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총수들 새해 첫 행보에 담긴 공통 분모는
경영 환경 안갯속 연초 '종횡무진'
혁신 이끌 기술 'AI'에 앞다퉈 주목
워치인더스토리는 매주 토요일, 한 주간 있었던 기업들의 주요 이슈를 깊고, 쉽고, 재미있게 파헤쳐 보는 코너입니다. 인더스트리(산업)에 스토리(이야기)를 입혀 해당 이슈 뒤에 감춰진 이야기들과 기업들의 속내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매년 초가 되면 재계 총수들의 첫 현장경영 행보가 화두로 떠오릅니다. 신년사에서 그해 각 기업의 경영전략 큰 그림이 그려진다면, 첫 현장 방문을 통해선 그 가운데 가장 중점이 될 사업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요 그룹 총수들이 연초를 맞아 현장경영에 힘을 주고 있는데요. 각사마다 주요 사업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기술강화', 그중에서도 '인공지능(AI)'으로 경영 로드맵의 윤곽이 좁혀집니다.
'6G' AI 구현할 핵심기술…이재용 "기술투자로 '초격차 리더십' 명맥 잇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새해 첫 행선지로 잡은 곳은 네트워크 통신기술을 연구하는 삼성리서치입니다. 삼성의 글로벌 연구개발 허브로 불리우죠. 이 회장은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삼성리서치를 방문했는데요.
이 회장이 첫 경영 행보로 통신기술 관련 현장을 찾은 것은 2019년 이후 5년 만이라 더욱 눈길을 끌었죠. 이 회장이 이곳을 방문한 까닭은 6G 기술 선점 여부가 삼성의 미래경쟁력을 좌우할 중요 변곡점이 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6G는 5G 대비 더 높은 에너지 효율과 네트워크 범위를 제공합니다. AI·자율주행차·로봇·확장현실(XR) 등 첨단 기술을 일생 생활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 기반 기술입니다.
업계는 6G 관련 글로벌 표준화 절차가 2025년부터 시작돼 2030년 전후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시장조사 업체 마켓앤드마켓에 따르면, 전 세계 6G 시장 규모는 지난해 51억달러에서 2030년 402억달러로 연평균 34.2% 성장할 전망입니다.
다만 과제가 뚜렷합니다. 과거 삼성전자가 5G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지만 후발주자인 중국 화웨이 등과 경쟁에서 밀렸고, 이후 글로벌 5G 장비 시장 내 한국 기업들의 점유율은 한 자릿수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이는 삼성전자가 지난 2019년 삼성리서치에 차세대통신연구센터를 설립, 6G 글로벌 표준화와 기술 주도권 확보에 나선 이유입니다. 6G를 위한 삼성전자의 각오가 남다른 배경이기도 하죠.
이 회장은 6G 분야서 '초격차 리더십'을 쥐기 위해 ‘기술 투자’가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새로운 기술 확보에 우리의 생존과 미래가 달려있다. 어려울 때일수록 선제적 연구개발과 흔들림 없는 투자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당부입니다.
최태원, AI메모리 'HBM' 역량 집중…반도체 성장 기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올해 첫 현장은 '반도체'였습니다. 최 회장은 지난 4일 SK하이닉스 본사인 이천캠퍼스를 찾아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메모리의 성장동력과 올해 경영방향을 점검했습니다.
최 회장은 "역사적으로 없었던 최근 시장 상황을 교훈 삼아 골이 깊어지고 주기는 짧아진 사이클의 속도 변화에 맞춰 경영계획을 짜고 비즈니스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특히 AI 반도체 전략에 대해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수요 등 고객 관점에서 투자와 경쟁상황을 이해하고 고민해야 한다"며 글로벌 시장의 이해관계자를 위한 토털 솔루션 접근을 강조했습니다.
SK하이닉스는 AI 인프라 시장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조직개편에서 'AI인프라'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산하에 'HBM 비즈니스' 조직을 새롭게 편제한 것도 이 일환입니다.
HBM은 D램 여러 개를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용량과 처리속도를 높인 반도체입니다. 미국 엔비디아가 생산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에 주로 쓰이는데요. AI 기술 확산으로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늘면서 HBM 수요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HBM 시장 규모는 올해 39억달러에서 2027년 89억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이어 최 회장은 미국 라스베거스에서 열리는 'CES 2024' 개막 첫날 현장을 찾아 AI 트렌드를 살폈습니다. 지난해에 이은 2년 연속으로 CES 참가입니다. 동생인 최재원 SK온 수석부회장과 함께 참여, 타사의 전시관도 유심히 둘러보며 글로벌 업계 현황을 점검했습니다.
정의선 "전기차 주력, 수소 신사업 박차"…정기선 "AI 기반 건설현장 혁신"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지난 3일 기아 오토랜드 광명에서 신년회를 열었습니다. '기아 오토랜드'가 갖는 장소적 의미는 특별합니다. 우선 이곳은 국내 최초 전기차 전용공장입니다. 올 2분기 완공돼 소형 전기차 EV3를 생산할 예정이죠.
현대차그룹이 기아와 관련된 곳에서 신년회를 연 것은 기아를 인수하고 그룹 내 편입한 이후 25년만 처음입니다. 생산 공장에서의 신년회 역시 처음이고요. 그만큼 '전기차'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의미입니다.
이날 정 회장은 "외부 위기를 감지해 기회로 만들기 위해선 '빨리 빨리'가 아닌 '미리 미리' 준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며 "준비돼 있는 사람만이 올바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혁신을 통해 전기차 성장세 둔화 등 자동차 시장을 둘러싼 우려를 씻어내겠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신사업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습니다. 그는 "수소 생태계를 신속히 조성하고 소형 원자로와 청정에너지를 통한 탄소중립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며 "자원 재활용 등 순환 경제 역시 활성화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촌인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은 CES 2024에서 기조연설로 올해 첫 현장경영을 시작했습니다. CES에서 기조연설을 한 것은 국내 기업 가운데 세 번째이며, 비(非)가전 기업 중에서는 처음입니다. 또 이번 CES에서 국내 기업인 중 기조연설 무대에 오른 이는 정 부회장이 유일합니다.
그는 기조연설을 통해 "AI·디지털·로봇 등의 첨단 기술이 더해진 HD현대의 사이트(Xite) 혁신은 건설 현장과 장비의 개선을 넘어 인류가 미래를 건설하는 근원적 방식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이트(Xite)'란 물리적 건설 현장을 뜻하는 'Site'를 확장한 개념입니다. 건설 장비의 무인·자율화, 디지털 트윈, 친환경 및 전동화 등 미래 기술을 활용해 스마트 건설 현장을 구현하겠다는 혁신 의지가 담겼습니다.
이날 정 부회장은 혁신 기술인 'X-와이즈'와 'X-와이즈 사이트'를 첫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X-와이즈'는 장비 운용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해 무인 자율 작업에 이르게 하는 AI 플랫폼입니다.
이 기술이 적용된 건설 장비들을 실시간으로 연결한 지능형 현장 관리 솔루션이 바로 'X-와이즈 사이트'입니다. 향후 HD현대는 모든 산업 솔루션에 X-와이즈를 기반 기술로 적용한다는 방침입니다.
올해도 국내외 경영환경은 안갯속입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고금리 등 복합위기로 인한 불확실성이 지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 총수들은 AI 등 최첨단 기술개발을 통한 전략 강화로 한계를 넘어서겠다는 의지를 보인 건데요.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한 '기술집중' 돌파구. 올 한해 이어질 재계의 광폭 행보를 지켜보시죠.
강민경 (klk707@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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