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균 사건, 언론·수사 당국이 문제였다" 논란 지속
[파이낸셜뉴스]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우 고(故) 이선균씨(48) 사건과 관련해 봉준호 감독 등 문화예술인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피의사실 공표를 문제삼고 수사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이씨 사건과 관련 피의사실공표죄가 문제가 되고 있지만 헌법의 알 권리와 상충해 진전이 없는 상태다.
■"수사, 언론 문제 심각"
문화예술인연대회의(가칭)는 12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고(故)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이선균 사건 관련 수사 당국의 철저한 진상 규명과 보도 윤리에 어긋난 기사 삭제, 문화예술인 인권 보호를 위한 현행 법령 개정 등을 촉구했다.
봉준호 감독은 "고인의 수사에 관한 내부 정보가 최초 유출된 시점부터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기까지 2개월여에 걸친 기간 동안 경찰의 수사 보안에 과연 한 치의 문제도 없었는지 관계자들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가수 윤종신은 "언론과 미디어는 고인이 대중문화예술인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사생활을 부각해 선정적인 보도를 한 것은 아닌가"라며 "공익적 보도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기사 내용을 조속히 삭제하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문화예술인연대회의는 "이선균 배우의 안타까운 죽음을 마주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며 만들어진 단체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 영화·문화계 종사자 단체 29곳이 참여했다.
연대회의 측은 이날 성명서를 고인의 발인 후 2주가 된 시점에 맞춰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송강호 배우 등 2000여 명의 대중문화예술인도 연서명에 동참했다. 연대회의 관계자는 "피의사실 공표와 유출로 인한 여러 부당한 피해를 막기 위한 입법적 보완을 촉구하고자 국회의장에게 성명서를 전달할 예정"이라며 "언론의 자성을 촉구하기 위해서 경찰청과 KBS에도 성명서를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의사실공표, 알 권리 상충
논란이 되고 있는 피의사실공표 혐의는 사실상 '죽은 법'이 되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피의사실공표죄로 기소된 사건은 최근까지 단 1건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실제 법무부가 2019년 발표한 검찰과거사위원회의의 자료에 따르면 피의사실공표 사건은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1년간 347건이 접수됐지만, 기소 단계까지 진행된 사건은 0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피의사실공표죄는 형법 제126조에 근거한다. 범죄 수사를 담당하는 사람이 피의자를 기소하기 전에 관련 내용을 외부에 공개했을 때 적용된다.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공표하는 것뿐 아니라, 외부인 한 명에게라도 직무 중 알게 된 피의사실을 누설하면 법 위반이다.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문제는 수사기관이 이처럼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을 악용해 필요할 때에는 피의사실을 흘려 피의자를 압박하고, 반대로 언론 보도가 부담스러우면 취재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피의사실공표죄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알 권리'와 상충한다. 알 권리는 대한민국 헌법 제21조에 적시되어있다. 이같이 상충하는 지점이 명확한 피의사실공표죄이지만, 이 제도가 어떠한 가치를 보호하는지에 대한 해석은 학계에서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국가의 수사권을 중점적으로 보호한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라고 말한다.
피의사실공표죄가 한국사회에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2009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던 중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다. 이후 피의사실공표죄에 대한 피해자의 재정신청권이 보장됐고, 법 개정을 통해 제3자에 대한 재정신청권이 보장됐다는 것이 법조계의 설명이다. 재정신청권이란 검찰이 어떠한 사건 검찰을 불기소하더라도 고소인 등이 법원에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타당한지를 다시 묻는 것을 말한다.
일각에선 모호한 피의사실공표죄를 보완하려는 정치권 등에서 일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29일 피의사실공표를 명확히 하는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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