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 곧 죽습니다' 김지훈 "각인된 악인 이미지, 언젠가 깨버리는 재미 있지 않을까요?"[TEN인터뷰]
[텐아시아=이하늘 기자]
빌런(Villain)이 이렇게 섹시해도 되는 걸까? 근래 들어 매력적인 소위 악인들이 스크린 위에 그려지는 일이 많아졌다지만, 사실 악한 역할을 매력적으로 표현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누가 봐도 나쁜 짓을 일삼고 단편적으로 그려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여기 '섹시 빌런'이라는 수식어와 걸맞는 배우가 있다. tvN 드라마 '악의 꽃'(2020)의 백희성을 시작으로, 넷플릭스 영화 '발레리나'(2023), 티빙 '이재, 곧 죽습니다'(2023)까지. 배우 김지훈은 '이재, 곧 죽습니다'에서 싸이코패스이자 뭐하나 빠질 것 없는 태강그룹의 첫째 아들이자 싸이코패스 박태우 역을 맡아 이야기를 팽팽하게 만든다.또한, 12번의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최이재(서인국)과 지독할 만큼 얽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에피소드 4화에서는 최이재의 7번째 삶이자 죽음인 장건우(이도현)와 최이재의 오랜 여자친구였던 이지수(고윤정)를 향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차량을 돌진하는 섬뜩한 장면을 그려내 입을 틀어막게 만들기도 했다. 박태우가 악행을 저지르는 이유나 목적이 많이 드러나지 않기에 자칫하면 이야기 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들지 않고 붕 뜨는 효과를 줄 수도 있지만, 김지훈은 자신의 템포와 분위기로 캐릭터를 융화시킨다.
최근 들어 싸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등의 악역을 연속해서 맡아오며 이미지가 고착화될까에 대한 두려움 대신 오히려 "이미지가 각인이 되면 깨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라고 김지훈은 자신의 신념을 말하기도 했다. 데뷔 22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역할이나 캐릭터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갈증'과 '선입견'을 깨부수려고 노력하는 김지훈의 도전이 멋있게 느껴지는 이유다.
원작인 웹툰 '이제, 곧 죽습니다'의 오리지널 캐릭터가 아닌 장건우(이도현)과 이지수(고윤정)를 차로 치어서 죽인 신원 미상의 금수저 운전자에게 이름과 서사를 추가한 인물인 박태우 역을 연기한 김지훈. 웹툰에서는 표현되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하며 김지훈은 "온전히 대본을 통해서 이 인물을 생각하고 만들기 위해서 대본에만 집중했다. 박태우라는 인물은 서사가 야박하게 주어졌다.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실체가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를 찾으려고 굉장히 노력을 많이 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외모면 외모, 재산이면 재산, 지위면 지위.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박태수는 무언가 내적으로 공허하고 결핍된 듯한 느낌의 인물이다. 텅 비어있던 눈빛은 인간이라는 사냥감을 눈앞에 두었을 때, 반짝이고 무엇보다 살의는 박태수의 생기로 이어진다.
일상생활에서는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 지능적인 캐릭터인 박태수를 어떤 식으로 정의하고 접근했느냐는 물음에 김지훈은 "(박태수가) 어릴 때부터 그랬다는 이야기가 주어졌고, 빠르게 흘러가지 않나. 아버지에게 사랑을 못 받을뿐더러, 동생만 편애하는 상황이다. 사실 인물에 대한 서사가 극 중에서 다 표현될만한 신도 없었고 여유도 없었다. 그런 성향이 있는데, 삐뚤어진 거다. 우연히 차로 뛰어든 사람이 자신을 보고 애원하는 것을 보고 이상한 희열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라며 캐릭터에 대해 고민한 지점을 털어놨다.
tvN 드라마 '악의 꽃'(2020)의 백희성, 넷플릭스 영화 '발레리나'(2023)의 최프로, 티빙 '이재, 곧 죽습니다'(2023)로 소위 악역이자 빌런을 연속적으로 연기하면서 비슷한 인상을 줄 수도 있지만, 박태우는 '섹시 빌런'이라는 수식이 어울릴 정도로 색다른 느낌을 준다. '섹시 빌런'이라는 수식어에 대해 "너무 기분 좋다. 진짜 나쁜 놈이고 나쁜 짓을 많이 해서 사람들이 당연히 싫어하지 않나. 아주 큰 핸디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고 기분이 좋은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최이재가 12번의 삶과 죽음을 반복해야 하는 만큼,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이 많이 등장한다. 박태우는 최이재가 12번의 형벌로 만나는 인물들과 접촉한 인물이기도 하다. 서인국, 박소담, 고윤정, 오정세, 이도현, 김재욱 등의 배우와 짧지만, 같이 만나서 연기한 소감에 대해 김지훈은 "박소담, 오정세, 이도현 배우 등은 촬영이 10분 정도였다. 멀리서 보고 있다던가. 이 정도였다. 근데 서인국, 고윤정 씨는 초반 리딩 때부터 같이 하면서 서로 으쌰으쌰 잘하자는 파이팅을 가졌던 것도 있었다. 특히, 김재욱 씨는 원래도 친분이 있었다. 정규철이라는 싸이코패스 캐릭터를 보고, 이 드라마에서 '악의 꽃' 백희성(김지훈)과 '보이스' 모태구(김재욱)가 붙으면 대박이겠다고 생각했다"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의 김지훈에게 빌런, 악역 이미지는 쉬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전작 MBC '얼마나 좋길래'(2006), tvN '이웃집 꽃미남'(2013), SBS '결혼의 여신'(2013), MBC '왔다! 장보리'(2014) 등을 통해 주말극에 모습을 비췄던 김지훈은 이른바 '주말극 황태자'라는 칭호가 익숙할 정도로 젠틀하고 선한 역을 많이 맡아왔다. 기존에 유지해온 연기의 방향성을 전환하며 김지훈은 "기본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던 나에 대한 선입견을 나도 잘 알고 있다. (악역이) 그런 선입견을 깰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악역을 관심 있게 보신 분들도 계시지만, 완전히 다 깬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기존에 익숙하던 캐릭터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방향 전환을 한 것에 대해서 '기쁜 일'이라고도 언급하며 "라디오에서도 이야기했는데, 필모를 보니까 거의 10년 걸렸더라. '왔다! 장보리'가 끝나면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시도를 해왔다. 그게 한방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꺾이고 좌절하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기회를 찾아서 작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 과정이 지금까지 10년까지 걸렸더라"라고 회상했다.
최근 들어 싸이코패스, 소시오패스 같은 역할들이 연속적으로 맡아온 것에 대해 이미지가 굳어지지 않을까 우려는 없느냐는 물음에 "그런 걱정을 하시는 분들도 당연히 계신다. 10년 전에 나라면 아예 상상하지 못했던 이미지이지 않나. 한번 그것을 극복해낸 경험이 있기에 나한테는 그것이 문제 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지가 각인이 되면 깨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다음 작품을 뭘 할지 나도 모른다. 나한테 주어지는 대본에 대해서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을 고르다 보니, 결과적으로 악역을 여러 번 하게 된 것 같다. 다음에도 매력적인 악역이라고 하면 주저 없이 악역을 할 것 같다"라고 자신의 연기 철학을 밝혔다.
2002년 KBS 드라마 '러빙유'로 데뷔해 어느덧 22년 차를 맞이한 김지훈은 꾸준히 연기를 할 수 있는 원동력에 대해 담담하고도 차분하게 말했다. "계속 갈증을 느끼게 되니까. 결과적으로는 좋은 모습으로 보여드릴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 같아요. 늘 예전부터도 주말 드라마의 주인공을 했지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픈 갈증이 있었어요. 계속 자신을 채찍질하게 되는 느낌이에요. 이제 조금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게 된 것 같아요(웃음)"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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