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투 삼달리'가 굳이 제주로 간 이유, 그저 배경이 아니었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JTBC 토일드라마 <웰컴투 삼달리>는 제주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다. 그저 색다른 풍광을 가진 제주를 배경 삼은 정도가 아니라, 제주의 특색과 정서를 담은 이야기가 있는 드라마다. 드라마는 시작부터 숨막히는 도시의 경쟁적인 삶에 지치고 상처입은 조삼달(신혜선)이 고향인 제주로 오게 되는 상황을 해녀들의 이야기에 빗대 그려낸다.
"해녀들을 교육할 때 가장 강조하는 말이 있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라고. 평온해 보이지만 위험천만한 바다 속에서 당신의 숨만큼만 버티라고. 그리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땐 시작했던 물 위로 올라와 숨을 고르라고." 이런 대사를 통해 위험한 줄 모르고 욕심 내며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숨이 막힐 땐 잠시 벗어나 숨을 고르라는 이야기를 이 드라마가 들려줄 거라는 걸 예고한다.
그런데 9회에 들어오면 <웰컴투 삼달리>가 굳이 제주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한 또 다른 이유가 제시된다. 그건 해녀들이었던, 조삼달과 조용필(지창욱)의 엄마들의 이야기다. 공교롭게도 미자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그녀들은 더할 나위 없이 친한 사이였지만, 어느 바람부는 날 조삼달의 엄마인 고미자(김미경) 때문에 무리하게 물질을 하러 들어갔다가 사고를 당한다. 결국 조용필의 엄마 부미자가 사망한 것. 그래서 부미자의 남편이자 조용필의 아빠인 조상태(유오성)는 아들이 조삼달과 만나는 걸 극구 반대한다. 고미자가 너무 미워서 상대하는 것조차 싫어하는 조상태이니 이 해녀들의 비극은 조용필과 조삼달을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만든다.
그런데 이 로미오, 아니 조용필의 마음은 일편단심이다. 애써 도시로 떠나버린 조삼달을 잊지 못하고 7년 동안이나 가슴앓이를 하며, 제주를 떠나지 않고 그곳 기상청에서 일을 했다. 서울로 전출갈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지만 모두 거부했다. 그 이유는 조삼달의 엄마이자 자신 역시 엄마처럼 생각해온 고미자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기상청 CCTV로 물질하는 고미자를 매번 살피며 그 안전을 체크해왔던 것. <웰컴투 삼달리>의 배경이 굳이 제주여야 했던 또다른 이유는 이 작품이 조용필과 조삼달의 이야기와 더불어, 해녀들의 풍진 삶을 '두 미자 이야기'로 그려내려 했기 때문이었다.
제주라는 공간은 해녀로 상징되듯 거칠면서도 따뜻한 정서를 품고 있다. 해녀들이 바당이라 부르는 바다는 그녀들의 삶의 터전이면서 그들을 끝내 데려가버리는 생존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해녀들은 물질을 하다 사고를 당하면 바당 엄마가 데려갔다고 표현한다. 9화 시작과 함께 배경음악으로 흐른 하도 해녀 합창단의 '나는 해녀이다'라는 노래의 가사는 그걸 잘 담아내고 있다. '어느 날 저 바다는 엄마가 되었다네. 내 눈물도 내 웃음도 모두 다 품어줬지. 나는 바다다. 나는 엄마다. 나는 소녀다. 나는 해녀이다.' 아름답지만 위험하고 그래서 처연해지는 제주의 억세고도 아름다운 삶이 이 노래로 표현되어 있다.
이미 제주는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를 통해서도 그 공간이 가진 독특한 정서들을 담아낸 바 있다.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된 이 드라마는 여러 인물들이 회차마다 주인공을 달리해서 소개된다. 그런데 이처럼 저마다의 이웃들이 촘촘하게 연결된 삶의 풍경은 다름 아닌 제주 특유의 '괸당' 문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옆집 숟가락이 몇 짝인지까도 안다는 이 괸당 문화는 그만큼 거친 제주의 환경과 그래서 더더욱 끈끈할 수밖에 없는 제주인들의 삶을 잘 보여준다.
드라마 속 배경으로서 제주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우리들의 블루스>가 있었다면 <웰컴투 삼달리>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고 올해에는 임상춘 작가가 대본을 쓰고 김원석 감독이 연출을 하는 <폭싹 속았수다>가 그 뒤를 이을 것으로 보인다. "폭싹 속았수다"라는 말은 <웰컴투 삼달리>에서 조진달(신동미)의 전남편인 전대영(양경원)이 폭삭 삭았다는 의미로 오해하는 장면에도 등장하는 말로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이다. 수고로운 삶에 이 제주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가 올해는 또 어떤 이야기로 우리를 위로해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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