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이 소복이 쌓인 일본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의 동물원은 펭귄과 북극곰 세상이다. 그런가 하면 삿포로에서는 지역의 상권과 로컬 호텔이 상생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지역 커뮤니티와 호텔리어가 함께 노포(老鋪) 맛집을 소개하는 여행맵을 만들고, 투숙객들을 위한 도심 골목 야경 투어를 진행하는 것이다.
일본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에 있는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일본 동물원 중 최북단에 자리잡은 동물원이다. 추운 날씨 덕분에 펭귄과 북극곰의 자연번식에 성공하기도 했다. 매일 오전 펭귄들이 먹이를 먹거나, 관람객 앞을 행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남극 펭귄, 북극곰을 볼 수 있는 동물원
삿포로에서 버스로 2시간 정도 걸리는 아사히카와(旭川)시에는 아사히야마 동물원이 있다. 일본 동물원 중 최북단에 자리잡고 있어 펭귄, 북극곰 등 극지방에 사는 희귀 동물 자연번식에 성공한 동물원으로 유명하다.
동물원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숲속 침엽수에 흰눈이 소복이 쌓였다. 뽀로로 친구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풍경이다. 1000엔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곳곳에 귀여운 동물들이 가득하다. 현실 세계에서 진짜 동물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다.
뽀로로에 나오는 펭귄이 관람객 앞을 뒤뚱거리며 산책하고, 보노보노를 닮은 바다표범이 물 위에 누워서 헤엄을 친다. 북극곰이 빨간 공을 가지고 놀고, 긴 줄무늬 꼬리를 가진 레서판다가 관람객 머리 위로 놓인 공중 사다리를 뛰어간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동물이 야생에서 생활하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행동전시(行動展示)’를 통해 유명해졌다. 특히 겨울철 펭귄 산책 시간과 사육사가 먹이를 주는 시간만 되면 관광객들이 펭귄관 앞에 장사진을 친다. 펭귄들이 추운 겨울에 지방질이 몸에 쌓여 혈압이 올라가는 등 성인병 증상을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일 30분씩 걷기 운동을 시키기도 한다. 펭귄은 사람들 바로 앞에서 부리로 온몸 구석구석을 긁으며 깃털을 고른다. 사육장으로 안으로 들어가면 대형 유리로 만든 수조 속 펭귄이 관람객의 머리 위로 날아다니기도 한다.
북극곰 관에는 엄마, 아빠 곰과 함께 지난해 7월 태어난 새끼가 있다. 동물원에서 처음으로 자연번식에 성공해 탄생한 북극곰 ‘유메(夢)’다. 공모를 통해 지어진 이름인 ‘유메’는 꿈, 희망, 바람 등의 뜻이라고 한다.
1년여 만에 부쩍 큰 유메는 뽀얀 우윳빛 털에 윤기가 좔좔 흐른다. 몸집은 크지만 어릴 적부터 갖고 놀던 빨간 공을 아직 장난감으로 갖고 노는 모습을 보니 어린 티가 난다.
펭귄, 북극곰, 바다표범에 이어 인기가 높은 동물은 레서판다다. 대나무 잎을 열심히 뜯어먹고 있다가 긴 줄무늬 꼬리를 휘날리며 뛰어다닌다. 그러더니 갑자기 관람객 머리 위 공중 사다리를 지나간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카메라로 찍기에 바쁘다. ‘스노 올빼미’는 몸통이 흰색이라 눈 속에서는 찾기가 어렵다. 노란색 눈과 부리만 보이는데, 얼굴이 로봇처럼 순식간에 180도 회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기념품 상점에서는 방금 보고 온 펭귄, 북극곰, 바다표범, 레서판다 등을 귀여운 캐릭터 상품으로 만들어 팔고 있다. 우리나라 지자체에서도 고추, 낙지, 문어 등 지방 특산품을 캐릭터로 활용하기도 하는데, 너무 크고 흉측해 기괴한 모습일 경우도 많다. 이렇게 구매욕을 자극하는 귀여움을 갖춘 캐릭터로 디자인할 수는 없을까.
●해장 파르페와 양고기 칭기즈칸 요리
“홋카이도에서는 술 마시고 마지막 코스에 해장용으로 파르페를 먹는 문화가 있습니다. 술자리를 마감한다고 해서 ‘시메파페(シメパフェ)’라고 하지요. 유제품과 딸기, 멜론 등 과일이 풍부하게 나는 홋카이도에서는 일찍부터 파르페를 먹는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삿포로에 있는 OMO3호텔에서는 매일 오후 로비에서 지역전문가인 ‘오모레인저’가 진행하는 도심의 맛집과 명소에 대한 강의가 펼쳐진다. 파르페 모양의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이 설치돼 있는 로비에는 지역의 맛집을 소개하는 지도인 ‘고킨조(GO-KINJO)맵’이 한 벽 가득히 걸려 있다. 지도 안에 표시된 QR코드를 찍으면 맛집의 홈페이지로 연결돼 메뉴와 가격, 찾아가는 길을 검색할 수 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오후 9시경부터 오모레인저가 진행하는 도심 야경투어 프로그램도 있다. 그를 따라 삿포로 스스키노 거리를 탐험했다. 소화 29년(1954년)에 창업한 유서 깊은 이자카야(일본식 술집), 홋카이도 목장에서 키운 양으로 칭기즈칸 요리를 해주는 히쓰지, 새벽 2시까지 파르페를 파는 로지우라 카페, 일본의 샐러리맨들이 퇴근 후 자주 찾는 제로번지 지하의 스낵바 등의 코스였다.
이 중에서 가장 신선했던 곳은 새벽까지 문을 여는 ‘해장용 파르페’를 먹을 수 있는 카페들. 이었다. 한국에서는 음주 후 다음 날 아침에 해장을 하지만, 일본에서는 귀가 전 당일 밤에 해장을 한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방법은 라멘이나 우동 같은 국물 음식으로 해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삿포로에서는 저녁 식사나 술자리를 마치고 마지막 코스로 파르페를 먹는 시메파페 문화가 대유행이라고 한다. 시메파페는 마무리를 뜻하는 ‘시메(シメ)’와 ‘파르페(Parfait)’를 합친 말이다. 파르페는 아이스크림 위에 과자, 시럽, 생크립, 과일 등을 올려서 먹는 프랑스식 디저트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유행했던 파르페에는 앙증맞은 장식용 종이우산이 꽂혀 있기도 했다. 삿포로 스스키노역 주변 거리에는 새벽 2시까지 파르페를 판매하는 카페가 20곳 넘게 성업 중이다.
삿포로의 또 다른 인기 골목은 ‘간소 삿포로라멘 요코초’다. 미슐랭가이드에 실릴 만큼 해외에도 잘 알려진 라멘골목이다. 1950년대에 처음 8개의 점포로 시작됐는데, 지금은 17곳으로 늘어나 좁은 골목에 라멘가게가 빽빽하게 마주보고 있다. 호텔 측은 라멘골목과 콜라보해 다양한 맛의 라멘을 시식할 기회를 제공한다. 라멘골목 가게 중 3곳에서 미소(된장), 쇼유(간장), 시오(소금) 라멘 등을 종류별로 하프사이즈로 맛볼 수 있는 식사권이다. 아무리 그릇 크기가 절반이라고 해도 깊이가 있어 양은 상당하다.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집집마다 고기 육수의 진한 맛, 짠맛과 싱거움 정도가 다르고, 면발의 쫄깃함도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비교 체험이었다.
요즘 일본 여행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앱은 네이버 인공지능(AI) 기반 번역기인 ‘파파고’다. 일본어로 된 간판이나 메뉴, 안내문을 사진으로 찍으면, 파파고가 이미지를 인식해 그대로 번역해 주기 때문이다. 나도 이치쿠라 라멘집 벽면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찍어봤더니 육수의 비밀이 써 있었다. 홋카이도에서 많이 나는 연어 등 해산물을 육수로 만들어 국물 맛이 훨씬 담백하다는 내용이었다.
눈 내리는 삿포로 스스키노 밤거리는 노면 전차가 낭만적 감성을 더한다.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진 트램을 일본에서는 ‘시전(市電)’이라고 부른다. 삿포로에서는 오후 4시 반이면 컴컴해지는데, 시내 중심가에 있는 오도리공원 삿포로TV 타워 주변의 화려한 조명 불빛이 야경 투어의 매력을 더한다.
삿포로가 미소 라멘이 유명하다면, 아사히가와의 명물은 쇼유 라멘이다. OMO7 호텔 레스토랑에서는 시그니처 메뉴로 ‘라면 파르페’와 ‘솜사탕 파르페’를 판다. 앙증맞은 구릿빛 철가방 속에 담겨 나온 이 파르페는 디저트로 라면 모양을 그대로 재현한 솜씨가 놀랍다. 노란색으로 실처럼 길게 뽑은 면은 몽블랑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었고, 고명으로 올라간 돼지고기는 초콜릿, 김은 빵으로 만들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