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로 읽는 과학] 고대인 유골에서 발견된 다발성 경화증의 기원

박정연 기자 2024. 1.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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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이번주 표지로 유라시아 평야에 서있는 고대 묘지의 모습을 실었다.

먼 옛날 유라시아와 북유럽 일대를 누볐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의 주인에게서 얻은 유전자를 바탕으로 이들의 이주 경로를 재구성했다.

분석 결과 얌나야족은 5000년 전 유라시아 평야 지대에서 북유럽으로 이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얌나야족이 가진 다발성 경화증 유전자는 과거에는 이들의 생존을 도왔을 것으로 추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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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제공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이번주 표지로 유라시아 평야에 서있는 고대 묘지의 모습을 실었다. 과거 유라시아에서 살았던 유목민의 무덤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조형물 '쿠르간'이 보인다. 배경에 펼쳐져 있는 넓은 초원에는 당시 유목민의 생활상과 밀접하게 관련됐던 말 등의 가축도 찾아볼 수 있다.

과학자들이 고대 유라시아인들의 유전자 데이터를 조사해 현대 유럽인에게서 나타나는 질병의 기원을 찾아냈다. 질병을 치료하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에스케 빌레슬레프 덴마크 코펜하겐대 교수가 이끄는 국제공동연구팀은 고대 유럽인 1600여명과 현대 유럽인 41만명의 유전자 정보를 비교 분석한 결과를 4편의 논문에 걸쳐 10일(현지시간)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오늘날 북유럽인 대부분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얌나야족'의 유골에 주목했다. 먼 옛날 유라시아와 북유럽 일대를 누볐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의 주인에게서 얻은 유전자를 바탕으로 이들의 이주 경로를 재구성했다.

이와 함게 얌나야족의 유전자와 현대 유럽인의 유전자를 비교해 각종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유전자 변이가 언제 등장했는지 살폈다. 현대인의 유전자 정보는 영국 바이오뱅크에 등록된 43만3395명의 유전자 정보를 활용했다. 

분석 결과 얌나야족은 5000년 전 유라시아 평야 지대에서 북유럽으로 이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이들은 오늘날 유럽인에게서 흔한 질병인 다발성 경화증 유전자를 보유한 것이 확인됐다. 다발성 경화증은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으로 면역체계가 신체 조직과 세포를 공격하는 질환이다. 환자는 시력을 잃거나 말하거나 걷는 데 장애가 생긴다. 원인은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전적 요인에 따른 자가면역반응이 환자에게 주요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양인과 흑인에게선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특징도 있다.

얌나야족이 가진 다발성 경화증 유전자는 과거에는 이들의 생존을 도왔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들이 주식으로 삼았던 양이나 소를 통해 전파되는 전염병에 걸리지 않도록 면역력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고기나 우유를 섭취하며 얻을 수 있는 감염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실제로 이 변이가 있던 얌나야인은 그렇지 않은 얌나야인보다 자손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때 발생한 유전자 돌연변이는 오늘날 다발성 경화증의 발병 위험을 높이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됐다. 위생적인 환경이 갖춰지면서 감염병 위험은 줄어든 가운데, 남은 유전자 돌연변이가 자가면역질환에 취약한 면역체계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됐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는 다발성 경화증의 뿌리를 이해하고 더 나은 치료법을 찾는 데 통찰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현재 포트투갈과 시베리아 사이, 노르웨이와 이란 사이에 거주했던 조상들의 유전자 분석도 진행 중이다. 다발성 경화증 뿐만 아니라 당뇨병이나 조현병 등 현대인이 앓고 있는 질환의 유전적 뿌리를 추정하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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