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 [이윤영 작가의 문해력을 다시 생각하다]
문해력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주변에서 들려옵니다. 부모라면 키우는 아이들의 심각한 문해력을 다루는 뉴스로 이 단어가 익숙하겠지만, 성인에게는 그저 ‘읽고 쓸 줄 알면 되는 능력쯤(?)’으로만 인식되는, 대수롭지 않은 단어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득 어려운 단어가 없는데도 짧은 글도 읽어낼 수 없고, TV나 드라마, 유튜브 영상의 자막도 이해하지 못할 때쯤 되니 책 한권을 완독한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을 더듬게 됩니다. 희미한 기억을 쫓다 보면 불현듯 ‘나의 문해력에도 문제가 있구나!’ 직감합니다.
문해력은 영어로 ‘리터러시’(Literacy)라고 합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일컫습니다. 학문의 장에서는 문해력 대신 ‘문식성’이나 ‘리터러시’라는 용어로 오래전부터 수많은 이들에 의해 다양하게 연구됐습니다. 아예 글자를 읽지 못하는 ‘문맹’(文盲)과 혼동하는 이들도 간혹 있지만, 엄밀히 둘은 다른 영역입니다.
그런데 매체가 많아지고 이전처럼 글로만 정보를 취득하는 시대가 아니게 되니 문해력의 범위는 끝도 없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텍스트(글)를 읽고 이해하는 범위를 넘어 미디어나 영상, 그림, 음악, 키오스크까지 인간이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읽고 이해하고 이를 표현하는 능력까지 문해력의 범주 안에 포함되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감정문해력, 사회문해력 등 이제는 인간의 심리와 사회·문화적인 현상에 이르는 곳까지 문해력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읽는 행위’를 글자(텍스트)에 한정하지 않고 다방면의 영역에 확장한 셈입니다.
읽는다는 것은 경이로운 행위입니다. 단순히 글자를 읽는다는 것만 생각해 봐도 그렇습니다. 글을 읽는 행위는 이를 쓴 작가의 생각, 경험을 탐험하는 일입니다. 작가가 오랜 시간 경험하고 생각한 것을 글의 형태로 남기고 우리는 그것을 읽게 됩니다. 이때 읽는다는 것은 작가와 일종의 교감을 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생각에 공감하는 부분에서는 나와 생각이 일치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반가움을,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에서는 일치하지 않음에 아쉬움을 토로하며 더 이해하고자 적극적으로 애를 씁니다.
최근 낮아지는 문해력을 소셜미디어의 확장과 핸드폰 사용량의 급증, 영상 미디어에 대한 이른 노출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농후합니다. 물론 텍스트를 읽는 즐거움을 찾기 전 다양한 영상이나 매스미디어에 오감을 뺏긴 것은 분명 문해력을 저해하는 아주 큰 요소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는 일상에서 타인의 마음과 생각을 얼마나 읽어내려고 노력했는가입니다.
얼마 전 한 지인이 친하게 지내던 후배와 갑자기 어색해져 회사 내에서 조금 불편한 상황이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어떤 일로 자신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어 애써 자신을 피하는지 알고 싶어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건네 보기도 했지만 오해라며 자리를 또 피했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풀어나가면 사과를 하거나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데 그냥 피하는 후배를 어떻게 대할지 몰라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요즘 이런 고민을 토로하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글쓰기 수업에서도 종종 이런 이야기를 전해오곤 하시는데요. 자기 계발이나 심리학 콘텐츠에선 나와 맞지 않는 이에게 애써 자신을 이해시킬 필요도 없고,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정성과 시간을 쏟아도 시간이 모자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에너지를 빼앗거나 심적 부담을 주는 이들에게까지 친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했다고 해서 그 생각을 잘 들어보지 않은 채 그냥 피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오히려 타인을 이해하고 읽는 마음 자체를 차단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문해력의 기본이자 시작은 타인의 마음과 감정을 읽는 ‘공감’ 능력에서 시작됩니다. 때로는 나와 생각과 결이 다를지라도 그 사람의 입장에서 한번쯤 그의 생각을 읽어보는 태도가 진짜 문해력을 시작하는 첫걸음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윤영 작가/ 문해력 인문학 연구가, 도서 ‘불안 대신 인문학을 선택했습니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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