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한마디에 날벼락…과학계 “천공 강의 봐야 한다던데”

정혁준 기자 2024. 1. 1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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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커버스토리
‘예산 삭감’ 과학기술계 현장
지난 6일 서울의 한 대학교 연구소에서 실험을 하고 있는 연구원의 모습을 출입문 바깥에서 촬영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2024년 대한민국의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은 26조5천억원이다. 전년(31조1천억)보다 4조6천억원이 줄었다. 5조2천억원(16.6%) 삭감이 애초 정부안이었으나 국회 심의 과정에서 그나마 6천억원이 되살아난 결과(15% 삭감)다. 1991년 이후 33년 만의 첫 연구개발 예산 삭감이다. 외환위기 때도 없었던 일이다.

불안한 징후는 윤석열 대통령의 입에서 시작됐다. 취임 이후 건전재정을 줄기차게 강조하던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연구개발비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24년도 각 부서 예산안을 기획재정부에 내야 하는 기한(6월30일)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지난해 7월3일 신임 차관 임명식 뒤 “우리 정부는 반(反)카르텔 정부다. 이권 카르텔과 가차 없이 싸워달라”며 신임 차관들에게 당부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대규모 예산 삭감으로 이어지자 과학계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삭감안이 나오자 과학계는 실험 도구 대신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연구개발비 예산 삭감으로 직격탄을 맞은 곳은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다. 지난달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예산이 통과된 뒤 연초를 맞이해 연구개발 현장에서 연구개발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지난 정부 정책 카르텔 규정하더니…”

지난 4일 밤 대전시 유성구 신성동의 한 식당.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과 대덕연구단지가 가까운 곳이다. 이곳에 연구원들이 한두명씩 모였다. 이들은 연구개발비 삭감을 놓고 소주잔을 기울였다. 이런저런 얘기가 나왔지만, 연구원들이 가장 궁금해한 건 ‘윤 대통령이 왜 과학계를 카르텔 집단으로 규정했나’였다.

한 연구원이 운을 뗐다. “브이아이피(VIP·대통령)가 검찰총장 출신이어서 정책의 큰 틀을 보지 못하고 범죄가 될 만한 ‘거리’만 찾다 보니 순둥순둥한 과학계가 타깃이 된 것 같아요.”

이어 다른 연구원들도 제각기 목소리를 냈다.

“대통령이 된 지 1년쯤 지나면 기획재정부의 관료 마인드를 따라가게 되죠. 효율을 따지는 기재부 관점에서 보면 기술개발은 비효율투성이 그 자체겠죠.”

“이번 정부는 지난 정부의 정책을 무조건 카르텔이라고 규정짓는데, 그것 때문이 아닌가 싶군요.”

윤 대통령이 카르텔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건, 2021년 6월29일 대선 출마 기자회견 때였다. 그는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하면 부패한 이권 카르텔이 지금보다 더욱 판치는 나라가 돼 국민이 오랫동안 고통받을 것”이라고 했다.

2022년 11월30일 윤 대통령과 과학기술계 원로 오찬에선 ‘나눠먹기’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오찬 뒤 대통령실은 “참석자들은 연구개발 과제 배분 시 선택과 집중을 하기보다 나눠먹기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개선 방안 마련을 당부했다”고 브리핑했다. 이날 점심엔 김명자 서울국제포럼 회장, 김도연 울산공업학원 이사장, 조무제 울산과학기술원 명예교수, 이현순 울산과학기술원 이사장, 문길주 고려대 석좌교수,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과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나눠먹기 하지 말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와 큰 폭의 예산 삭감은 간극이 크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해 11월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알앤디(R&D) 혁신방안 및 글로벌 알앤디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 있는 연구 있으면 감사를 하라”

도대체 무슨 근거로 예산까지 깎는 것이냐는 과학기술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조성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직전 대통령비서실 과학기술비서관)은 지난달 12일 대전 유성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열린 ‘74회 대덕이노폴리스 포럼’에 참석해 ‘과학계 카르텔’의 구체적인 사례 8가지를 나열했다. 윤 대통령의 ‘연구개발비 제로베이스 검토’ 지시 직후에 차관으로 임명된 그는 △출연연이 기업체에 사업을 주고 사업 일부를 특정 교수에게 주는 편법 △출연연이 해당 기관 출신 교수에게 과제를 주는 관행 △제목만 바꿔가며 연구를 지속하는 한국원자력연구원 사용후핵원료 분야 등의 연구 △가치 평가 이전에 기술이전료를 협상해 일부 금액을 사적으로 지원받기 △연구 여력 없는 교수에 대한 연구비 지급 △예비타당성조사 관련 역량이 미흡한 중소기업 브로커가 대행 후 성공보수 수령 △연구재단 등이 과제 제안을 특정 연구실만 할 수 있도록 기획 △편파적 사업 선정 평가를 꼽았다.

이에 과학기술계는 “개인의 일탈 혹은 개별 비리 사건이지 카르텔로 보기 힘들다”며 반발했다.(지난해 12월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의 과학기술계 종사자 631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 이상근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선임연구원도 “저런 일이 있다면 제도를 정비하고 감사를 해야지, 예산을 깎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 차관이 밝힌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제목만 바꾼 연구 지속’에 대해 이어확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제목만 바꿔가면서 하는 연구는 없다”고 반박하며 “관리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다. 실제로 그런 문제가 있으면 밖에서 비난할 것이 아니라 차관 역할에 충실하게 관련 과제를 중단시키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개발 예산 삭감과 관련해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비판도 크다. 문성모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연총) 회장은 “민주주의 사회에선 다양한 의견을 청취한 뒤 그걸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예산안을 만들 때도 연구자들과 먼저 소통한 뒤 삭감했다면 이렇게 반발이 크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예산안 삭감을 정한 뒤 톱다운 방식으로 내려오니 연구 현장에 큰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확 책임연구원도 “윤 대통령이 과학계를 비효율 집단으로보고 있기에 카르텔로 매도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과기정통부가 반년 가까이 현장과 협의해 만든 예산안을 한마디로 뒤집어버리는 게 더 큰 비효율”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열린 ‘2024년 과학기술인·정보방송통신인 신년 인사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천공 강의 들어야 하나” 씁쓸한 냉소

지난 5일 윤 대통령은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열린 ‘2024년 과학기술인·정보방송통신인 신년 인사회’에서 “임기 중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혁신적·도전적인 연구개발은 돈이 얼마가 들어가든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또 “예산 문제는 정부에 맡겨놓으시고 여러분은 세계 최고를 향해 마음껏 도전하시기 바란다”고도 했다. 얼마 전 연구개발 예산을 크게 삭감해놓고 “임기 중 대폭 확대”하겠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이었다. 이날 한 출연연의 구내식당에서 연구원들은 윤 대통령의 모순적 발언을 해석하려 하면서 글로벌 연구개발 문제를 꺼냈다. 글로벌 연구개발이란 외국 연구기관과의 공동 협력 알앤디를 뜻한다. 한 연구원이 입을 열었다. “대통령이 전체 연구개발 예산을 크게 줄이면서 글로벌 연구개발 예산은 뜬금없이 3배나 늘렸어요.” 실제로 글로벌 연구개발 예산은 지난해 5075억원에서 올해 1조8천억원으로 3배 이상 늘었다.

또 다른 연구원이 받았다. “대통령이 다른 나라 순방을 많이 하잖아요. 순방 때마다 외국 연구소를 찾는 일정이 많아요. 그렇다 보니 올해 순방 때도 국제 연구개발에 투자한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 같아요. 결국 글로벌 연구개발비 증액은 순방용 생색내기가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죠.”

한 연구원이 냉소적으로 얘기했다. “과학기술 현장을 잘 모르고 연구개발 예산을 삭감한 대통령이 뭘 알고 그랬겠어요? 이렇게 뚱딴지 같은 정책이 나올 때는 천공 강의를 봐야 한다고 하더군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지난해 10월1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 국정감사에서 윤 대통령 부부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역술인 천공이 거론됐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천공이 같은 해 1월 ‘한국에는 과학자가 필요 없다. 외국에서 발표한 과학 논문을 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 유튜브 영상을 틀었다. 김 의원은 “연구개발 예산 삭감 배경을 놓고 ‘우리나라에 과학자는 필요 없다’고 주장한 천공이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온라인에 퍼지고 있다”며 “대통령과 정부가 연구개발 삭감 의사결정 과정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으니 이런 소문이 도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안보와 기술주권이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연구개발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도 크다. 이상근 선임연구원은 “우리가 같이하고 싶어 하는 선진국의 연구진은 쉽게 기술이나 실험 성과를 공유하지 않는다. 충분한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무리하게 글로벌 알앤디를 추진하면 지식재산권·기술이전 등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경진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정책기획실장은 “미국 나사나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같은 유명 연구소와 협력할 수 있는 분야에서만 글로벌 연구개발비를 딸 수 있다는 우려가 국내 연구진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다른 나라 연구소들은 협상에서 ‘갑’이 되고, 우리는 ‘을’이 될 수밖에 없다. 국내 연구진이 불리한 협약을 맺고 기술은 이전받지 못하면 결국엔 글로벌 연구개발은 외화 유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달 말 ‘과학기술 국제협력 법제 진단과 제언’을 주제로 발간한 ‘이슈와 논점’ 보고서에서 “기존에도 여러 부처나 기관이 상호 협의 없이 외국의 유명 기관에 중복적으로 협력을 요청해 우리나라가 비용을 지원하면서도 협상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며 “정부가 우수 연구진과의 협력(만)을 강조하면 역선택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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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24일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시작 전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노조원들이 연구개발 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팻말을 들었다. 연합뉴스

 “원천기술·안전 등 공익적 연구 끊길 판”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삭감은 과학계 생태계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당장 대학원생과 박사후 연구자 등 과학기술계 약자들이 볼 피해가 크다. 연구개발 예산은 재료·장비·시약에 들어가는 연구비, 연구자 인건비, 연구소를 운영하기 위해 지원하는 간접비로 쓰인다. 연구비와 간접비를 줄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결국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 이 경우 예비 연구자들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연구원은 “이전에 20명이 한팀이 되어서 연구했다면 예산 삭감으로 5명은 다른 팀으로 내보내거나 계약을 중단해야 한다. 육아휴직 같은 걸 제안하는 사례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예비 연구자들은 고용에 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한 연구원은 “우리 팀 연구 프로젝트는 지난해 40억원의 예산이 배정됐는데 올해 4억원으로 삭감됐다. 연구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전했다.

이상근 선임연구원은 “예산이 삭감되면 연구자들은 연구에 집중하기보다 인건비를 마련하기 위해 신규 과제 수주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 등은 새해 들어 기존의 ‘우수연구’ 10%, ‘생애기본연구’ 20% 연구비를 일괄 감액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새 연구비는 지난해 3159억6천만원에서 올해 4690억3800만원으로 크게 늘렸다. 기존 연구 지원을 줄이고 신규 연구 지원을 늘리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이다. 이경진 정책기획실장은 “미국·독일같이 과학기술이 발달한 나라는 연구 환경과 연구자들 처우가 좋다”며 “연구원들이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성취가 가능한 곳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이번 예산 삭감은 이공계 기피 현상을 낳고, 결국 국가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재료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현장의 연구원 대부분은 카르텔이라는 뜻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생뚱맞게 여겼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힘없는 연구자들에게 떠넘기면 제대로 된 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이번 카르텔 논란으로 연구원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주목받지 못하는 기초과학 연구는 소외되고 국가 연구개발 프로그램에 도움을 받던 중소·벤처기업도 타격이 예상된다. 안철우 한국재료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삼성·엘지·현대차 같은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연구소를 운영하기에 국가 연구개발비 삭감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출연연 소속 연구원들은 중소·벤처기업과 손잡고 기술을 상용화하는 연구개발에 특화돼 있다. 예산이 줄어들면 이런 협력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조재형 한국재료연구원 책임연구원도 “정부는 출연연의 연구개발을 비효율로 여길지 모르겠지만, 출연연의 많은 연구진은 돈이 안 되거나 시장에서 외면하는 연구를 한다.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연구를 출연연에서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상근 선임연구원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선 범죄 사전예측과 징후감지 인공지능 기술 등을 개발하고 있고, 다른 정부 산하 연구소에선 핵융합 관련 연구나 코로나19 백신 연구 등도 수행한다”며 “이런 기초·원천 기술, 재난안전에 관한 연구는 당장 돈은 안 되지만 공익과 국민 안전을 위해 반드시 수행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예산 삭감으로 기존에 투입한 연구개발비가 매몰 비용으로 발생하고 연구 명맥이 끊길 가능성도 커진다. 이상근 선임연구원은 “특히 곧바로 성과가 나오지 않는 기초과학 분야는 실험장비 가동 중단과 구조조정으로 연구가 끊길 우려가 크다”며 “정부는 효율이란 측면에서 짧게만 보지 말고, 한국 과학기술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길게 보고 정책을 만들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문성모 연총 회장 인터뷰 

“진짜 뛰어난 기술은 오랜 연구에서 나오는데…”

문성모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 회장. 정혁준 기자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연총)는 22개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근무하는 박사급 중진 연구원 260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된 단체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을 주제로 지난 5일 경남 창원의 한국재료연구원에서 문성모 연총 회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연구개발 예산이 결국 삭감돼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삭감된 예산은 4조6천억원이고 출연연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예산은 2조8천억원입니다. 과제당 1억원의 연구개발비가 든다고 치면 3천여개 가까운 과제를 연구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선 연구비·연구인력·인프라가 필수입니다. 예산 삭감으로 이 세가지가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 가운데 걱정되는 것은 무엇보다 연구인력입니다. 연구개발 예산 삭감은 연구원의 자율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가 지속되면 우수한 인력들이 연구를 꺼리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정부는 연구개발 예산 삭감이 과학계의 카르텔 때문이라고 밝혔는데요.

“카르텔은 같은 업종의 기업이 서로 협정을 맺어 독점하는 것을 말하죠. 연구원들은 비슷한 분야에서 같이 연구할 때가 많아요. 그래야 기술을 융합할 수 있고, 서로 상승작용도 있으니까요. 정부의 논리로 보면 이것도 카르텔이 되는 겁니다. 무엇보다 카르텔은 힘 있는 쪽이 힘을 바탕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거죠. 하지만 연구원들이 무슨 힘이 있나요? 결국 카르텔은 예산을 삭감하기 위한 논리인데, 전혀 타당성이 없다고 봅니다.”

―노벨상은 기초과학 분야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요. 예산 삭감이 기초과학 분야에도 영향을 미칠까요?

“외국에서 노벨상을 받은 연구진은 오랫동안 한 분야에 몰입해서 연구한 분들입니다. 집중적으로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새로운 걸 찾아내고 뛰어난 기술을 발전시키는 겁니다. 지금처럼 예산이 불확실하고 톱다운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하면 노벨상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체 연구개발비는 줄였지만, 글로벌 연구개발비는 늘렸는데요.

“글로벌 연구개발 역시 현장과 소통하지 않고 추진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정부나 관료가 무턱대고 하자고 해서 연구자들이 따라가지는 않습니다. 연구개발은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게 중요해요. 급조해서는 부작용이 생깁니다. 잘못된 선택과 집중은 위험도가 더 크기 때문이죠. 과학계에는 여러 학회가 있고 출연연에도 전문가가 많습니다. 현장에서 이런 논의와 토론을 거쳐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게 좋겠습니다.”

―정부는 연구과제를 상대평가해 하위 20%를 구조조정하겠다고 밝혔는데요.

“그렇게 상대평가를 한다면, 이미 나온 기술이나 외국 논문에 나온 연구 위주로만 진행될 우려가 있습니다. 좋은 평가를 받기 쉬운 연구, 성공 가능성이 큰 연구만을 할 수밖에 없어요. 새로운 연구, 도전적인 연구, 실패할 수 있는 연구는 꺼리게 되죠. 진짜 뛰어난 기술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연구와 시간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연구에서 나오는데 말이죠.”

―그러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관리자 마인드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하위 20%를 구조조정을 하는 게 아니라 상위 20%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수한 연구개발이 나오고 나머지 80%도 악착같이 노력합니다. 이런 선순환을 만들어나가는 게 제대로 된 과학기술 정책입니다. 구조조정이 아니라 연구자 명예를 높여주는 게 먼저입니다.”

―정부에 바라는 말이 있나요?

“대통령을 포함해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을 담당하는 관료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정부나 연구자들 모두 기술 개발과 이를 통한 국가경쟁력 향상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습니다. 정부와 연구자는 이런 목표를 함께하는 파트너라고도 할 수 있죠. 연구는 물론 사업을 하더라도 파트너끼리 소통하고 손발을 맞춰야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정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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