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아침 원하는 홍콩·대만·중국 민중들…친중, 친미 강요 말라
중화권 새해 정세
지난해 12월 치러진 홍콩 구의회 선거는 역대 가장 낮은 관심(투표율 27.54%, 199만표) 속에서 치러졌다. 오색찬란한 투표 독려 이벤트에도 반응은 싸늘했다. 2019년 구의회 선거가 역대 최고의 투표율(71.23%)을 기록했던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결과다. 당시 친중 건제파 후보들의 득표수가 120만표였으니 민주파를 지지한 과반수 시민들은 사실상 ‘보이콧’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좌파 정당 사회민주연선 활동가들은 선거를 비판하는 캠페인을 펼치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홍콩 민주주의와 대만 선거
2019년 선거에서 민주파 정당들은 18개 구 중 17개 구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민주파 선거연맹에 함께한 후보라면 깃발만 내걸어도 승리한 사례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몇년 사이에 홍콩의 정치 환경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국가보안법 이후 사회운동 공간이 축소됐고, 범죄인 송환조례 반대운동에 앞장섰던 활동가들은 구속되거나, 망명길에 올랐다. 민주파 정당들의 활동이 사실상 중단됐고 의회 노선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됐다.
제도적 장벽도 높아졌다. 구의회 의원 직선 비중이 20%로 현저히 축소됐고, 그나마 선거에 출마하려면 지역구의 이른바 ‘삼회’(분구위원회·범죄소탕위원회·소방위원회) 소속 회원 3~6명의 지명과 등록 유권자 50명의 추천이 필요하다. 이 삼회는 관변 풀뿌리 조직이어서 친정부 활동을 하지 않고서는 이들의 지명을 받기 어렵다. 민주파 정치인의 출마 기회가 봉쇄된 셈이다. 실제 민주당에서 출마 의지를 밝힌 6명이 자신의 정강과 인적 사항 등을 다수의 ‘삼회’ 회원들에게 발송했지만, 지명 최저기준인 3명도 확보하지 못해 후보 등록에 실패했다. 다른 민주파 정당이나 중도 정당들도 처지는 다르지 않다. 출마한 모든 후보가 중앙정부에 친화적이니, 민주파를 지지하던 시민들에겐 투표할 이유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물론 정치적 이견을 차단한다고 해서 저항이 봉쇄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모순의 제도적 표현이 가로막히면 제도 바깥에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홍콩 상황은 1월13일에 선거를 치르는 대만 정치와도 연결돼 있다. 2020년 민주진보당 소속 차이잉원 총통의 재선은 홍콩 상황에 과잉대응을 한 중국공산당 덕을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콩 시민들의 범죄인 송환조례 반대운동에 중국 정부가 대대적인 탄압에 나서자 대만 정세도 들썩거렸고, 2019년 2월까지만 해도 국민당 우세로 뒤집혀 있던 민진당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렸다. 이런 변화는 대만 국립정치대학 선거연구센터가 매년 실시하는 정체성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는 자신의 정체성을 ‘대만인’으로 여긴 응답이 5년 내내 하락하고, ‘중국인이자 대만인’이라고 답한 비율이 증가하고 있었다. 한데 2019년을 기점으로 이 추세는 역전됐다. 홍콩의 변화가 대만의 중화 정체성을 옅게 만든 것이다.
대만엔 수천년 동안 오스트로네시안계 사람들이 살았고, 네덜란드-청-일본에 의한 식민통치를 경험했다. 중국공산당 역시 1935년에는 ‘대만 독립’을 지지한 바 있고, 1943년까지도 대만을 외국으로 지칭했다. 이처럼 복잡하게 중첩된 역사를 ‘통일’이라는 손쉬운 답으로 정리하긴 어려워 보인다.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군사적으로 겁박하는 것은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중국 내 여론이 대만에 호전적일 것이라고 진단하는 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중국의 평범한 민중은 대만에 폭격을 가해 점령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는다. 2013년, 드물게도 이 문제에 대한 중국 내 여론조사가 이뤄진 적 있다. 당시 판신신 대만대 연구원 등의 조사에 응한 2천여명의 중국 시민들 중 무력을 통한 통일을 지지한다고 답한 사람은 6%에 불과했다. 대만 여론 역시 답이 보이지 않는 ‘중국’과의 관계 설정 문제에 대해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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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민주주의 강조’
2022년 11월 중국 전역은 제로코로나 정책에 항의하는 백지시위 폭풍우에 휩싸인 바 있다.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시진핑 3연임이 결정된 지 불과 몇 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베이징과 상하이를 비롯해 100여개 대학에서 학생 시위가 발생했다. 중국 정부는 제로코로나 봉쇄 정책을 중단해 불만을 누그러뜨려야 했다.
지난해 중국은 기대했던 만큼의 경제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부동산 개발 기업들의 잇따른 유동성 위기가 이어졌고, 수출입 실적은 저조했다. 금융시장 역시 약세 흐름을 벗어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모습을 이어갔다. 이는 일자리 상황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국가와 기업이 고용 불확실성의 부담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면서 노동유연성이 심화되고, ‘장시간 알바’(长兼职)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지난해 12월21~2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모든 정치국원이 참석한 가운데 민주생활회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민주적 중앙집중제에서 민주주의와 집중은 상호보완적”이라며 “당내 민주주의를 통해 지혜를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진핑의 연설에서 ‘당내 민주주의’가 등장한 것은 2019년 이후 처음이다. 반면 빈번하게 등장하던 “위대한”이나 “100년에 없는 대변동”과 같은 표현은 크게 줄었다. 같은 달 26일 마오쩌둥 탄생 130주년 연설에서도 시 주석은 “인민에 의한”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당이 대중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물론 ‘당내 민주주의’를 강조한다고 해서 그것이 커다란 개혁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런 강조는 오히려 위기관리 능력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드러내고, 정치적 불안정성을 감축하기 위한 노력에 가깝다.
중화권 정치의 향배는 여전히 대중여론과 사회운동에 있다. 주거권·노동권 위기에 놓인 홍콩 시민들은 민주주의적인 권리를 원하며, 전쟁 위기에 놓인 대만 시민들은 군비 증강이나 권위주의 정부가 아니라 평화롭고 평범한 아침을 갈망한다. 14억 대륙 민중도 마찬가지다. 이런 위기가 한반도와도 연결돼 있다고 여긴다면, ‘말걸기’와 연대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신냉전 담론이나 전후질서 붕괴론 같은 고담준론의 귀결이 친중이나 친미뿐이라면, 사회운동과 평범한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전쟁 위기를 줄이기 위한 평화 여론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세의 불가역성만 강조하고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고 겁박하는 것은 전쟁 위기와 불평등을 고조시킬 뿐이다.
동아시아 연구활동가
플랫폼C 활동가. 동아시아 이야기를 씁니다. 각 사회의 차이를 이해하고, 같은 꿈을 지향하자(異牀同夢)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상을 품은 동아시아의 꿈(理想東夢)이라는 뜻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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