. 남편은 외국계 회사 대표, 본인은 외국계 금융회사 임원이다. 업무상 한 달에 한 번씩 홍콩과 한국을 오가며 아이를 달고 다닌다. 홍콩에 가면 필리핀 도우미가 있다. 한 달 보수는 3800홍콩달러(한화 약 60만원)다. 임금은 법으로 정해져 있다. 필리핀 도우미들은 처음 비자를 받을 때, 2년마다 비자를 갱신할 때 고용주의 보증이 필요하다. 고용주의 직장·월급·은행잔액 등을 보고 이민국에서 비자를 내준다. 출입국 관리가 엄격한 데다 고용주가 보증하지 않으면 추방당하기 때문에 성심성의껏 일한다. 다른 데 가봐야 월급이 똑같으니 옮길 동인도 적다.

민정 씨는 한국에 오면 아이를 친정에 맡긴다. 한국에선 ‘믿을 수 있는’ 도우미를 구하기 어렵다.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중국인이나 조선족은 기본적으로 불법체류자인 경우가 많다. 인터넷을 통해 몇 사람을 인터뷰해 봤다. 본인 말을 제외하고는 정보가 하나도 없다. 확인할 데도 없다. 유일한 신분증인 여권을 복사하자고 하면 불쾌해 한다. 여기 아니라도 갈 데는 많다는 식이다. 신분은 불확실하고 일을 잘하지도 않으며 언제 그만둬도 손쓸 길이 없는 사람을 쓰는데 월급은 최소 120만~140만원이다. 가사도우미들은 수시로 ‘어느 집은 얼마 준다더라’며 짐을 싼다. 좀 괜찮다 싶으면 1년마다 올려줘야 한다. 강남에선 한 달에 150만~170만원도 흔하다. 세금 한푼 없는 돈이다.

이 사례를 보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100만원 대라고? 숫자를 잘못썼네, 요즘 시세를 모르는 것 아니야?’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워본 엄마라면, 특히 워킹맘이라면 이같은 사정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나 역시 가끔 친구들끼리 ‘필리핀 시터를 쓰는 홍콩 엄마들이 부럽다’는 말을 하곤 하니 말이다. 숫자가 틀린(이유)는 시점 때문이다. 사실 이민정씨의 사례는 무려 14년전인 2010년 9월 14일자 매일경제에 실린 데스크 칼럼에 나온 내용이다. 칼럼의 제목은 ‘제대로 된 도우미를 달라’다. 시터 급여 시세만 350만원에서 400만원대라고 수정하면 지금의 상황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민정씨의 사례로 시작된 칼럼의 다음 문장도 소개해본다.

“월급 다 털어서 도우미한테 갖다 바치고도 정작 그 도우미가 갑자기 사라지면 어떻게 해볼 방법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게 대한민국 중산층, 맞벌이 주부들의 현실이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진풍경이다. 정부가 불법을 방치한 사이 중산층의 등골이 휘고 있다.

도우미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도우미로 인한 고통을 얘기하느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도우미가 없어서 결국 유능한 여성들이 집에 들어앉는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친정과 시댁을 오가며 아이를 나르다 지쳐 경력의 단절을 택하고야 마는 여성이 얼마나 많은가.”

2010년은 아직 내가 결혼을 하기 전이다. 20대의 나는 워킹맘이었던 선배가 쓰신 이 글을 보고 절망하면서도 작은 희망을 품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고, 이렇게 현실적인 문제를 콕 짚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내가 결혼을 할 때가 되면 이 문제가 조금은 해결되겠지 싶었다. 하지만 그 사이 14년이 흘렀고 나는 결혼을 했고 두 아이를 낳았다. 안타깝게도 그 사이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니, 앞서 말했듯 ‘시세’만 달라졌다.

2023년 8월 24일 매일경제 1면에는 아이를 낳는 것을 포기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중인, 결혼 3년차인 김현주씨가 등장했다. 맞벌이인데 아이를 낳아도 봐줄 사람이 없어서가 이유였다. 부모님은 멀리 사시고, 입주 시터의 시세가 400만원까지 치솟아서다.

2023년의 전문가들 역시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외국인 가사근로자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국내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막고 출산율을 제고하는 대책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 국가에서는 월 100만원 정도의 저렴한 임금으로 입주 도우미를 구할 수 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듯 2010년과 2023년의 기사들이 짚어내는 핵심은 같다. 홍콩·싱가포르에 비해 약 세배 많은 외국인 시터의 월급은 불법 체류를 해가며 한국에서 일을 하는 필리핀(혹은 조선족)가사도우미에게 지급되는 ‘위험수당’인 셈이다.

일본국제협력기구 소속 노부유키 나카무라 연구위원은 ‘외국 가사도우미 고용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이란 연구보고서에서 홍콩 가구를 분석한 결과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했을 때 5세 미만 유아 수가 0.36명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르면 올해 3월부터 고용노동부와 서울시가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시작한다고 한다. 100명의 필리핀 가사도우미가 국내에 들어오는 게 시작이다. 지난 2022년 9월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을 공식 제안한 이후 약 1년 6개월 만이다.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출산 여부와 관계없이 노동시장에서 경력을 이어갈 수 있어야한다. 정부가 보증해주는 외국인 도우미는 실제 상당수 여성들에게 지원금보다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다시 2010년의 칼럼의 글을 인용한다. 나를 포함해 2024년의 엄마들도 이렇게 말하고 있기에.

“돈은 내가 알아서 벌 테니 ‘제대로 된 도우미’나 좀 쓸 수 있게 해달라는 게 그들의 소리 없는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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