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속 세상읽기 - '빨리감기'와 'n차 인생'
유튜브에 올라오는 영상 90%는 조회수가 1,000회도 안됩니다.
그 치열한 경쟁에서 인기를 끄는 동영상 속에는 뭔가 비밀이 있겠죠.
또, 인기 동영상이 말해주는 우리 사회 트렌드가 있을 겁니다.
저와 함께 트렌드를 읽어보시죠.
이번 주 2024년 1월 10일 유튜브 인기급상승 동영상 1위와 2위는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 줘' 3회, 4회 요약본이 각각 이름을 올렸습니다.
TV 드라마 시청률이 낮건 높건 유튜브에서는 드라마를 짧게 요약한 영상이 자주 인기를 끕니다. '내 남편과 결혼해 줘' 영상도 1시간이 넘는 드라마를 25분으로 요약해 놨습니다.
스포츠 하이라이트는 축구나 야구 주요 득점 장면만 모아놨다면 드라마 하이라이트 영상은 쭉 보면 해당 드라마 스토리를 알 수 있습니다.
앞 광고에 중간 광고까지 보면서 1시간이 넘는 드라마를 본방사수하는 사람들에 비해 1/4 시간만 들이면 드라마 스토리 진행 상황을 알 수 있으니 요즘 말로 시간대 성과 비율 이른바 ‘시성비’가 좋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유튜브 요약 영상으로 스토리를 파악하고 끝내면 작품 감상이 아니라 컨텐츠 소비일 뿐이라고 좋지 않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들여 작품을 감상하기 보다는 전체 줄거리만 파악하는 요약본 감상은 대세가 된 상황인데요.
심지어 요약본도 그냥 감상하지 않고 1.5배속, 2배속으로 빨리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에서 조사한 결과 응답자 10명 중 7명(69.9%)이 영상 콘텐츠를 빨리 감기로 본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젊을 수록 빨리 감기로 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20대 38.5%, 30대 23.5%, 40대 17.6%, 50대 13.8%)
이런 현상이 '빨리빨리'를 강조하는 한국만의 문화일까요? 2022년 일본 사전편찬자들이 뽑은 올해 신조어 1위는 '타이파 (タイパ)'였습니다. 시간대비 퍼포먼스. 즉, 타임 퍼포먼스 약자인데요. 앞에서 말씀 드린 시간대 성과 비율 '시성비'와 같은 말입니다.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처럼 학생 절반이 온라인 강의를 배속 시청하고 있고, 뜨거운 물 붓고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워 0초 라면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또 책 1권을 10분 안에 읽을 수 있도록 요약해서 제공하는 플라이어(Flier)라는 앱도 인기입니다.
트렌드 분석가들은 이런 현상을 대중이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작품이라기 보다는 스토리 진행 과정과 결과에 대한 정보로 인식한다는 소리죠.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유튜브, 넷플릭스 등을 통해 언제든 수천 편 영상물을 볼 수 있게 된 덕분(?) 탓(!)이겠죠. '대량 소비' 여건이 마련됐으니 나의 한정된 시간을 감상을 위해 쓰기보다는'정보' 습득으로 생각해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편이 영리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람이 집중하는 시간 자체가 줄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 캐나다에서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2000년에는 인간 '주의지속시간'이 12초였지만,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인 2013년에는 8초로 대폭 줄었다고 합니다.
미디어 소비, 소셜미디어 사용, 멀티스크린 등이 이런 주의 지속 시간에 영향을 준 것으로 조사됐는데, 나이가 많아도 기술과 미디어 활용량이 높은 이들은 주의 지속 시간이 더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는게 연구진 설명입니다.
나이와 관계 없이 볼 것 많고 이것 저것 클릭해 봐야 하는 사람은 특정 사안에 오래 집중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인데요.
10년 전 연구 결과이니 아마 지금은 이보다 더 짧아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과정보다 빠른 결과를 원하는 트렌드는 사실 많은 영화나 드라마 내용에도 반영됩니다.
오늘 이야기를 꺼낸 동영상 '내 남편과 결혼해 줘' 뿐 아니라 요즘 많은 드라마나 영화는 이른바 회귀물입니다.
죽거나 기절했다가 깨어나보니 이미 내가 각종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 지 아는 상황으로 되돌아 간 경우죠. '재벌집 막내아들'이나 MBN 드라마 '완벽한 결혼의 정석' 등이 이런 회귀물 드라마 입니다.
살면서 억울하게 모함 당하고 불행한 처지에 있다가 다시 깨어나니 모든 결과를 아는 전지전능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되는 설정이 유행입니다. 시간 흐름이 뒤틀리는 현상은 드라마나 영화에 주요 소재로 사용돼 왔습니다.
과거로 돌아가거나 미래로 가거나 혹은 같은 시간이 반복되는 내용을 '타입슬립' 장르라고 합니다. 과거 가장 유행했던 타임슬립 물은 '타임루프'라고 해서 주인공이 끊임 없이 같은 시간을 반복해서 사는 겁니다.
30년 전인 1993년 작품 '사랑의 블랙홀'이 바로 이런 작품의 신호탄이었습니다. 하루가 끊임 없이 반복되니 미래가 없고 지루하고 뻔한 인생이라 주인공은 여러 방법으로 죽으려고 시도합니다.
하지만, 어김없이 똑같은 하루를 다시 시작하게 되죠. 똑같은 하루지만 매일 피아노 연습도 하고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 인생도 귀기울여 들어주면서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해 갑니다.
'타임슬립'물도 예전에는 주인공이 결과를 이뤄내는 과정에 무게를 뒀다면, 요즘은 결과물을 갖고 대응하는 스토리에 중점을 두는 것이 큰 변화입니다.
한동안 '이생망'이라는 말이 유행했었죠. 이번 생은 망했어라는 말인데, 무슨 노력을 해도 어짜피 안 된다는 자조 섞인 말입니다.
2~30년 전에는 열심히 직장 다니면 승진도 적당히 되고 청약통장에 돈 넣고 은행 대출 받으면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는 과정이 존재할 수 있는 시대라면 요즘은 그런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어 버린 그리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 자체가 '고통'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서 살짝 아쉽기도 합니다.
아쉬움은 아쉬움일 뿐 바뀐 세상에 적응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들 숙명 아닐까요.
아래는 MBN 인기 드라마였던 ‘완벽한 결혼의 정석’을 3시간으로 요약한 하이라이트 동영상입니다. 요약본과 회귀물을 즐기신다면 한 번 클릭해 보시죠.
(완벽한 결혼의 정석 몰아보기 - https://www.youtube.com/watch?v=MgWtj55Rv6E&t=44s)
김성철 기자 fola5@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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