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기능 6300개, 공짜로 해줘"…공공IT사업 갑질 규모 '깜짝'

황국상 기자 2024. 1. 1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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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진행 도중에 추가기능 6300개 요구한 국방부
"기본업무일 뿐 추가업무 아냐, 대금지급 불가"... 지체상금까지 부과
재판부, 과업내용서 조항 모호성에도 "최종 산출물 FP로 추가과업 확인"
"공공IT 사업갑질, 공공망 부실 초래", 디플정·행안부 이달 개선안 공개 전망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국방부 깃발. 2021.6.4/뉴스1


지난 11일 민간 IT서비스 기업이 추가과업 실시대가를 지급하라고 낸 소송에서 패소한 국방부 사건은 정부·공공기관이 발주하는 IT·SW(소프트웨어) 사업에서 관행처럼 여겨졌던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본보 11일자, [단독] 국방부 '갑질' 법원서 제동…공공IT 사업 부당관행 사라질까)

국방부는 그간 IT시스템 계약과 관련한 민간 기업들과의 갈등이 유독 많은 부처로도 꼽힌다. 국방부 시스템이 해킹을 당해 군사자료가 유출됐던 사고를 두고 보안 시스템 사업을 담당했던 보안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했다가 잇따라 패소한 적도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국방부의 갑질은 정부·공공 발주 IT사업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관행"이라고 지적한다. 예산을 늘리지 않은 상태서 민간 사업자들에게 무리한 추가과업을 요구하는 것은 공공 IT사업에서 고질적 악습이라는 얘기다.

사업진행 도중에 추가기능 6300개 요구, 국방부 "추가대금 못준다"
이번 사건의 판결문에는 국방부가 CJ올리브네트웍스, KCC정보통신 등 2개사를 상대로 무리한 요구를 한 사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15년 국방부는 육·해·공군 등 각 군이 종전까지 개별적으로 운영해 왔던 군수정보시스템을 통합하는 내용의 '군수통합 정보체계 구축사업'을 추진했다. 이 시스템은 탄약과 장비·물자 등 각 군이 운용하는 군수물자의 관리·운영을 실시간으로 지원하기 위해 도입이 추진됐다.

당초 250억원(부가가치세 제외, 포함시 275억여원) 규모로 추진될 예정이었던 이 사업은 2015년 12월부터 착수될 1차 계약에서부터 2020년 3월까지 마무리될 5차 계약까지 단계적으로 추진될 예정이었다. 이 때만 해도 이 사업의 규모는 4만8351FP(기능점수)로 산정됐다.

FP(Function Point)란 소프트웨어 등 IT시스템이 구현할 수 있는 기능의 수를 기준으로 사업의 단가를 책정하는 방식이다. 1FP 당 단가를 곱해 용역대금이 산정된다. 시스템이 구현할 수 있는 기능의 수가 많을수록 더 높은 용역대금이 매겨지는 방식이다. 사업에 투입된 자원을 정량화해서 용역대금을 산정하는 M/M방식(Man Month, 투입공수 기준방식)과 다르다.

그런데 1차 계약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16년 8월, 국방부는 CJ올리브네트웍스 등에 6301건의 기능을 추가로 반영해달라고 요청했다. 육·해·공군 및 해병대 등 시스템을 실제 운영하게 될 각 군 외에도 국방부가 각각 개별적으로 반영해달라고 요청한 7241건 중에서 그나마 추린 게 6301건이었다.

계약규모 2배 이상 됐어도 모르쇠, 지체상금까지 부과
CJ올리브네트웍스 등은 국방부 요구대로라면 사업의 규모가 11만789FP로 당초 계약 대비 2.3배 규모로 사업이 커진다는 점을 지적하며 계약금액을 재협의해야 한다고 공문을 보냈다. 이에 이듬해인 2017년 1월 국방부는 "과업 범위가 변경됐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의 공문을 각 사에 발송했다.

업체들은 "과업 범위와 계약금액 조정에 대한 합의 및 재검토가 이뤄진 후에야 3차 계약의 체결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는 취지로 답했다. 이에 국방부는 "정당한 이유 없이 3차 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계약이 해지되거나 계약 보증금이 국고로 귀속될 수 있고 입찰참가자격 제한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국방부는 업체들이 "과업변경 심의위원회를 개최해달라"는 요청에 대해서도 "과업의 변경이 없는 현 상황에서 심의위 개최가 필요하지 않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같은 논쟁이 오가는 중에 이번 사업에 참여했던 컨소시엄 구성사, 하도급 업체들이 무더기로 이탈했다. 사업을 계속해서 생길 것으로 예상되는 손해가 사업을 포기한 데 따른 손해보다 클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CJ올리브네트웍스 등 남아 있는 기업들이 이탈 기업들의 업무까지 모두 떠안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사업은 지연이 됐고 국방부는 3,4차 예약의 이행이 지체됐다는 이유로 26억여원의 지체상금까지 부과했다.

국방부 "추가업무 없으니 대가 미지급 정당", 법원 판단은?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법원은 감정인을 통해 해당 사업을 평가한 결과 최종 산출물의 규모가 11만7566FP에 이른다고 판단했다. 또 증가된 사업분(6만9035FP)에 해당하는 사업대금의 규모도 430억원에 이른다고 평가했다. 증가된 사업분의 규모가 당초 발주된 사업규모(약 250억원)보다도 크다.

국방부는 "FP가 늘었다더라도 이를 근거로 소프트웨어의 기능이 증가했다고 판단할 수 없다"며 "각 군이 요구하는 기능들을 반영하는 것은 기본업무를 구체화하는 작업에 불과하므로 업체들에 추가 업무를 지시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기본 업무 외 추가 업무를 실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FP가 증가했다는 이유만으로 계약금액 증액과 이를 위한 과업변경 심의위 등 개최를 요구했다"며 "이같은 업체들의 요구는 부당하므로 계약금액을 조정하지 않고 심의위를 개최하지 않은 것은 정당하다"고 했다.

이에 재판부는 "용역대금 산정의 기초가 될 뿐 아니라 산출물 규모를 정량화하는 지표인 FP는 발주자 관점에서 측정된 소프트웨어 기능의 양으로, 발주자에게 제공되는 소프트웨어 기능의 규모를 측정하는 단위"라며 "이 사건 사업의 최종 산출물 FP가 당초 계약에서 정한 것보다 증가했다면 계약 체결 당시 예정했던 범위의 기능보다 더 많은 기능이 구현돼 발주자에게 제공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최초 계약 당시 합의한 것보다 최종 산출물의 FP가 증가했다면 해당 FP 증가분에 상응하는 과업이 기본·추가 업무 중 어느 범주에 속하는지와 무관하게 최종 산출물에 당초 합의한 것보다 더 많은 기능이 구현됐음을 뜻한다"며 "이를 통해 발주자(국방부)가 당초 계약에서 정한 바를 초과해 구현된 기능을 향유하게 됐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과업 내용서 조항 모호성 불구, 업체 손 들어준 이유는?
당초 계약의 모호성이 문제가 될 수는 있다. 복잡하고 광범위한 시스템을 개발·구축하는 사업의 특성상 구현될 세부 내역을 모두 계약서에 기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방부도 자신들이 추가로 요구한 사항이 당초 계약에 포함된 '기본업무'를 구체화하는 것이었을 뿐 추가사업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같은 모호성에도 재판부는 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과업 내용서에 다소 추상적 기재가 불가피하고 수주업체가 이를 바탕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과업 내용서에 기재된 세부 업무를 어느 정도로 수행할지, 계약 범위 외 과업을 수행한 것인지 등을 판단할 때 불명확한 부분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에 재판부는 "과업 내용서의 추상성은 기본 업무 내용을 구성하는 개별 항목의 범위를 문구로 표현할 때 최소한의 추상성을 용인한다는 것"이라며 "해당 항목의 개발로 구현될 기능의 정량화된 수치, 즉 FP나 이를 통해 외부에 드러나는 사업의 규모 및 수급인이 수행해야 할 업무의 총량의 추상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또 "업체들이 수행한 용역의 결과로 구현되는 기능의 총량은 당초 계약에서 합의한 FP의 범위 내에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불명확한 부분이 발생할 여지가 없다"며 "국방부가 당초 계약 범주를 넘어선 용역을 제공받고 대가를 지급하지 않은 데 대해 부당이득반환 등 형태로 계약 범위 외 용역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지체상금 요구에 대한 부분에서도 재판부는 "국방부의 계약 범위 외 과업 요구로 3,4차 계약의 이행이 지체됐던 것으로 보이고 업체들의 책임있는 사유로 이행이 지체됐다고 볼 수 없다"며 지체상금 부과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공공IT 사업갑질, 공공망 부실 초래", 이달 개선책 나오나
이미지투데이
한 IT서비스 업계 관계자는 "CJ올리브네트웍스와 국방부 사이의 다툼은 이례적으로 법원에서 소송으로 다퉜다는 점에서 눈에 띈 것일 뿐"이라며 "정부·공공 IT사업의 발주처가 추가과업을 요구하고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관행은 일반적"이라고 했다.

민간 기업이 정부부처의 제재 등 행정처분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은 많지만 공공 사업을 수주한 기업이 정부와의 계약에서 문제가 생긴 데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정부·공공 기관과의 거래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향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공공 발주처는 대개 거래관계에서 '갑'(甲)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을'(乙) 입장인 민간 기업이 대놓고 소송까지 진행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공공IT 사업과 관련한 갈등은 수면 위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민간기업간 거래와 달리 갈등이 생기더라도 읍소하는 형편에 놓일 법한 민간기업이 대놓고 정부·공공 고객을 비난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한 사업에서 갈등이 빚어지더라도 추후 사업 발주를 통해 손해를 일부 보전해주는 관행도 공공 발주처와 민간기업간 갈등이 소송까지 이어지지 않게 막아주는 변칙적 방안으로 통했다는 얘기도 있다.

CJ올리브네트웍스 등이 소송을 제기한 자체가 그간 고질화돼 왔던 공공 발주처 갑질이 더 이상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심해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 대형 IT서비스 업체 관계자는 "공공 사업은 발주처의 무리한 요구 등으로 인해 수익성이 떨어지고 심하면 손실까지 떠안아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며 "2013년 이후 시행돼 온 '공공 IT사업 대기업 참여제한' 정책의 영향도 있지만 공공 사업의 까다로움 때문에라도 대기업들은 공공 IT 사업을 외면한다"고 했다.

사업 예산을 책정하는 과정에서 유연한 계약금액 산출방안이 도입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대기업 계열 IT서비스 기업의 임원은 "공공 사업은 고정 계약으로 체결되다보니 다년간의 사업 수행 과정에서 제도 변경 등 불가피한 사유로 과업이 늘어나더라도 해당 예산은 늘어나지 않아 갈등이 초래되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며 "변동계약을 통해 추가 협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등 조치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해부터 올해 초에 이르기까지 공공 IT 시스템 먹통·마비 등 장애가 7~8회에 이른다"며 "현실에 맞지 않는 공공 계약 관행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은 공공망 장애의 근본적 이유로 꼽힌다"고 했다.

이에 정부 차원에서도 대대적인 공공 IT사업 추진방안의 개선이 진행되고 있다. 이미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대기업 참여제한을 일부 완화하는 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행정안전부 등 공공망 사업을 주관하는 당국도 지난해 8월부터 11월에 이르기까지 민간 사업자들과 밤샘 토론을 잇따라 개최하며 의견을 수렴해 왔다. 공공 IT사업 발주제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이르면 이달 중 확인될 것으로 기대된다.

황국상 기자 gshw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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