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간부 없는 여성사업장…직급도 소득도 제자리

한겨레 2024. 1. 1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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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박수정의 오늘, 여성노동자
금융기업 사무직
게티이미지뱅크

비수도권 대학 인문계열 전공자였던 연우(가명)씨는 대학 4학년 재학 중에 취업했다. 상경계열 복수전공을 살려 서울 소재 중소 금융기업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석달 과정을 마칠 무렵 회사에서 취업 제안을 받았다. 하루에도 몇백장씩 팩스로 들어오는 서류를 일일이 검토·처리·통보하는 일이 벅차 6개월을 못 넘기고 그만두는 신입이 많았다는데, 연우씨는 5년을 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패기만만했어요. 아주 열심히 일했어요. 나는 일할 때 요령 피우고 노는 게 싫거든요. 업무를 처리하려면 관련 약관을 다 알아야 해서, 집에 책 싸들고 다니면서 공부했어요. 모르는 건 선임들한테 꼭 물었어요. 질문하기를 어려워해 안 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꾀부리지 않고 성실히 하니까 남보다 일을 빨리 익혔어요. 그런데 운도 좋았어요. 다른 분들은 삼십대인데, 나는 스물세살이었잖아요. 막냇동생 같은 애가 ‘네! 네!’ 하면서 애쓰니까 다들 예뻐해 줬어요. 안 그만둘 애 같으니까 되게 잘해줬거든요.”

9시 이전에, 점심 굶고 일해야 하는

들고 나는 사람이 많아도 회사 규모는 날로 커져 200여명이 근무했다. 기본급은 최저임금이었지만, 회사 수익에 따라 두달에 한번씩 상여금이 나와 월평균 300만원 후반대의 임금을 받았다. 직원 복지도 다양했다. 그런데 여성이 대부분인 직장에 여성 간부가 없었다. 팀장부터 대표까지 모두 남성이었다. 여성은 파트장이 한둘이었다. 40~50대 여성 직원도 드물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한 여성들이 아이 돌봄으로 퇴사하는 일이 잦았다. 올라갈 자리가 있더라면….

“원래 회사가 다니기 힘들면 사람들끼리 더 으쌰으쌰 하잖아요. 사람이 좋아 오래 일하고 싶은 직장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경영진이 바뀌면서 상여를 줄이고 복지도 없앤대요. 기본급으로 부려먹겠다는 거죠. 사람 중요한 줄 모르고, 직원을 부품처럼 쓰겠다는 경영진의 태도와 행보가 싫었어요. 그전 경영진은 사람을 달래가며 안 그러는 티라도 냈는데요. 28살에 퇴사했어요.”

연우씨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단번에 붙겠다는 욕심은 없었다. 2~3년을 예상했다. 안 돼도 실망하지 않고 접겠다 마음먹었다. 그래봤자 서른 초반일 터.

“나는 이렇게 막 휘둘리는 개미 같은 사무원 인생이, 회사에 휘둘려 내 인생이 불안해지는 게 싫었어요. 다른 중소기업도 비슷할 것 같았어요. 좀 더 전문적이고 안정적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죠. 더 좋은 회사, 예를 들어 대기업에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스물세살에 첫 직장을 고민할 때도 대기업은 아예 포기했어요. 비수도권 대학 출신에 스스로 한계를 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어땠다고 그런 식으로 한계를 두고 시도하지 않은 일들이 아쉽죠.”

이제 서른한살이 된 연우씨는 두번째 중소 금융기업에서 일한다. 여기에서도 공부할 게 많아 면가방에 두꺼운 자료집을 한가득 담아 다닌다. 첫 직장과 마찬가지로 여성사업장인데 팀장 이상 간부는 모두 남성이다.

“너무 자연스럽게 팀장이 다 남자여서 놀라웠어요. 모든 직원을 경력직으로 뽑았는데도 여자 팀장이 한 명도 없어요. 과장이 몇 있지만, 여기선 의미 없는 직책이에요.”

기본급은 첫 직장처럼 최저임금인데, 개인 실적에 따라 상여금이 붙는 점이 달라 일의 압박이 더 크단다. 사무실에는 아침 9시 이전에 출근해서 일하는, 점심을 굶고 일하는, 저녁 6시 퇴근 시간 뒤에도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자의만은 아니다. 일이 들어오면 사흘 안에 처리해야 해서다.

“여기는 완전 실적제예요. 이 업계가 일은 많고 사람이 없어요. ‘진상손님’이 많으니까 힘들어서 이직률이 높거든요. 그래도 일이 익숙해지면 기본급 포함 300만~400만원 받고, 일이 밀리는 연말에는 500만원도 버니까 하죠. 돈이 오르면 그만큼 내가 일을 많이 한다는 건데, 중소 사무직에서 그리 받기가 쉽지 않잖아요.”

당장은 많이 버는 듯하지만, 실은 함정이 있다. 연우씨는 실적제도의 “단점”을 발견했다.

“평생 이만큼밖에 못 받아요. 계약 연봉이 낮으니까요. 사람이 처리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다른 회사는 연차가 쌓이고 승진하면 기본급이 높아져요. 어느 정도 보장된 월급이 나이 들수록 점점 올라가는데, 실적제는 안 그러죠. 내가 시간 안에 처리할 수 있는 최대치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많이 받아도 평생 그 월급을 받겠죠. 아니 나이 들수록 줄어들 수 있죠. 남들처럼 연봉이 7천, 8천 이렇게는 못 가겠구나? 어릴 땐 몰랐는데 나이를 먹으니까 깨달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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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잘살기보다 ‘잘 살기’ 위해서

연우씨는 지난해 봄에 공무원 시험공부를 정리했다. 문제 하나에 당락이 결정되다 보니, 기출문제 하나에도 예상치 못한 자괴감과 자책감이 몰려왔다. 지금, 만원 전철에 끼여 출퇴근하는 하루하루가 다시 기쁘다. 20대를 지나온 이제는 ‘잘사는’ 일을 넘어 ‘잘 사는’ 일을 생각한다는데, 지난해부터 친구들과 달마다 하는 책 읽기 모임도 그 실천이겠다. 올해는 종이신문을 구독해 혼자 읽어보겠단다. 그리고 또 하나.

“지난해 10월부터 일기 쓰기에 빠졌어요. 그냥 오늘 뭐 먹었다, 종일 누워 있었다, 내일 이거 해야 하는데 귀찮다, 별말 안 쓰거든요. 밤에 잔잔한 노래 하나 틀어놓고 공책에 손으로 쓰는데 그 시간이 참 좋아요. 왜 좋을까 생각해봤어요. 일기를 쓰는 시간이 나를 가만히 되돌아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어요. 내가 왜 지금 짜증이 나는지, 뭐가 귀찮은지, 왜 내가 그러는지 평소에는 생각해볼 시간이 없었는데 일기 쓰는 그 30분, 1시간 동안 나를 보는 게 큰 위로가 되더라고요. 꼭 힘든 상황이 아닐지라도 그냥 하루에 한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진짜 힐링이에요. 좋아서 친구들한테도 전파했는데, 스스로 해봐야 느낄 수 있죠. 노동자분들 다 힘드시잖아요. 해보면 좋겠어요.”

2023년 마지막 날에 연우씨는 볼펜 자국이 남도록 꾹꾹 눌러가며 일기를 썼다.

“올해 초-여름까지 나는 너무나 힘들었다. 매일 매시간 매분 죽음을 생각했다. 충동에 휩싸여 일상생활이 어려웠다. 내가 너무 싫었지만 결국 공부를 포기했다. 행복했고 동시에 고민이 많았다. 수많은 생각 중에 나는 결국 어려운 일이 아닌 쉬운 길을 선택했다. 내가 미웠지만 그런 것이 나라는 것을 인정하며 정신승리했다. 내 곁엔 좋은 사람들이 많다. 알았던 사실이지만 새삼스러웠다.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좋은 사람들 덕에 마음의 상처를 회복했다. 흉터는 남았지만 이제 아프지는 않다. 다시 한번, 늘 그렇듯, 흘러가듯 살아야겠다. 내년엔 꼭 건강한 몸을 만들자. 꼭….”

르포 작가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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