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이태원 특별법' 거부권 행사 숙고…쟁점은 '특조위' 구성·비용
특조위 92억 소요 추산…72억이 인건비
대통령실 "일단 당 논의"…한동훈 시험대
[서울=뉴시스] 양소리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여부를 두고 숙고 중이다.
12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요즘 아침 회의 때마다 (특별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방향을 정한 건 아니다"며 "공식적으로 거부권 행사 여부와 관련해 입장을 밝힐 단계 역시 아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국회에서 의결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은 법안이 정부에 이송된 후 15일 내다. 대통령실은 아직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거부권 행사를 논하기는 이르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내용을 검토하겠다면서도 "피해자의 구제에 관심이 없는 법안이다" "사회적 갈등만 조장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숨기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 "특조위, 오히려 피해 보상 길목 막아"
특별법에 따르면 특조위는 상임위원 3명을 포함해 11명으로 구성된다. 특조위원은 국회의장이 유가족 등 관련 단체와 협의해 3명을 추천하고, 여당(대통령이 소속되거나 소속됐던 정당)이 4명, 야당이 4명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결국 11명 중 7명을 야당과 유가족 단체 등이 추천하기 때문에 야당에 편향적인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게 대통령실의 입장이다.
특조위에 투입되는 비용도 대통령실이 고심하는 지점이다.
대통령실 고위급 관계자는 뉴시스에 "전례에 비추어 보면 결국 이태원 특별법은 진상규명이나 피해자 지원과는 무관하게, 일부 인사들을 위한 1년 6개월짜리 일자리 특별법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에서 언급한 '전례'는 세월호 특조위다.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된 후 특조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선체조사위원회를 운영하며 들어간 예산은 총 1313억이다. 이 비용 중 약 700억원, 절반 이상이 인건비와 기본경비로 쓰였다.
특히 특조위가 청구한 예산에는 체육대회, 동호회 지원, 직원들의 생일 케이크 비용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원 특조위의 경우 세월호 특조위보다 규모는 작지만 상당한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를 통과한 특별법에 따르면 특조위 직원 정원은 60명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특조위가 구성되면 2년 동안 96억여 원의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96억원 중 특조위 인건비가 72억원이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충분히 피해자들에 보상을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그런데 이렇게 많은 예산이 특조위 인건비로 쓰인다면 오히려 피해자들의 충분한 보상을 위한 길목을 가로막게 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일단 당에서 논의되는 것 볼 것"…한동훈 정치력 시험대
양당의 입장 차이의 핵심은 '피해보상(여)'이냐 '진상규명(야)'이냐다.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이태원 특별법이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의지라면 대통령실과 여당의 입장은 "그 비용으로 더 빠르게 피해자를 구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만희 국민의힘 사무총장이 대표 발의한 '10·29이태원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안' 역시 이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한 여권 관계자는 "500명 넘게 투입된 경찰 특별수사본부가 74일 동안 수사를 했고, 국회에서도 국정조사 특위가 55일간 운영됐다"며 "그때 나오지 않은 팩트가 특조위에서는 나오겠나. 시간 낭비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뉴시스에 말했다. 진상규명을 위한 작업이 충분히 이뤄졌고 이제는 실질적인 보상을 이야기해야 할 시점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야권과 유족의 입장은 다르다. 앞서 운영된 경찰 특수본은 수사 의지도 수사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특조위가 구성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일단 국민의힘은 당내 의견을 두루 청취한 뒤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정부는 당의 건의를 받아 (거부권 행사 여부를) 판단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당은 국민 여론을 더 들어보고, 의원들 의견도 듣고 판단할 것"이라고 이날 취재진을 만나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시험대에 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거부권 행사가 여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에서 총선을 앞두고 한 위원장의 정치력을 보여줄 판이 깔렸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정치 신인'은 한 위원장에 늘 붙어있는 꼬리표"라며 "이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신인답지 않은', 혹은 '역시나 신인'이라는 평가가 나올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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