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기 새벽' 혹한 마주한 석유화학…해 뜨기 전 변신해야 산다

최경민 기자 2024. 1. 13. 08: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슈속으로]
LG화학 여수 NCC 공장 전경/사진제공=LG화학

"지난해는 빙하기였고, 지금은 빙하기의 새벽이다."

이건종 효성화학 사장은 지난 10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24년도 석유화학업계 신년인사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석유화학 업계의 업황이 작년보다 올해 더 안 좋을 것이란 예측이었다. 이날 모인 130여명의 CEO 및 임원들의 생각도 같았다. 혹한의 추위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어쩌다 빙하기 접어들었나
지난해 석유화학 업계가 빙하기를 마주한 것은 '과잉 공급'의 영향이 컸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글로벌 에틸렌 증설은 약 4500만톤에 달하는데, 수요 증가는 2600만톤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고유가 속에 공급까지 폭발하자 수익성이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새해 석유화학 업계에 희소식이 전해지긴 했다. 불황이 지속되며 에틸렌 등 공급량이 줄어들 것으로 관측됐기 때문이다. S&P글로벌에 따르면 글로벌 에틸렌 신규 증설 규모는 2024년 160만톤, 2025년 670만톤, 2026년 780만톤 수준으로 분석됐다. 기존 예측(2024년 490만톤, 2025년 1060만톤, 2026년 1430만톤) 대비 대폭 감소했다. 연평균 460만톤 가까이 하향조정했다.
10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24년도 석유화학업계 신년인사회'
그럼에도 불과하고 석유화학 기업들의 표정은 어둡다. 근본적인 업황의 반전을 이끌기에는 부족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최영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증설 전망치 감소에도 업황을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며 "낮은 가동률, 높은 유가, 수요 성장률 둔화 때문"이라고 밝혔다.
◇수요 부진에 공급 과잉 구조는 견고
실제 올해 첫 주 석유화학 시황을 반영하는 NCC(나프타분해설비) 마진은 1톤당 176달러에 그쳤다. 역사상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2013~2022년 평균 마진이 1톤당 471달러였음을 미뤄볼 때 불황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지난해에는 매분기 1톤당 200달러 수준은 유지했지만, 새해들어 이 선마저 무너진 모습이다.
'수요 부진'과 '공급 과잉'이라는 기본 구조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특히 '홍해 이슈'가 엎친데 덮친 격을 만들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며 홍해를 지나는 상선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중동의 석유화학 기업들이 유럽이 아닌 아시아로 판매를 확대했고, 이것이 마진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전우제 KB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바이어들은 올 1분기부터 2025년까지 수요 부진을 예상하고 있다"며 "미국 역시 2024년 수출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고, 에틸렌을 연 100만톤 증설하는 베트남의 존재도 부담스럽다"고 밝혔다.
◇가장 춥지만, 동 트기 직전
극적인 반전이 없는 한 불황이 지속될 것이란 심리가 팽배하다. 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이하로 떨어지고, 금리 인하에 따라 수요가 회복되면서, 석유화학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급속하게 해 공급이 더 줄어야 업황이 상승 국면을 탈 수 있다.

이 모든 게 일어난다 해도 과실을 한국 석유화학 기업들이 온전히 다 받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중국 기업들의 범용 화학 제품 생산 능력 및 기술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에틸렌의 경우 2020~2022년 사이 글로벌 증설의 56%가 중국에서 일어났다. 프로필렌은 78%에 달했다. 같은 품질이라면 가격이 싼 중국 제품을 선호하는 현상이 지속될 게 유력하다.

SK지오센트릭이 세계 최초 플라스틱 재활용 종합단지인 울산 ARC(Advanced Recycling Cluster) 착공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SK그린캠퍼스에서 사전 기자간담회를 개최한 가운데 나경수 사장이 'SKGC 글로벌성장전략과 ARC 전반 계획'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임한별(머니S)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사업 구조조정'에 목을 매고 있는 이유다. 빙하기이지만, 지금 한계사업을 정리하고 변하지 않으면 미래 업황 반전의 시기가 왔을 때 상승세를 타기 힘들다. LG화학은 △배터리 소재 △친환경 소재 △혁신 신약 중심의 포트폴리오로 전환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배터리 4대 핵심소재(분리막·전해액·양극박·음극박)를 모두 다룰 수 있는 회사로 거듭나는 중이다. SK지오센트릭은 세계 최초 폐플라스틱 종합 재활용 단지 '울산 ARC'를 내년 완공한다. 효성화학 역시 의료용, 자동차 부품 등에 쓰는 고부가 폴리프로필렌(PP)에 기대를 거는 중이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빙하기의 새벽은 가장 추운 시기이기이지만, 금방 동이 트는 시기라는 뜻도 될 수 있다"며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최경민 기자 brown@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