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나이 들수록 '행복감' 느끼는 이유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4. 1.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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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새해를 맞으면 설렘도 크지만 또 한 살 더 먹었다는 데서 오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다. 나이가 들어가고 노화가 찾아오는 것을 달가워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좋은 소식이라면 적어도 ‘행복’에 있어서는 나이를 먹는 일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의외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젊은 사람들에 비해 더 높은 행복도를 보고한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특히 미혼 여성들의 경우 40대를 넘어가며 행복도가 가파르게 상승하여 20대에 비해 50%나 높은 행복도를 보이는 현상이 보고된 바 있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어렸을 때는 가진 것도 없고 늘 불안하기만 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불안이 없어진다고 내일이 오늘보다 더 행복할 거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한국의 경우 노인 빈곤율이 심각하게 높다는 문제가 존재함에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행복도가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최근 미국에서 25-95세 사이의 약 2000명을 대상으로 10년 간 추적 조사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우선 나이가 들면 별로 즐거울 게 없다는 생각과 달리 긍정적 정서는 20~50 대까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이후 다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자의 경우 오히려 긍정적 정서를 점점 더 ‘쉽게’ 느끼게 된 것 같다. 어렸을 때는 평소 하기 어려운 특별한 것을 하고 남들이 가보지 않은 특별한 곳을 가야만 재미있고 의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 자신을 더 자세히 알게 되고 나와 잘 맞는 사람과 환경을 더 잘 파악하고 나니 꼭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지금은 아무런 유난스러움 없이도 공원에 홀로 앉아서 책을 읽거나, 새로운 산책로를 발견하거나,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마음이 잘 맞는 친구를 만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하다는 감각을 느끼고 있다. 

한 십년 전만 해도 남들은 다 유럽 배낭여행을 가고 핫플레이스들을 가는데 나만 안 갈 수는 없다는 FOMO (fear of missing out, 나만 좋은 경험을 놓치는 것 같다는 두려움)에 휘둘리며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다들 하니까 해야 할 것 같다는 의무감에 시달리고 막상 해보니 별 거 없다는 실망감이나 공허함에 흔히 시달렸던 것 같다. 그러면서 재미있는 게 별로 없다는 감각을 느꼈던 것 같다. 타인의 시선이나 인정 없이도 순전히 내가 좋아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재미란 별 게 아니며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결과 어렸을 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일상 생활에서도 충분히 많은 재미를 느끼고 있다. 

연구에서도 나이가 들수록 ‘항상 슬프다’거나 ‘어떤 것도 나를 즐겁게 해주지 못한다’는 생각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가 들수록 부정적 정서 또한 대체로 감소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정서상태가 “평온”해진다는 것이다. 

아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자기 자신을 검열하고,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팍팍한 기준을 들이미는 일들이 줄어드는 반면 자기 자신과 함께 평온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알게 되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경험이 쌓이다 보면 무엇이 내 행복에 있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분별하는 능력도 더 좋아지고 의미 없는 것들보다 나에게 의미 있는 것들을 추구하는 지혜 또한 늘어날 것 같다. 

또한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작은 일에도 크게 상처받거나 쉽게 좌절하는 일이 조금 덜 일어나기도 한다. 경험을 통해 이 정도의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님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을 극복해왔던 경험이 많을수록 사람은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인식은 흔히 부정적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물론 경제력이나 건강 등이 걱정될 수 있지만 그것이 나이듦의 전부는 아니니까. 흔히 발달은 어렸을 때만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변화와 시기에 따른 과업을 거치며 계속해서 발달해 간다. 내일은, 내년에는 또 어떤 내가 되어 있을지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으로 새로운 시간을 맞이해보자. 

Charles, S. T., Rush, J., Piazza, J. R., Cerino, E. S., Mogle, J., & Almeida, D. M. (2023). Growing old and being old: Emotional well-being across adulthood.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25(2), 455–469. https://doi.org/10.1037/pspp0000453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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