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블랙홀’이 집어삼킨 CES 2024

라스베이거스=김지현 테크라이터 2024. 1. 1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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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AI 냉장고’, 현대차 ‘AI 모빌리티 소프트웨어’ 이목

매년 1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선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가 열린다. 1967년 TV를 비롯한 가전기기 위주의 전시회로 출범한 CES는 2000년대 들어 개인용 컴퓨터(PC), 휴대전화 등 디지털 기기로 전시 영역을 확장했다. 2010년대 중반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4차 산업혁명 바람이 불면서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하자 CES는 더 주목받기 시작했다. 자동차, 드론, 스마트시티, 로봇 등 다양한 첨단 분야의 신기술을 선보이는 장이 된 것이다. 2020년대 들어선 인공지능(AI), 메타버스, 푸드테크, 우주, 로봇 등 신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세계 최대 산업 전시회로 자리매김했다.

CES 2024 슬로건 'All Together, All ON'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1월 9~12일(현지 시간)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4’ 행사장. [김지현 제공]
필자가 직접 둘러본 올해 CES에서도 이 시대 기술혁신이 나아갈 방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1월 9~12일(이하 현지 시간) 개최된 CES 2024의 슬로건은 'All Together, All ON'으로, '모든 기업이 기술 기반으로 전력을 다해 함께 질주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 기술의 중심에는 지난해 전 세계를 강타한 챗GPT 같은 생성형 AI가 있다. CES에선 이미 2017년부터 AI를 하나의 키워드로 다루기 시작했다. 예전에 비해 올해 행사의 특징은 AI가 그야말로 모든 전시의 중심에 있다는 점이다. 이번 CES에는 AI가 모든 디지털 산업과 디바이스에 폭 넓게 적용돼 소비자의 편의성을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비즈니스 가치를 만들 것이라는 기대감이 깔려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AI를 품은 칩셋, AI가 탑재된 디바이스, AI를 활용한 서비스, AI를 혁신 수단으로 활용하는 산업 등이 핵심 테마였다.
CES 2024 삼성전자 부스에 전시된 인공지능(AI) 탑재 냉장고. [삼성전자 제공]
세계적인 전자제품 제조사로서 그간 CES에서 주목받았던 삼성전자와 LG전자도 AI 열풍에서 예외는 아니다. AI 뉴노멀 이전 두 기업은 TV를 중심으로 크고 고화질인 새로운 디스플레이 기술과 폼팩터(제품의 구조화된 형태) 혁신을 이끌었다. 4K·8K TV와 3D·OLED 기술, 롤러블 TV가 대표적 예다. CES 2024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AI를 활용해 4K로 방송되는 영상을 8K 고화질로 변환시키거나 전력 소모량을 줄이고, AI 칩셋이 탑재된 TV가 자동 번역을 통해 실시간으로 자막을 생성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가전제품도 AI 기술을 품으면 그야말로 스마트기기로 변신한다. AI가 냉장고 안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냉장 보관된 식재료를 모두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재료별 보관 기간과 레시피 등을 제안한다. 삼성 스마트싱스와 LG 씽큐 같은 스마트홈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가전기기를 상호 연결하는 사용자 경험의 혁신도 눈에 띄었다.

현대차 "수소와 소프트웨어 대전환"

현대차그룹 슈퍼널이 CES 2024에서 공개한 차세대 AAM(미래항공모빌리티) 기체 S-A2. [뉴시스]
자동차 제조사 역시 이번 CES에서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를 넘어 생성형 AI를 통해 차량 서비스의 편의성을 높이는 기술을 선보였다. 특히 현대차 그룹은 올해 CES에 역대 최대 규모인 7개 계열사가 참여해 미래 모빌리티 기술혁신을 주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미 2025년까지 모든 차종을 SDV로 대전환한다고 천명하면서 차량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강조한 현대차는 CES 2024에선 '수소와 소프트웨어로의 대전환'을 주제로 미디어 데이를 개최했다. 청정 수소 에너지원과 AI 소프트웨어를 바탕으로 한 모빌리티 혁신이 뼈대다. 현대차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업 '포티투닷'이 자체 개발한 초거대 언어 모델(LLM) 챗봇 '챗 베이커'를 자동차 내부 AI 비서의 성능을 높이는 데 활용한다고 밝힌 점도 이목을 끌었다.

해외 기업들의 AI 혁신 사례도 눈에 띄었다. 폭스바겐은 올해 2분기까지 챗GPT를 자사 자동차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통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운전자가 말만 하면 차량 내 에어컨과 실내 공조 기능, 내비게이션이나 인포테인먼트 기기를 조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존에 유사한 AI 어시스턴트는 사람의 언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챗GPT의 뛰어난 언어 인식 능력, 인간과 대화 기술이 차량 내 운전자 경험을 크게 개선할 것으로 기대된다.

엔비디아는 로봇과 생성형 AI의 결합을 통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같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 사용자도 로봇을 쉽게 제어하고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챗GPT를 동작시킬 때 사용하는 프롬프트처럼 자연어로 명령을 내리면 로봇이 움직이는 것이다. PC나 노트북에서 구동되는 RTX 40 시리즈 슈퍼라는 그래픽처리장치(GPU)도 선보였다. 이 RTX를 탑재한 컴퓨터를 이용해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인터넷 방송을 할 경우 기존보다 속도와 서비스 운영 품질이 크게 높아진다. 기존 PC용 GPU는 고사양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가 주된 고객층이었다. 이제 엔비디아가 디지털 크리에이터로 고객층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생성형 AI를 최적의 조건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GPU가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올 한 해 다양한 온 디바이스(on-device) AI가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가 이번 CES에서 밝힌 신사업의 미래상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1월 8일 뉴욕 증시에서 엔비디아 주가는 전날보다 6.4% 오른 522.53달러(약 68만7388원)로 마감해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고, 10일 543.50달러(약 71만4974원)를 기록해 3거래일 연속 최고치 행진을 이어나갔다.

기아가 CES 2024에서 공개한 첫 목적기반모빌리티(PBV) PV5 콘셉트카의 내부 모습. [김지현 제공]
LG전자가 CES 2024에서 선보인 가정용 AI 로봇. [김지현 제공]
롯데정보통신이 CES 2024에서 공개한 메타버스 플랫폼. [김지현 제공]

인간안보 위해 첨단 IT 활용하자

CES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AI 기술로 바뀔 미래 어젠다로 '인간안보(human security)'를 제시했다. 인간안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불확실한 미래의 위협에서 벗어나 풍족한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AI로 대표되는 첨단 IT의 발달은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해결하는 데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CES는 단순히 기업 신제품을 소개하는 행사를 넘어 첨단기술이 인류를 위해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고민하고, 그 미래상을 보여주는 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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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김지현 테크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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