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듯 담백하고 깊은 국물… 찬 바람 불 때면 생각나네 [김동기 셰프의 한그릇]

2024. 1. 1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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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시장 안동집 손국시
옛모습 간직한 채 경동시장 지하에 위치
내·외부 공간으로 나뉘어… 여전히 북적
기본상 차조밥·배추·된장 등 조합 눈길
제멋대로 생긴 수육 담백하고 부드러워
뽀얀 국물에 배추·면 가득한 안동국시와
쫄깃한 반죽 배추전 곁들이면 환상 궁합
북적이는 시장 골목, 지하 식당가에는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안동국수집이 자리하고 있다. 부드럽게 삶은 수육, 반죽이 쫄깃한 배추전은 안동집 손칼국시와 함께 경동시장을 찾는 이들에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한끼를 선사해 준다.
안동집 외관
◆경동시장

평생을 재단사로 일한 아버지의 마지막 공장은 서울 제기동의 어느 2층 건물이었다. 1층에는 1970~1980년대엔 성행했을 법한 작은 시장터가 있었고 그 2층에는 원단이 가득 쌓여 있는 공장들이 삼삼오오 모여 미싱소리와 함께 적막한 골목길을 밝혀 주었다. 요리학교를 다니던 때라 부모님 공장에 들러 직접 양념한 불고기로 전골을 끓여 먹기도 하고, 점심시간 백반 한 상에 밥 한 그릇을 더해 함께 밥을 먹기도 하며, 오히려 10대 때에 학창시절보다 더 부모님과 돈독한 시간을 보냈던 거 같다.

오후 6시 넘어 퇴근시간, 하루 일이 끝나면 아버지는 완성된 원단을 오토바이에 싣고 동대문으로 향하셨고, 난 어머니와 함께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종종 날이 좋을 때면 산책하듯 걸어가기도 했는데, 집으로 가는 길목인 경동시장에 들러 장보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참 좋았다. 국거리와 야채들같이 비교적 손에 들고 갈 만한 것들로 가볍게 장을 봤는데, 그중 제일 기억나는 건 바로 명란젓이다. 집 근처 재래시장에서는 잘 팔지 않았기 때문에 경동시장에 들르면 한 통씩은 꼭 사다가 집에 쟁여 놓았는데, 랩으로 하나씩 둘둘 말아 냉동고에 보관해 놓으면 꽤 오랜 시간 동안 반찬으로 즐길 수 있었기에 경동시장 하면 난 늘 명란젓이 생각난다.

시장을 걷다 조금 출출해질 때면 골목 사이사이에 있던 국수집에 들러 꼬마김밥과 잔치국수 한 그릇을 하기도 하고, 순대국집에서 따끈한 국밥과 모듬순대를 시켜 먹기도 하며 부른 배를 안고 청량리까지 걸어가 다시 버스를 탔었다.
손칼국시
그중 젊은 입맛에 퍼진 국수가 썩 좋지 않았던 곳이 있었다. 어머니와 종종 찾아갔던 그 가게는 내 입맛보다는 어머니 입맛 때문에 찾았던 것 같다. 좋아하는 만두나 해산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툭툭 끊어지는 퍼진 듯한 국수에 다소 심심한 국물 맛, 야채가 떠 있는 그 국수는 그때 그 젊은 입맛에는 크게 환영받지 못했는데, 그런 국수가 이젠 겨울의 차가운 바람 냄새가 돌 때면 생각이 난다. 다진 마늘을 가득 넣고 양념장을 더해 국물을 제조하고 약간의 청량고추를 더하면 칼칼한 맛이 더해져 더욱 맛이 좋다. 지난여름 안동에서 행사가 있었을 때 먹었던 ‘안동국시’의 고소함과 담백한 요리 방식이 젊은 시절 내가 먹었던 어머니의 그 국수라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다.

◆안동집 손칼국시

안동집 손칼국시는 경동시장 신관 지하 1층에 위치해 있다. 옛날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외부공간과 안쪽의 넓은 내부공간이 있는데, 오랜만에 찾은 가게에는 여전히 많은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친절하게 안내를 받아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른 아침 TV 뉴스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국수를 음미하는 소리가 꽤 나쁘지 않게 다가온다.

손국시와 수육을 주문했다. 기본상으로 나온 차조밥과 배추, 된장, 청양고추의 조합이 참 재미있었다. 배추에 차조밥을 올리고 된장을 듬뿍 찍어 쌈을 하나 싸보니 간단하고도 단순한 음식의 조화야말로 애피타이저의 정수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삭한 식감과 짭조름한 된장의 맛과 풍미, 매콤한 청양고추가 손국시와 수육이 나오기 전 입맛을 충분히 돋우어 준다.
수육
곧 수육이 나왔다. 다소 모양이 제멋대로인 수육이지만 맛은 제대로다. 주문하기 전에 비계가 많은 수육으로 주문을 하면 기름기 적당히 붙은 부위로 썰어내 주는데, 따로 말을 하지 않으면 랜덤으로 나오니 취향을 미리 말하길 추천한다. 담백한 수육은 된장하고도 맛이 찰떡이다. 살코기 가득한 수육은 비계의 비중과는 상관없이 먹는 내내 부드러웠다.
안동국시는 다른 손님이 주문한 것과 함께 한솥에 면을 삶기에 주문 후엔 다른 메뉴와 약간의 시간차가 있다. 뽀얀 국물에 배추와 면이 가득 들어 있는데 다소 심심한 맛의 국물은 추운 겨울에 더 빛을 보는 것 같다. 추위에 메말라 있던 빈속에 국물이 한 모금 들어가면 담백한 그 맛에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다진 마늘을 넣으면 국물이 더 뽀얗게 변하고 양념장을 더해 간을 맞추면 국물의 깊은 맛을 한껏 만끽할 수 있다. 면은 씹히는 맛이 적다. 입에서 후루룩 삼킬 정도로 부드럽다.
배추전
◆배추전

쫄깃한 반죽의 배추전을 함께 곁들여 먹으면 궁합이 환상이다. 이곳의 메뉴들은 막걸리와 아주 잘 어울리는데, 그중 일등 공신이 바로 이 배추전이다. 쫄깃한 반죽에 주문 후 바로 지지기 시작하는 배추전은 안동집에서도 제일가는 인기메뉴다.

간단하고도 손쉬운 배추전은 집에서 야식으로, 간식으로 먹기에 안성맞춤인 재료다. 아삭한 배추전을 먹고자 한다면 생배추에 반죽을 입혀 지지면 되고, 부드러운 배추전은 배추를 소금이나 끓는 물에 절여 준 후 반죽을 입혀 지지면 된다. 배추전은 주로 강원도와 경상도에서 먹는데, 강원도 지방은 메밀이 많이 나기에 튀김옷 반죽에 메밀을 추가해 부쳐 먹기도 한다. 배추는 냉장고에 보관하면 잘 상하지 않기에 구매해 놓으면 한 잎 뜯어 쌈장에 찍어 먹거나 된장국에 넣기도 하고 전을 부쳐 먹기에도 좋다.

구운 배추 샐러드
■구운 배추 샐러드

<재료>

알배추 1/4포기, 닭가슴살 1조각, 계란 1알, 블랙 올리브 조금, 드레싱(마요네즈 50g, 파르메산치즈 가루 10g, 다진 케이퍼 10g, 다진 안초비 1조각, 레몬즙 10ml, 후추 조금)

<만드는법>

① 드레싱 재료를 섞어 준비한다. ② 닭가슴살은 삶아 준 후 썰어 주고 계란은 7분 반숙으로 삶아 손질해 준다. ③ 알배추는 소금간을 해준 후 기름을 두른 팬에 배추를 구워준다. ④ 배추의 잎과 잎 사이에 드레싱을 넣어 준 후 닭가슴살과 계란을 곁들여 준다.

김동기 그리에 총괄셰프 Payche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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