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건강] "반려동물 잃은 슬픔 1년넘게 간다…우울·불안·불면 동반"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최근 한 유명 유튜버가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을 극복하기 위해 2년 전 죽은 반려견을 복제했다고 밝힌 것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펫로스 증후군은 가족처럼 지내온 반려동물을 잃게 되면서 나타나는 슬픔, 상실감, 괴로움 등의 감정을 일컫는다. 펫로스로 인한 극심한 상실감과 심적 고통을 해소하고자 복제를 택했다는 게 이 유튜버의 설명이다.
동물 복제에 가장 크게 반발하고 나선 건 동물 보호단체인 동물보호연대다. 한 마리의 반려견을 복제하기 위해서는 난자를 제공하는 '난자 공여견'과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키는 '대리모견'의 대규모 희생이 뒤따라야 하는데, 동물보호 측면에서 볼 때 윤리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물보호연대는 "펫로스로 힘든 사람들의 감정을 이용하거나, 돈벌이를 위해 자행되는 동물 복제는 인간의 이기심이 생명 윤리를 벗어났음을 시사한다"며 반려견 복제 업체를 미허가 생산·판매업으로 사법당국에 고발했다.
결국 한 유튜버의 펫로스 증후군에서 비롯된 동물 복제 소식은 찬반 논란을 넘어 법적 논쟁으로 비화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번 사례를 떠나 국내에서 반려동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현실을 감안할 때 펫로스 증후군을 마냥 방치할 수 없다는 데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는 약 1천500만명으로, 우리나라 4가구 중 1가구가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추산된다. 반려동물의 죽음에서 비롯되는 아픔과 상실감을 겪는 사람도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경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운선 교수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JKMS' 최근호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반려동물의 상실을 경험한 사람의 상당수가 복합적인 슬픔, 우울, 불안, 불면 등을 경험하고 있어 정신과적인 개입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반려동물의 죽음을 경험한 137명을 대상으로 전반적인 정신건강 상태를 분석했다.
이 결과, 슬픔 반응 평가(ICG)에서 전체의 55%(76명)가 중등도 기준점인 25점을 초과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는 일반적인 사별의 수준을 넘어 지속해서 심리적인 부적응을 초래할 정도에 해당한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우울증 지수(PHQ-9) 검사에서는 52%(72명)가 주요 우울증 판단 기준인 10점을 넘어섰으며, 범불안장애(GAD-7) 검사에서는 40%(55명)가 증등도 판단 기준인 10점 이상을 받았다.
불면증 평가(ISI)에서도 32%(44명)가 기준점(16점) 이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이들의 절반가량이 우울증은 물론 공황장애, 사회불안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불면증 등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이런 심리 상태는 반려견을 떠나보낸 지 1년 미만인 사람들(77명)에게서 더욱 뚜렷했다.
이들의 중등도 이상 슬픔 반응과 우울증, 범불안장애, 불면증 비율은 각각 79%, 62%, 48%, 36%로 평균치를 크게 상회했다. 반려동물을 잃은 지 1년이 넘은 60명 중에서도 이런 비율은 각각 25%, 40%, 30%, 27%로 낮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반려동물의 상실을 경험한 개인의 상당수가 정신과적인 개입이 필요한 것으로 확인된 만큼, 이에 대한 사회적인 제도를 마련하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연구팀은 "반려동물의 상실로 인한 심각한 심리적 스트레스는 아직도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이해되거나 공감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휴가나 장례비 등 사회적 지원도 부족하다"며 "특히 애완동물을 잃은 후 첫 1년 동안에는 심리적, 사회적 지원이 매우 필요한 만큼 사회적인 이해의 필요성이 강조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반려동물을 잃었을 때 슬프고 힘든 감정을 억누르려고 하지 말고 충분히 아파하고 그리워하는 애도 기간을 두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우울감이 오래 지속된다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적절한 치료를 고려해보는 게 좋다.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에 대한 주변인들의 위로도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고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철현 교수는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에게는 그 슬픔이 공감 가지 않더라도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인정하고 위로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한낱 동물일 뿐인데 왜 이렇게 슬퍼하냐', '대신 다른 동물을 키워라' 등의 무분별한 조언은 삼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반려동물에 대한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인정할 필요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동물이 무섭기도 하고, 한 번도 함께 지낸 적이 없어 동물이 주는 깊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무엇보다 스스로 반려동물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책감을 느끼지 않는 게 중요하다"며 "유골함 등 반려동물을 추억할 수 있는 물건을 집안에 두거나,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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