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아름다운 그림의 한계, 윌리엄 부그로

도광환 2024. 1. 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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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전까지 서양 미술사에서 화가는 거의 남성이었다.

서양 미술사에서 여성 표정이나 자태, 누드까지 가장 아름답게 그린 화가는 19세기 프랑스 아카데미 화가,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1825~1905)를 든다.

같은 제목으로 르네상스 시기 보티첼리가 그린 그림과 비교하면 부그로가 그린 비너스와 주변 인물들은 '완벽함'으로 무장해 '승천'하는 느낌이다.

그나마 이름이 잊혔던 부그로 그림이 20세기 말부터 재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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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20세기 이전까지 서양 미술사에서 화가는 거의 남성이었다. 그림의 주문자나 구매자도 마찬가지였다.

신화나 역사 내용을 빌려 그린 그림 속에 누드 여성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런 남성 위주 세계관 때문이었다.

조금 과장하면, 오늘날 포르노그래피 역할을 그림이 일부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서양 미술사에서 여성 표정이나 자태, 누드까지 가장 아름답게 그린 화가는 19세기 프랑스 아카데미 화가,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1825~1905)를 든다.

그의 대표작은 '비너스의 탄생'(1879)이다.

'비너스의 탄생'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이 그림보다 조금 이르게 그린 알렉상드르 카바넬(1823~1889)이 그린 '비너스의 탄생'(1863)도 비슷한 분위기를 띠는데, 부그로가 이 그림에서 배웠다고 볼 수 있다.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같은 제목으로 르네상스 시기 보티첼리가 그린 그림과 비교하면 부그로가 그린 비너스와 주변 인물들은 '완벽함'으로 무장해 '승천'하는 느낌이다.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

역시 신화 속 내용으로 여성 누드를 마음껏 표현한 '님프들과 사티로스'(1873)를 보면 8등신 미녀들의 경연장 같다.

'님프들과 사티로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여성 누드만 잘 그린 게 아니다. 단테 '신곡'을 소재로 그린 '지옥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1850)에선 남성 누드를 정밀하게 그리며 인체 묘사에 농밀한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지옥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부그로 아버지는 부유한 상인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기 사업을 이어받길 원했지만, 어릴 때부터 드러낸 아들의 그림 실력과 열정을 이길 수 없었다.

부그로는 화가의 길을 걸으며 승승장구했다. 전통적인 아카데미즘 화가로서 평생 파리 살롱에 그의 그림이 전시될 정도로 상류층에 인기 있는 화가였다.

그를 위시한 아카데미즘 화가들은 성경과 신화, 문학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삼았다. 이를 아름답게 표현한 '읽는 그림'을 중시했는데, 부그로는 그들을 대표했다.

부그로는 그의 전성기 시절 등장한 인상주의를 외면하며 줄곧 인정하지 않았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과 일상을 포착하는 데 주력하는 행태는 그가 보기에 미술의 기본적인 문법을 무시하는 '회화의 이단'이었다. 부와 명예는 부그로 등 아카데미에 속한 화가들 것이었다.

반전은 1920년대부터 시작됐다. 현대 미술 흐름에 싹을 틔우며 '근대정신'으로 자리 잡은 인상주의가 인기를 얻으면서 아카데미즘 미술은 잊히기 시작했다. 부그로 이름은 한때 백과사전에서도 지워졌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를 살며 인상주의와 아카데미즘을 각각 대표하는 이는 클로드 모네와 부그로였는데, 오늘날 두 사람의 명성과 작품 가치, 작품값을 당시와 비교하면 정반대 처지다.

그나마 이름이 잊혔던 부그로 그림이 20세기 말부터 재평가되고 있다. '그 시대 가치에 맞게 아름답게 잘 그렸다'는 평가를 얻은 덕이다. 탄탄한 구성과 신비한 표정들에 스민 매력 등으로 1984년 열린 회고전 이후 주목받고 있다.

샌디에이고 미술관을 대표하는 그의 명작, '어린 여자 목동'(1885)을 보자.

'어린 목동' 샌디에이고 미술관 소장

그윽한 눈길과 소담스러운 자세, 평온한 자연이 주는 정취에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처럼 부그로 그림을 마주할 때마다 걸음과 눈길을 멈추며 한 번 더 보게 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의 '부활'은 그림에 숨은 드높은 정신이나 창조력 발견 때문이 아니다. 미술사에 획을 긋는 용기 또는 도전정신을 발휘한 화가도 아니었다. 전통을 고수하고 전통을 중시한 화가였다.

부그로는 당시 기호에 충실했던, '현재 작가'였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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