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불면 과메기…기름기 오른 살점 찢어 금복주 한잔 [ESC]

한겨레 2024. 1. 1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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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안주가 뭐라고 과메기
과메기 무침. 박찬일 제공

경북 포항이며 구룡포 취재를 많이 다녔다. 해녀들의 음식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였다. 해녀로는 벌이가 부족하니 부업을 하는 분들도 많다. 잡은 해물로 식당을 하기도 하고, 더러는 호미곶에 몰리는 관광객에게 미역이나 과메기를 판다.

과메기는 이제 구룡포의 대표 음식이 됐다. 포항 남구의 읍인 구룡포는 어부들과 해녀들이 몰려 사는 동네다. 잡어를 넣고 얼큰하게 끓이는 모리국수며 꽁치나 고등어를 으깨어 만드는 육개장 같은 별난 음식이 있다. 해녀들이 일하다가 추위를 이기기 위해 먹던 미역 수제비나 국수(미역깔때기라 부른다)도 이 동네의 숨겨진 별미다.

구룡포 바다는 거칠다. 언젠가 바닷길을 걷다가 해녀들의 작업을 보았다. 혼신의 숨을 뿜어내며, 해물을 건지는 그들이 잠시 쉬며 주섬주섬 먹는 음식은 빵이었다. 구멍가게에서 파는 크림빵 같은 것들.

잠수병을 얻어 이제 물질도 힘들다는 한 해녀를 알게 됐다. 그이의 남편은 어부로 일하다가 허리를 다쳤다. 두 양반이 과메기를 꾸려 팔며 생계를 꾸린다. 그분들 이야기를 몇 줄 기사로 썼다. 올겨울, 뜻밖에도 과메기 상자가 왔다. 그분들이 보낸 것이었다. 몇 줄 기삿값일까. 미안한 일이다. 괜히 마음 밑에서 잔잔하게 파도가 친다.

1990년대 미식가의 음식

과메기는 주로 꽁치와 청어로 만든다. ‘과메기’라고 하면 눈에 새끼줄을 끼워 말릴 수 있는 생선의 통칭이었다. 동해안의 포항·경주 일대에서 성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게 청어였다. 기름기가 바짝 올라 반들거리고 씹으면 육즙이 달게 배어 나오는. 그 무렵 과메기가 그 동네 밖으로 나왔다. 신문기사에도 실리고, 입으로도 옮겨졌다. 과메기를 알아야 미식가가 되었다. 서울에서 그 지방 음식을 파는 식당이 슬슬 생겨난 것이 1990년대다. 대호황기. 강원도 속초, 경북 울진부터 쭉 내려와 구룡포까지. 골뱅이와 물가자미회가 별미였다. 물가자미식해며 과메기도 서울사람의 입맛을 잡았다. 나도 그때 과메기를 알았다. 서울 중구 다동의 한 가게에서는 뿌연 담배 연기 가득한 홀에 앉아서 과메기를 주문하면 ‘어머니’가 옆에 서서 죽죽 껍질을 벗기고 손으로 찢어주었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그 맛은 충격이었다. 그것이 바로 생선으로 만드는 프로슈토(돼지고기를 말리거나 저온 조리해 만든 이탈리아의 햄)이고 하몽(돼지고기를 숙성시킨 스페인의 햄)이었다. 알고 보면 다 같은 자연의 신비를 상에 올리는 것이었다. 유럽이나 한국이나.

청어가 한동안 잡히지 않으면서 꽁치가 과메기의 대세가 되었다.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생선의 호황과 불황은 교대로 그 역사가 길다. 오징어·명태·꽁치·청어·도루묵…. 사라지거나 귀해진 동해안 흔한 생선의 목록이다. 오징어가 너무 잡혀서 판로를 잡아달라고 어부들의 아내가 속초시청에 가서 데모를 한 역사도 있다. 요새는 한 마리에 1만원씩 하는 오징어가 그 옛날엔 양동이 하나에 1만원이었다. 회를 시키면 서비스로 산오징어회가 나오던 시절. 도루묵도 기본이 양동이째로 팔리던. 올해 도루묵 10마리가 2만원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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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메기. 게티이미지뱅크

요즘 대세는 ‘꽁치 배지기’

과메기로 다시. 과메기는 초겨울부터 나온다. 어차피 수입 꽁치이니 날씨가 쌀쌀해지면 판다. 엄밀히 말해서 한 해 내내 먹을 수도 있다. 만드는 일이나 보관하는 기술이나 다 좋아졌다. 그래도 요즘처럼 추워야 제맛이고, 주문도 나온다. 요새 과메기 대세는 꽁치에 배지기다. 꽁치 배를 갈라 내장을 훑어낸 후 냉풍으로 신속하게 말려내는 게 배지기 과메기다. 요새 ‘고객’들의 입맛에도 편리하다. 간결하고 예쁜 맛이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보통 껍질까지 삭삭 벗겨내고 마늘·고추에 배추·미역까지 한 보따리 싸서 보낸다. 요즘은 청어도 꽤 잡혀서 ‘전통의 맛’을 볼 수 있다. 한겨울, 혹한이 오면 노천 덕장에서 통마리로 말릴 수도 있다. 줄줄이 엮어 말린다고 엮어마리라고도 한다. 내장째 말리는데, 한겨울 차가운 바닷바람이 불어 얼었다 녹았다 하며 발효의 맛이 더해진다. 살에도 내장 취가 배어들어 묘한 맛을 낸다. ‘선수’들은 이걸 좋아한다. 프로슈토·하몽 같은 유럽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미식가들의 정점이 쿨라텔로이듯이. 쿨라텔로는 돼지의 정강이살을 오줌보에 넣어 발효시키는 이탈리아의 햄인데, 나방이 알을 낳아 발효를 더 하는 기묘한 기술을 쓴다. 무엇이든 맛의 절정에 가려면 이처럼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드는 경우가 많다.

누릿하고 꼬릿한 내장의 냄새와 맛이 배어든 청어나 꽁치의 살점을 북 찢어 소주 한 잔을 더해보라. 기왕 맛을 내려면 양념을 해야 한다. 먹다 남은 과메기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다. 겨울에 맛이 좋은 쪽파를 송송 썰고 고춧가루와 마늘, 진간장을 넣어 양념한다. 한국식의 ‘갖은양념’이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도 기본 레시피를 알려드린다. 내가 만든 방법이니까.

과메기 무침 요리법과메기 2마리 껍질 벗겨 2㎝ 길이로 썰기
쪽파 10줄기 정도
다진 마늘 1큰술
고춧가루 2큰술
진간장 2큰술
설탕 1작은술
물엿 1작은술
참기름 1큰술
통깨 1작은술
맛술 1작은 술
생강 아주 조금(취향 따라)모든 재료를 섞어 소스를 만들고, 과메기를 넣어 무친다. 바로 먹어도 맛있고, 한 달 이상 냉장 숙성도 가능하다. 소주 안주로 좋다. 기왕이면 과메기의 지역 소주인 금복주를 구해본다.

글·사진 박찬일 요리사 

익명과 혼술의 조합을 실천하며 음주 생활을 한다. 전국 왕대폿집 할매들 얘기를 듣는 중. 사라지는 것들에 매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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