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막대기 하나로 알아낸 지구의 크기
지금이야 지구가 둥글단 증거가 많이 밝혀졌지만 예전에는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단 걸 어떻게 알아냈을까요.
● 과거엔 지구가 편평했다고 믿었다?
저는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별과 우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매년 비행기를 타고 해외 학회에 가서 여러 과학자를 만나고 있어요. 학회는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전 세계의 과학자가 한자리에 모여 각자 새로 밝혀낸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행사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모인 과학자들은 학회에서 서로의 연구를 공유하며 친해지고 연구를 협업하기도 해요.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는 것은 오늘날에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불과 15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유럽이나 미국까지 가 본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1519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세계 일주에 성공하기 전에는 그 누구도 지구를 제대로 한 바퀴 돌아본 적이 없었고요. 심지어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18세기 초 조선에서 만들어진 ‘천하도’라는 지도를 한번 보세요. 이 천하도에 그려진 세상의 모습은 넓고 편평한 원반 모양입니다. 이를 통해 옛날 사람들은 지구가 편평하다고 생각했으리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천하도는 그 당시 알려진 세상 전체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지도에 그려져 있는 땅과 바다의 모양, 지도에 표시된 나라의 이름과 위치도 모두 실제와는 달라요.
천하도는 이 세상 전체를 직접 탐험하지 못한 채 전설이나 다른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서만 세상의 모습을 상상한 옛날 사람들의 생각이 담긴 지도입니다.
● 나무 막대기 하나로 밝힌 지구의 크기?
옛날 사람 모두가 지구는 편평하다고 생각한 건 아닙니다. 2400년 전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집트에서 잘 보이는 별이 훨씬 북쪽에 있는 다른 지역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냈어요. 그리고 이런 일은 땅이 공 모양으로 휘어져야만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 월식이 일어날 때 지구가 달에 드리우는 그림자가 둥근 모양인 걸로 보아 지구가 공 모양일 거라고 추측했습니다.
약 100년 후 학자들은 공 모양을 가진 지구의 크기를 아주 정밀하게 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철학자 에라스토테네스는 당시 세계에서 책을 가장 많이 갖고 있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관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이집트 남쪽 끝의 아스완이라는 도시에 관한 신기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 도시에는 깊은 우물이 있는데 1년 중 낮이 가장 긴 날인 하짓날 정오에 이 우물 안쪽을 들여다보면 그 우물에는 전혀 햇빛이 들지 않고 깜깜하게 보인다는 것이었어요.햇빛이 비치는 방향과 우물이 뚫린 방향이 완전히 같아서 햇빛이 우물을 보는 사람으로 완전히 가려지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습니다.
에라스토테네스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지내던 알렉산드리아에서는 하짓날 정오에 햇빛이 어떻게 비치는지 궁금해졌어요. 그는 당시 땅의 크기를 정밀하게 재던 전문가에게 그림자를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기술자는 땅 위에 곧은 막대기를 하나 세우고 그림자의 길이를 쟀어요. 하짓날 정오의 알렉산드리아에 비치는 햇빛이 막대기와 이루는 각도는 약 7였습니다.
에라스토테네스는 이 사실을 통해 지구의 중심에서부터 알렉산드리아와 아스완에 각각 선을 그으면 두 선이 이루는 각도도 역시 7이 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 각도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아스완까지의 거리를 안다면 지구의 둘레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에라스토테네스가 계산한 지구의 크기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값과 고작 2%밖에 차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정확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현재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빌 수 있는 건 옛날부터 아리스토텔레스나 에라스토테네스 같은 학자들이 지구의 모양과 크기를 밝혀냈기 때문입니다.
※필자소개
홍성욱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우주론과 외계생명 등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로, 우주의 가장 큰 구조물인 우주거대구조를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인공지능을 이용해 연구하고 있다. 현재 한국천문연구원 이론천문센터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관련기사
어린이과학동아 1월 1일호, [천문학자] 다 같이 돌자, 지구 한 바퀴
[홍성욱 한국천문연 선임연구원,박동현 기자 none@donga.com,idea10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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