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기자의 시선] '홍보맨'이 될 순 없다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2024. 1. 13.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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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충주시 유튜브 '충TV' 갈무리

지역신문사에서 유튜브를 운영하다 보면 종종 듣는 말이 있다.

“김 기자, 재밌게 좀 해봐.”

이세돌 9단이 해준다고 한들 달갑지 않은 게 훈수다. 그래도 뭐 이까진 '끄덕끄덕'으로 응수한다. 그런데 뒤에 따라붙는 말에는 표정 관리가 어려워진다.

“충주시 홍보맨처럼 말이야!”(내 귀에는 “드리블 좀 잘 해 봐 메시처럼”이라고 들린다.)

최근 충주시 유튜브 채널 담당자인 '홍보맨' 김선태 주무관이 9급에서 6급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고 한다. 김 주무관 혼자 기획, 촬영, 편집까지 도맡아서 구독자 50만 명을 모았다고 하니 눈부신 성과다. 그 덕에 당분간 '메시처럼 축구해봐'라는 말을 좀 자주 들을 것 같다.

충주시 홍보맨 콘텐츠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투입 비용이 적고, 웃기며, 공익성이 한 스푼은 첨가돼 있다. 일례로 한 달전 충주시 채널에 올라온 '홍보맨 슬릭백' 영상에는 김선태 주무관이 홀로 등장한다. 그는 슬릭백(공중부양) 스텝을 밟으며 화면 왼쪽으로 이동하다가 카메라 앵글에서 사라진다. 뒤늦게 카메라 앵글을 김 주문관 쪽으로 돌려보면 그는 온데간데없다. 뚜껑 열린 맨홀만 덩그러니 보일 뿐이다. 김 주무관이 맨홀 안으로 빠졌음을 암시한다. 영상은 충주시 상수도 공사 기간을 안내하면서 끝난다. 이 영상 누적 조회수가 300만 회를 돌파했다.

기자들도 유튜브에서만큼은 홍보맨처럼 '일단 웃겨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더군다나 지역신문에서는 그 인식이 더 강한 것 같다. 영상에 큰 비용을 들일 형편이 안 되다 보니 홍보맨 같은 사람이 한 명이 먼지 쌓인 유튜브 채널을 살려내주길 바란다. 한 번쯤은 홍보맨처럼 'B급 감성'을 버무린 영상 콘텐츠에 실제로 도전해 보는 것 같다. 그리고 번번이 깨진다.

메시가 인간계를 뛰어넘는 '신계'로 불리 듯, 김선태는 김선태 그 자체다. 김 주무관은 본래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에 익숙한 사람이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밈도 빠르게 습득하는 편이라고 한다. 반면, 기자들은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라서 외향적이고 통통 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경험상 상당수는 진중한 편이다. 또 시사이슈에는 빠삭하지만 밈이나 유행에는 둔감하기도 하다. 이런 기자들은 유튜브를 하겠다고 벼락치기로 밈을 공부해서 써먹을려고 하니 잘될 리가 없다. 또 저널리즘을 추구해야 하는 언론에게 '웃기기'는 위험한 외줄타기다. 조금만 삐끗하면 '나락'을 가는 건 한 순간이다.

웃겨야 한다는 강박만 내려놓으면 또다른 길이 보인다. 대표적으로는 영상으로 구성하는 '설명 보도'가 있다. 설명 보도는 기자가 복잡다단한 사건을 정리해서 그 맥락을 독자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는 기사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영상으로 구현해내는 유튜브 채널이 미국에는 꽤 있다.

▲VOX MEDIA 영상의 한 장면.

그중 원조격이 'VOX'다. 미국 뉴미디어계의 선두주자인 VOX MEDIA에서 운영한다. VOX는 'explain(설명하다)'을 본인들을 상징하는 단어로 내걸 정도로 이 분야에 진심이다. 한국에 가장 많이 알려진 영상은 The big lesson from South Korea's coronavirus response(한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에서 얻는 큰 교훈)이 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영상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그래프와 지도, 그리고 전문가 인터뷰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 각국의 코로나 확산세와 대응, 그리고 한국의 코로나 대응 타임라인 등을 글로만 봤으면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 됐을 텐데 영상으로 아주 쉽게 설명해준다.

▲VOX MEDIA 영상 화면 갈무리.

VOX 출신인 Johnny Harris의 채널도 눈에 띈다. Johnny Harris는 주로 지정학적 이슈를 소재로 삼는다. 본인 이름을 그대로 채널명으로 쓰는 그는 영상에 매번 스토리텔러로서 본인이 직접 등장한다. 때때로 카메라를 들고 브이로그 형식으로 촬영하기도 한다. 기자 브랜드를 구축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 참고할 만하다. 우선 가볍게 볼만한 영상으로 How SUBWAY is Taking Over Korea(서브웨이가 한국을 접수한 방법)을 추천한다. 한국 드라마에 유독 미국 샌드위치 브랜드인 '서브웨이'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영상인데, 서브웨이를 미끼 삼아서 한국 드라마에 간접광고(PPL)가 많은 이유를 설명한다.

한국에서는 비슷한 결의 유튜브 채널로 '이오 IO'와 '용두사미'가 있다. 두 채널은 시사를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과 그래프와 지도를 보여주는 기술적인 부분이 VOX와 비슷하다. '이오 IO'는 '한국인은 왜 삼겹살에 탐닉할까?' '한국인은 왜 치킨과 사랑에 빠졌을까?'와 같은 음식의 역사를 주요 콘텐츠로 다룬다. '용두사미'는 '미국만 고속열차가 없는 이유' '스위스가 강대국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낸 비결' 등 지정학적인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콘텐츠를 만든다. VOX 감성을 한국식으로 잘 풀어낸 콘텐츠들이라서 신문사에서도 아이디어를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VOX와 Johnny Harris를 필두로 '설명 보도'를 추구하는 콘텐츠가 성공하는 사례를 보면, 대중은 복잡다단한 사회 문제 속에서 그 맥락을 제대로 알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를 해체한 후 중요한 것만 쏙쏙 뽑아서 정리해주는 기술은 다름아닌 언론의 전매특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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