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혁, 연기로 세운 빌딩 '우뚝'…오르니 보이는 것들 [인터뷰M]
"저는 계단으로 치면 5층에서 20층을 단번에 올라온 느낌이에요. 중간 과정이 없다고 생각해서, 경험을 많이 쌓으려고 했어요."
배우 배인혁은 '라이징 스타' 이전에 '열일의 아이콘'이라고 불리던 과거를 문득 회상했다. 드라마 세 작품에 영화 한 작품, 데뷔 5년 차에 모두 주연을 맡게 되는 기회가 당연히 흔치 않기에, 능력을 증명하려고 했던 그다. 그리고 이듬해 방송된 '열녀박씨'는 그가 얼마나 성장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가늠자가 됐다.
최근 배인혁은 iMBC연예와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MBC 금토드라마 '열녀박씨 계약결혼뎐'(극본 고남정·연출 박상훈·기획 장재훈, 김성욱, 이하 '열녀박씨') 종영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열녀박씨'는 죽음을 뛰어넘어 2023년 대한민국에 당도한 19세기 욕망 유교걸 박연우(이세영)와 21세기 무감정끝판왕 강태하(배인혁)의 금쪽같은 계약결혼 스토리를 그린 드라마다. 동명의 웹소설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작가 김너울)'을 원작으로 한 작품.
배인혁은 감정보단 논리를 우선시하는 철벽남이자 SH그룹 부대표 강태하 역을 맡았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와 타고난 심장병으로 인해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곁을 내주지 않고 '자발적 모태솔로'로 살아온 인물.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조선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별난 여자 박연우를 만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매 작품마다 부담을 갖고 시작하지만, 이번 '열녀박씨'는 특별했다는 배인혁. 사극과 현대극을 오가며 두 장르를 동시에 소화해야 함은 물론, 1인 2역과 유사한 연기도 펼쳐야 했다.
"선배님들께 폐 끼치면 안 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노력했단다. "인물의 변화하는 성격을 연기하는 게 어려웠어요. 한 번에 바뀔 수는 없으니까요. '연며든다'고 해야 할까요, 조금씩 연우에게 스며드는 '입덕 부정기'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드라마가 12부였다 보니까 잘게 잘게 쪼개야 했죠."
극 초반 차갑고 딱딱한 '안드로이드' 강태하보다는 연우에 푹 빠진 애교 많은 태하가 자신과 어울렸다고. "아무래도 후반부 태하와 조선시대 태하가 저와 싱크로율이 높았던 것 같다. 후반 태하는 마음 열리는 사람이나 친한 친구들이 있으면 밝고, 텐션도 좋고 애교도 가끔 부리는 게 닮았다"며 웃었다.
함께 연기 호흡을 맞춘 이세영은 나이 차는 적지만, 배인혁에겐 대선배다. 특히 드라마 '왕이 된 남자', '옷소매 붉은 끝동' 등 자타공인 '사극 여신'으로 눈도장을 찍은 이세영에게 배운 점도 많았다고.
"이 직업을 오래 하신 분이고, 노하우도 많잖아요. (시작 전) '어떻게 해야 편해질까' 생각하며 긴장도 많이 했는데, 세영 누나가 그런 긴장을 느끼지 못하게 해 줬어요. 성격도 너무 좋은 배우예요. 친구처럼 대해주고, 내 생각을 존중해 주고 의견을 먼저 물어 봐주고. 그런 부분에서 자신감도 생겼고요. 덕분에 편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배인혁은 문득 데뷔 초를 회상했다. 지난 2019년 웹드라마 '러브버즈'로 데뷔한 배인혁은 드라마 '엑스엑스', '간 떨어지는 동거', '멀리서 보면 푸른 봄', '왜 오수재인가', '치얼업' 등에서 주연으로 활약하며 안방극장에 눈도장을 찍었다. 이번 작품 '열녀박씨'를 통해 더 다양한 연령층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었다는 그다.
배인혁은 "'열녀박씨' 전에는 또래 분들이 많이 알아봐 주시고 그랬는데, '열녀박씨'는 더 다양한 연령층에서 사랑해 주시는 것 같더라. 식당 가면 아저씨 아줌마들이 알아봐 주셨다. 그런 경험이 많지 않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가족들의 반응 역시 더 뜨거웠다는 후문이다.
그가 초창기와 비교해 달라진 점은 연기에 대한 이해도다. "현장감을 느끼는 게 많이 달라졌다. 처음엔 뭐가 뭔지, 풀샷을 찍는지 바스트를 찍는지 잘 모르고 연기를 했다면, 이젠 이해도가 많이 생겼다. 내가 필요한 게 뭔지 알아야 된다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많이 바꼈고, 작품을 할 때마다 성장하고 있다. 재작년은 그래서 작품을 많이 했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처음 시작할 땐 막연하게 시작했다. '난 할 수 있어, 이런 사람이 될 거야' 이렇게 시작했다면, 점점 한 작품씩 할수록 무식하고 막연한 것들이 사라지는 것 같다"며 "나쁠 수도 있고, 좋을 수도 있는데 현실적이고 냉정하게 생각하게 된다"고 달라진 점을 말했다.
연기에 대한 욕심이 열일의 원동력이었을까. 배인혁은 재작년 드라마 세 작품을 거뜬히 소화해 냈다. "재작년은 내 욕심 하나 때문에 그렇게 했는데 힘들더라"며 멋쩍게 웃었다.
"이게 내 욕심으로 안 되는 것도 있구나. 쉼도 실력이구나 느꼈어요. 체력이 안 되면 현장에 가서 쏟아부을 수 있는 게 100에서 80이 되는구나, 똑똑하게 해야 되는구나 느꼈죠. 작년에는 '열녀박씨'에 최대한 집중했어요. 지금도 쉬지 않고 다양하게 하고 싶은데, 내 욕심만으로는 안되는구나 생각했었죠."
오래 고민해 온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전 데뷔한 지도 얼마 안됐고, 주인공 롤을 맡을 때까지는 상대적으로는 기간이 짧았어요. 계단으로 치면 5층까지 올라왔다가 20층에 와버린 느낌이예요. 1층부터 20층까지 차곡차곡 올라오신 분들은, 올라올 떄의 힘듦을 알잖아요. 저는 그 중간과정이 없다고 생각해서 경험을 쌓으려고 해요."
빌딩으로 빗댄 그의 향후 목표는 몇 층짜리 빌딩이 되어있을까. "잘 모르겠다. 난 아직 완공되지 않은 빌딩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몇 층까지 갈지 모르겠다. 20층이 끝일 수도 있다"며 웃은 그는 "앞으로 연기를 계속할 것이기에, 내가 하는 것만큼 이 빌딩이 만들어지지 않을까"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iMBC 백승훈 | 사진 iMBC DB | 사진제공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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