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어둠을 마주하는 동경의 세계, ‘나’의 유토피아 [박미란의 속닥이는 그림들]

2024. 1. 1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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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규, 낯설고 신비한 냉소적 유토피아
‘가고 싶은데 갈 수 없는’ 가상의 공간
화폭 속 각각의 존재 작가 자신 투영
‘구’ 등 가시화된 강박에 끝없이 투항
처절한 생존 본능과 자기혐오 읊조려
매순간 우러나는 불안 삶의 동력으로

짙은 초록의 침엽수가 빽빽이 자라난 낯선 이국의 풍경. 배경에 드리운 하늘의 색채가 차갑도록 푸르다. 이곳은 강철규(34)가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다. 가장 낯설고 신비한 장소의 이미지를 구상하다 보니 북유럽 신화를 연상시키는 장면을 묘사하게 됐다. 각각의 풍경은 현실에서 겪어내는 삶의 이면에 놓인 개인의 심리적 풍경을 시각화한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화면 속 야생에 내던져진 존재들은 저마다 작가 자신의 투영체다. 이들은 창과 도끼를 들고 각자에게 주어진 정체불명의 적에 투항하는 모양새다.

강철규는 1990년 김천에서 태어나 한남대학교 조형예술학부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이응노미술관 신수장고 M2, 챕터투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대전시립미술관, 갤러리 바톤, 두남재아트센터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이 지난 10일부터 2월17일까지 여는 단체전 ‘착륙지점’에 참여하여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에 입주해 작업 중이며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적’(2023).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 낯설고 신비한 냉소적 유토피아

“대학 때 숀 펜의 ‘인투 더 와일드’(Into the Wild·2007) 보고선 마치 알에서 정체성이 껍질을 까고 나오는 듯했어. ‘이거 뭐야. 이거 나잖아. 그래 이거지. 이런 걸 원했단 말이야’ 하곤 당장에라도 배낭에 짐 싸서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알래스카 뭐 그런 데를 가고 싶었는데 이거 원. 돈이 없잖아. 당장 월세와 아르바이트가 날 옭아맸네. 그런데 있지. ‘가고 싶은데 갈 수 없다’의 정도가 강할수록 그만큼의 동경이 풍경으로 나오는 거야. 풍경 그리는 게 더럽게도 힘든데 절경을 보면 안 그리곤 못 배겨.”

회화의 화면 위에 동경의 세계를 묘사하고, 그 안에 자신을 심어 두기로 했다. 강철규의 말을 빌리자면 “타자의 세계에 들어가서 3인칭으로 존재하는” 일이다. 이 세계의 구성을 위한 시청각적 영감은 다양한 곳으로부터 온다. 작가는 라디오헤드와 시규어 로스, 라흐마니노프, 바흐, 쇼팽의 음악과 드니 빌뇌브,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 무라카미 하루키와 김애란의 소설 등을 언급한다. 최근에는 말러의 음악, 크리스티안 페촐트나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영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에 잠겨 있단다.

사냥을 소재로 한 장면들을 그리면서부터는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자주 보게 됐다. EBS의 프로그램과 내셔널 지오그래픽 영상, 유럽의 사냥꾼들이 업로드하는 브이로그 등을 즐겨 본다. 틈틈이 직접 소설을 쓰기도 한다. 그간 ‘계절이 바뀌는 계절’(2020)과 ‘에바(Eva)’(2019)라는 제목의 책을 두 권 출간하기도 했다.
‘적’(2023).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강철규가 그린 세계는 신비로운 낙원처럼 보이다가도 일순간 자비 없는 전장으로 돌변한다. 장면을 배회하는 인물은 줄곧 긴장에 사로잡힌 채다. 미지의 적을 향하여 예리한 창을 겨누고, 야생의 것을 사냥하고, 날것의 고기를 해체하고, 거대한 존재를 상대로 끝없이 투항해야 한다. 작가의 투사체는 한순간도 안주하지 못하며 매 순간 치열한 심리적 투쟁의 상황에 내몰린다. 쉬이 끝나지 않을 대치 끝에 비로소 도래할 무엇을 위하여 그가 무찔러야 할 대상이 거듭 제시된다. 처절하게 인간적인 생존 본능과 그에 대한 냉소적 자기혐오가 씨실과 날실이 되어 그만의 유토피아를 직조해 낸다.

◆불안의 실체를 마주하는 일

현실에 대한 불안과 자신에 대한 불신을 떨치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가 택한 첫 번째 해결책은 벌목의 행위였다. 하늘을 찌를 듯 자라난 나무의 밑동을 쳐 내는 몸짓을 묘사하는 과정 가운데 실제 삶 속의 부정적인 심리 또한 해소하고자 한 것이다. 다만 때로는 생존을 위한 파괴의 행위가 오롯이 건강한 의지인지, 또는 지나친 강박인지 확신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불안을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은 또 다른 종류의 불안이 되어 내면에 커다랗게 응어리진다.
‘강박’(2023).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강박’(2023)은 도끼를 높이 든 인물이 나무를 내리치려는 찰나의 장면을 묘사한다. 그의 등 뒤편에서 다가오는 반인반수의 시선이 관객 방향의 현실을 응시한다. 인물의 머리는 검고 둥근 구의 형상을 띤다. 불안과 공포, 기대와 망상, 실망과 우울 등 다루기 힘든 감정의 복합체가 물리적 실체로 현현한 모습이다. 자신의 심리를 조종하는 온갖 강박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서 치환하여 마주하는 일이다. 검은 구는 ‘적’(2023)을 포함한 복수의 화면에서 재차 등장한다. 후자의 화면에서는 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채로, 그러나 무척 더 불어난 규모로서 인물과 대적하는 모습이다.
어떠한 구체성 없이 그저 어둠의 덩어리로서 묘사된 그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찬란한 세계를 집어삼킬 수 있을까. 강박의 응어리는 해치워야 할 대상이며 파괴해야 할 적으로서 묘사되는 한편, 주체의 행위에 동기와 목적을 부여하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그 또한 작가 자신이 설정한 세계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거듭 주어지는 긴박한 대치의 상황은 주체로 하여금 도리어 살아갈 의지와 동력을 스스로 고무하도록 만든다.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하여, 역설적으로 그것의 정체를 자꾸만 추적해 나가는 것이다.
‘사냥일지’(2023).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치열한 심리적 전장의 한복판에서
‘사냥일지’(2023)는 여러 시점의 장면을 콜라주하듯 하나의 화면 위에 포개어 그린 회화다. 등장인물을 둘러싼 서사의 진행을 다각도에서 보여주는 구성이 돋보인다. 인물의 주체성은 불완전하게 분절된 신체로서, 동시에 여럿으로 분열된 자아로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화면 좌측 하단에 묘사된 인물은 사냥을 통해 포획한 동물들을 맨손으로 해체하는 작업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잘린 목의 단면이 베인 나무의 나이테를 닮았다. 손도끼로 찍어내던 벌목의 대상은 때로 자신의 아집이었다. 그 인물의 어깨선을 따라 또 다른 나무들이 자라난다. 그간의 전리품을 커다란 열매처럼 맺은 채로.
‘큰 놈’(2023).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강철규의 화면은 자신 내면의 고뇌와 좌절, 불신과 비관에 맞서 싸우는 화가 개인의 심리적 전장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보여준다. 회심의 창을 명중시킨다 하여도 아랑곳하지 않는 ‘큰 놈’(2023)의 맷집처럼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은 상대로 여겨진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빛을 세로 지르는 침엽수의 철창 아래서 다음 ‘적’(2023)의 행방을 끝없이 좇는 이유다. 불안의 실체를 가시화하는 일은 곧 자신 내면의 욕망을 보다 뚜렷이 대면하고자 하는 시도에 다름없다. 정체가 무엇이든, 상대로부터 살아남기 위하여 온몸을 다해 예민하게 가다듬은 창날을 내던지는 것이다. 단번에 쓰러뜨릴 수 없다 하여도 개의치 않으며.

박미란 큐레이터·미술이론 및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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