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 불합리한 명령과 복종…일본군 전원, 옥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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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이었을 때, 고참이 입을 벌려보라고 했다.
군인은 어떤 명령에도 복종해야 하는 것일까? '전원, 옥쇄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면 그것에 따라야 하는 것이 군인의 운명인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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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이었을 때, 고참이 입을 벌려보라고 했다. 무얼 하려는지 몰랐지만 잔뜩 얼어 군말 없이 입을 벌렸다. 고참은 분무형 파리약을 입안에 뿌렸다. 얼차려나 체벌도 아니었고 그냥 무료함을 달래려는 장난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만히 있을 일은 아니었는데 어찌해야 하는지 몰랐다. 장교들에게 알리거나 소원수리를 했으면 조치가 되었을까? 저항을 해볼 엄두도 못 냈다. 단순히 무료함을 메꿀 이유로 벌이는 일탈을 명령이라 여기며 견뎌야 하는 쫄병의 처지는 처량하기 짝이 없다.
세월은 흘렀고, 올해 첫 훈련병으로 육군훈련소에 입소하는 아이를 떨구어주려고 논산 훈련소에 들렀다. 여러가지 감정이 든다. 부대 안에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카페와 빵집이 있다.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정돈된 부대. 요즘 군대는 월급이 최저 시급에 못 미치긴 하지만 많이 올랐다. 우리 때는 기껏해야 몇천원 받던 것이, 병장 월급은 125만원이 되었다. 내년부턴 150만원이라고 한다. 훈련소에서도 주말에는 한시간씩 자기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다. 아이에게 첫 주말에 전화를 받았는데 내무반에 침상이 아니라 이층침대가 있다고 한다. 겉모습은 확실히 새로워진 것 같은데 쫄병은 옛날보다 사람 대접도 받는 것일까?
군대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저 머릿수로 군사력을 뽐내서 전쟁을 억제하는 역할일까? 우리나라가 휴전 상태이고, 우크라이나에서,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것보다는 엄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군대의 궁극적인 목적은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명령에 대한 복종을 요구한다.
의문은 남는다. 군인은 어떤 명령에도 복종해야 하는 것일까? ‘전원, 옥쇄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면 그것에 따라야 하는 것이 군인의 운명인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남태평양에 주둔한 일본군 500명. 싸움도 하기 전에 이미 지옥이다. 작업하다가 넘어지는 나무에 깔려 죽고, 배고파 삼킨 물고기 비늘이 역방향이라 빼지 못해 죽는다. 강에서 튀어나온 악어도 호시탐탐 사람을 노린다. 거기에 간헐적인 공습까지 당하면서 동료들이 하나둘씩 목숨을 잃는다. 중노동에 배를 곯아 전염병에도 취약한 상황. 이런 대화가 오간다.
“육탄 공격으로 나가는 것밖에는 방도가 없다.” “승산이 없는 상황인데 전멸할 각오로 돌격할 순 없습니다.” “하루라도 이틀이라도 더 지킬 수 있다면, 전원 옥쇄하여 돌격하는 편이 그 얼마나 죽는 보람이 있겠나.” “옥쇄한들 적군에게 얼마나 타격을 줄 수 있을지….” “그럼 자네는 나와 함께 죽지 못하겠다는 겐가?” “후방에선 10만 장병이 무위도식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째서 우리만 죽어야 합니까?” “이 고지를 지키는 것은 병단장 각하의 명령일세. 자네는 잠자코 나와 함께 죽으면 되네.” “옥쇄도 개죽음일 수 있습니다.” “옥쇄는 내 명령이다.”
‘나는 어째서 이런 괴로운 임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나’라는 노래를 부르며 만세돌격을 감행하고 살아남은 81명까지 다시 죽음으로 몰아넣는 지휘부. 책의 끝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누군가에게 말 한마디 못 한 채 그저 잊혀 사라진 병사들의 주검들로 펼쳐진 지옥도로 끝난다. 논산에서 돌아오면서, 올해의 첫 소망으로 군대에서 어떤 불합리한 명령이나 강요가 없기를 바라본다. 세상 누구도 옥쇄를 명령할 결심을 하거나 그것을 받아들일 결심을 하지 않는 세상이 되기를 희망한다.
만화 애호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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